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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1] 일본의 영유권 야욕에 쐐기 박은 ‘독도의 날’
  • 심종대 발행인
  • 등록 2023-10-28 17:29:55
  • 수정 2023-11-07 17:3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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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종황제, 독도 수호 의지 표명과 대한민국의 영토 '천명'


매년 10월 25일은 고종황제가 대한제국칙령 제41호에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 섬으로 명시한 것을 기념하고, 일본의 영유권 야욕으로부터 독도 수호 의지 표명 및 대내외적으로 독도가 대한민국 영토임을 천명하기 위하여 제정한 독도의 날이다. 이번에는 독도의 날을 맞아 역사상 독의 명칭과 조선시대의 독도, 독도의 수난, 열강에 알려진 독도, 그리고 1945년 8월 15일 이후 한가롭기만 하던 독도에 일본의 얼토당토한 문제로 발생한 독도의 재수난과 독도의 개발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편집자주>


[요약] 독도의 날은 1900년 10월 25일 고종황제가 대한제국칙령 제41호에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 섬으로 명시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한 날로, 10월 25일이다. 독도의 날 제정은 독도가 대한민국의 영토임을 널리 알리고 강력한 독도수호 의지를 세계 각국에 드러내기 위해 이뤄졌다.


독도는 울릉도에서 동남쪽으로 90km해상에 위치한 화산섬으로, 행정구역상 주소는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1~96번지'이다. 2000년 민간단체인 독도수호대가 독도의 날을 지정하고 2005년부터 국가기념일 제정을 위해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이후 2008년 8월 27일 '독도의 날 제정을 위한 법안'이 국회에 제출됐고, 2010년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한국교총)이 16개 시.도 교총, 우리역사교육연구회, 한국청소년연맹, 독도학회와의 공동 주최로 경술국치 100주년을 맞아 전국 단위의 독도의 날을 선포했다.



경상북도 의회는 2005년 6월 9일 독도의 달 조례안을 가결해 매년 10월을 독도의 달로 정했다. 그리고 2012년 10월 28일 당시 국토해양부는 국가지명위원회를 통해 공식적으로 동도의 봉우리를 우산봉으로, 서도의 봉우리를 대한봉이라 명명했고, 바위로 분류되던 것은 탕건봉으로 재분류해 독도는 3개의 봉우리를 가진 섬이 됐다.


# 명칭


독도(獨島)의 도명(島名)은 우산도, 삼봉도, 가지도, 석도, 독섬, 송도, 죽도, 리앙쿠르, ㅎ소오네트, 메날레올리우차 등 일본, 서구제국에서 불려졌다. 


‘독도’라는 명칭은 가장 새로운 이름이면서도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가장 일반화된 이름이다. ‘독도’라고 하면 한국인으로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1945년 광복 後 일본점령 미국 공군기가 독도를 목표로 폭격 연습을 했는데 때마침 독도에 출어 중이던 울릉도 어민 다수가 살상된 사건이 일어나 한때 언론의 화제가 된 바 있고 1952년 1월 18일 우리 정부가 해양주권선언(평화선)을 선언한 이후 한일간에 제기된 ‘독도문제’가 자주 언론을 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독도’라는 호칭이 생긴 시기는 1882년에 울릉도 개척문제가 논의된 이전은 아닐까? ‘독도’라는 호칭이 문헌상에 처음 나타난 것은 1905년 당시 울릉군수 심흥택이 강원도 관찰사앞으로 제출된 보고서이다.(이 이전문서에도 ‘독도’라고 기록된 것이 발견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尙今未確認)이 보고서에 관해서는 후술(後述)하겠지만 同보고서 내용 중에 ‘...本郡所屬 독도가...’)라고 표기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일본인 관사(官史)들이 배를 타고 울릉도에 입경해 우리의 독도를 일본영사로 편입시켰다고 통고하고 갔다는 요지의 것으로, 이 보고내용이 우리 정부에 진달(進達) 됨으로써 조야간(朝野間) 상당한 파문을 일으켰던 것으로 생각되고 이를 계기로 해서 1906년 5월 1일자 대한매일신보에서 이 문제를 거론했고 황현(黃玹)이 쓴 매천야록(梅泉野錄)에서도 이 사건을 적고 있는데 모두 ‘독도’로 표기하고 있다. 


‘독도’는 수많은 기록상의 도명에도 근세이후의 가장 정확하고도 일반적인 호칭은 ‘독섬’이다. 울릉도 개척이후 울릉도에 입주한 주민들은 ‘독도’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었고 모두 ‘독섬’이라고만 불렀다. 8.15광복절에 발생한 ‘독도문제’가 언론에 많이 타기전까지는 ‘독도’라는 말을 아는 사람조차 거의 없었다고 생각되고 현재도 주민들 중에는 독도를 ‘독섬’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다. 



‘독섬’이란 지명의 유래는 어원에서 찾아야 한다. 여러 학자들의 어원적 설명을 모두 소개하는 것은 생략하고 공통적인 결론만 정리하면 돌섬-돍섬-독섬으로 되었다고 보는 것이 통설이다. 독도는 바위섬 즉 돌로 된 섬이므로 독도에 왕래하던 어부들이 편의상 적당히 이름을 붙인 것이 ‘돌섬’이고 울릉도 개척이전부터 울릉도로 왕래하던 전라도와 경상도, 그리고 강원도 사람들을 통해서 ‘돌섬’-‘돍섬’-‘독섬’으로 변화, 정착했음에 틀림이 없다. 전라도와 경상도, 그리고 강원도 일부지방 사람들 가운데 돌을 돍이라 하는 사람이 많고 특히 경북의 울진과 강원도 삼척을 연결하는 사투리로 돌을 ‘돍’으로 발음하는 예와 ‘돍섬’은 ‘독섬’으로 발음되는 것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독도와 가장 친근한 울릉도 주민들이 청명한 날 “오늘은 독섬이 별나게 잘보이네”하면서 독섬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고 “아무게 아무게가 내일 독섬에 들어 간단다”하면서 은근히 이번 독섬 출어의 풍성한 성과를 기대하는 것이 상례였다. 


이와 같이 보편적으로 호칭됐던 ‘독섬’이 문서상에 한자로 표기할 때 그 뜻과 음을 고려해 ‘석도’ 혹은 ‘독도’로 쓰였다. 그러나 현지 주민들은 ‘석도’도 ‘독도’도 알 길이 없었고 여전히 ‘독섬’으로 불렀다. 독섬 외의 다른 섬의 호칭도 예외는 아니다. 죽도(竹島)를 ‘대섬’으로, 공암을 ‘구멍섬’으로, 촉태암을 ‘촛대바위’, 관음도를 ‘깍새섬’으로 불렀고 현재도 그렇게 부르고 있다./다음호에 계속(조선시대의 독도1)/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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