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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환의 한국기행 14] 헌책방의 나른함이 그립다. ‘보수동 책방골목’
  • 박성환 기자
  • 등록 2021-08-15 18:58:42
  • 수정 2024-03-23 00:2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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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의 나른함이 그립다.

‘보수동 책방골목’

부산광역시 중구 보수동1가 책방골목길 / 051-244-9668

www.bosubook.com 

 

걷기 좋은 골목,

느긋한 걸음이 어울리는 골목이건만

현실은 바쁨의 시간이다.

헌책방의 나른함은 사라지고,

골목 안 모든 사람들이 바쁘다.

그저 천천히 걷고 싶은 욕심이다.

 


언제인가부터 책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새로 구입한 책들은 그대로 책장에 꼽혀 전시용이 되어버리기 일쑤였다. 책장에 들어가는 순간 헌책이 되었고, 나는 또 다른 책을 주문하고 있다.


물론, 몇몇의 마음에 드는 책은 다 읽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책들은 여전히 들춰보지도 못한 헌책이다. 그 종류는 단순하다. 글쓰기, 여행기, 답사기가 대부분이고 인문학과 에세이고 몇 권의 역사서다. 



한 때는 돈 많이 벌어 민박집 내지는 펜션을 운영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전 아주 어렸을 때부터 생각 했던 꿈, 작은 헌책방이었다. 손님이 더 유식한 헌책방, 물어도 찾지 못해 손님이 직접 찾아봐야하는 그러한 책방 말이다. 


더하여 차 한 잔 마실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놓고, 느긋하게 책방 문을 열고 나른하게 믹스커피 한잔 마시며 LP를 긁어나가는 흘러간 팝송을 듣고 싶었다. 


다행스럽게도? 그저 생각뿐이지만 실행에 옮겼다면 굶어죽지 않으면 마누라한테 맞아죽을 일이다. 뭐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꿈도 못 꿀만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러한 꿈을 가진 책방들이 모여 있는 공간이 있다

부산의 ‘보수동 책방골목’이다. 지금이야 어엿한 부산의 명소지만 그 시작은 먹고살기 위한 치열함이었다.  


한국전쟁으로 부산으로 피난 온 부부가 보수동 사거리 입구에서 건물 처마아래 박스를 깔고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헌 잡지들과 만화책, 고물상에서 수집한 각종 헌책들을 모아 노점을 시작한 것이 그 시작이다. 

 


피난민들은 바다 끝까지 밀려와 부산 일대에 머물면서 국제시장을 중심으로 모여들어 피곤한 삶을 이어 갔는데, 그 와중에도 가르침의 열성은 그대로인지라 학생들을 학교에 보냈으며, 그도 안 된다면 노천 천막교실에까지 수업을 받도록 하였다. 


이로 인해 보수동 골목길은 학생들의 통학로가 되었고, 자연스럽게 노점 헌책방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이로서 70년대에는 70여개의 점포가 들어서게 되었다. 형편이 어려운 지식인들이 자신의 책을 팔거나 저당을 잡혔고, 필요한 학생들과 사람들은 싼 값에 헌책을 사갔으며, 때론 귀한 서적들도 흘러들어 고서 수집가들에게는 보물과도 같은 골목이 되었다.

 


지금도 보수동 책방골목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린다.

책을 구하려는 사람, 팔려는 사람, 그리고 헌책의 종이 냄새가 좋아 찾는 사람과 골목의 그러한 아련함이 좋은 사람들이다. 이제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책방골목으로 부산문화의 상징이 되었다. 

 

사는 모습이 좋은 책방골목 사람들이 좋다.

나의 꿈을 보면서 ‘피식~’ 웃으며 욕을 한 사발 내뱉을 주인장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쉬우면 개나 소나 다하지, 이놈아!”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들은 나의 꿈을 말리지는 않을 것 같다. 저마다의 사정이 그러할 것이고, 그들만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지만 어떠한 나름의 핑계를 두지 않는 그들의 모습이 나는 좋다. 

 


좁은 계단을 따라 오른다.

길게 이어지는 책방 골목은 어깨가 맞닿을 듯 붙어 있지만 그들만의 경계선이 있는 듯 잘 정리되어 좁아 보이지 않는다. 이어지는 골목 중간 중간에는 산비탈을 따라 오르는 계단들이 숨차게 늘어 서 있다. 그 계단을 따라 당시의 형들과 누나들을 공부하러 갔을 것이고, 그 계단을 내려와 필요한 책들을 찾아 봤으리라,

 

잔뜩 쌓여진 책들과 요연하게 자리 잡은 책들이 진열대 앞에서 종이의 내음과 보이는 질감이 그리도 좋다. 일필휘지의 알아보지도 못하는 한문의 멋스러움에 반하고, 고급 양장본의 두툼한 두께의 도록에 주눅이 드는 기분마저도 즐겁다.

 


그러나 오래된 골목은 이제 길게 이어질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일부 책방의 ‘임대’라고 붙은 종잇조각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도 그럴 것이 책방 골목의 몇몇은 다른 종류의 업종이 들어섰다. 리 모델링을 통한 북 카페이거나 고서적이나 골동품등의 전시 판매점이면 이질감이 없을 터인데, 뜬금없는 업종은 아쉽다. 


오래되어 유명해진 골목들이 가진 일관된 걱정거리다.

과거의 모습은 유지하면서 변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은 없었으면 하는 오지랖이다.

 


‘사진촬영금지’

에효~, 

어느 사진(작)가들이 분탕질을 해놓은 모양이다. 그로 인한 불편함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결국, 카메라 들고 있는 죄인이 되어 더 이상은 촬영을 하지 못했다. 

다음에는 미리 말씀드려 양해를 구하고 천천히 책방골목을 즐기고 싶다. 헌책이나 중고 LP 몇 장이라도 찾아보면서 말이다.

 

글, 사진 자유여행가 박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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