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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유순의 도자기 인생 6] 우여곡절 끝에 ‘소정도예연구소’ 공방 오픈
  • 손유순 자문위원
  • 등록 2020-10-04 21:41:56
  • 수정 2020-10-04 21:4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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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투각호로문지통(靑磁透刻胡虜文紙筒)

투각(透刻)기법은 청자나 백자에 사용 되었으며 겉과 속 기물을 성형한 다음, 겉 기물을 수평으로 반 절개하여 그 안에 속 기물을 넣고 밑 부분과 윗부분을 흙물로 접합시킨다. 여러 무늬를 한결 돋보이게 하기 위하여 문양을 제외한 여백을 뚫어내는 것이다. 또는 문양을 뚫기도 한다.


호암미술관에 소장된 투각백자 연환문필통(蓮環文筆筒)은 푸른색이 감도는 청화를 칠하였으며, 밑으로 크게 쳐져서 가로대를 돌려 상하로 구분하고 위쪽에는 옆으로 고리 세 개씩 연결하면서 고리는 물론이고, 고리와 고리를 연결한 십자형(十字形) 줄기의 공간도 투각하였다. 


아래쪽은 사십자형(斜十字形) 무늬를 새겼으며, 그 때문에 생기는 사각형 공간도 투각했다.


1980년대는 결혼한 여성들의 사회적 진출, 아직 맞벌이가 많지 않던 시절이었다. 1980년대에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남자는 다니던 직장을 계속 다니고 여자는 집에서 아이를 키우곤 했다. 그런데 한참 엄마 손길이 필요한 5살, 7살짜리 두 딸을 맡길 곳이 없었다. 나는 아이들 목에 집 열쇠를 걸어주고 일을 하러 나갔다. 일을 하러 나갈 때면 어린 두 딸에게 약속을 하며 말했다. 


“엄마가 돈 많이 벌어서 맛있는 과자 사올게”


그러면 아이들은 이렇게 말하며 울고 보챘다.


“엄마 있을 땐 배가 부른데 엄마 없으면 배가 고파요. 다른 엄마처럼 우리랑 같이 놀아요. 난 과자 먹기 싫어요.”


그런 딸들을 뒤로 한 채 눈물을 삼키며 종종 걸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왔다.


지금 와서 돌아보니 그 모든 것이 신의 섭리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가야할 운명의 길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제2의 인생이 시작됐어요. 


1990년은 나에겐 가장 중요한 한 해였고 또 다른 시작이었다. 큰 딸이 중학교 입학을 하던 3월, 다니던 도자기 공방을 그만두고 ‘소정도예연구소’라는 공방을 오픈했다. 난생 처음 내 작업장 이름을 걸고 도자기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 소정 손유순/1990 - 현재  소정도예연구소장, 1999 - 2000 명지대학교 산업대학원 도자기기술학과 강사, 2001-경기도세계도자기엑스포 개막식(김대중 대통령 접견), 2002-국제도자 워크샵 초대작가 – 한국도자재단, 2004-경기도으뜸이 도자기 부문 선정(청자 참나무재유 개발)-경기도지사, 2014-사단법인) 다온시문화협회 시인, 본지 도자기 부문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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