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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서원 185] 전이갑(全以甲)-전의갑(全義甲)형제 제향 '한천서원(寒泉書院)'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3-05-02 06:13:16
  • 수정 2023-05-02 06: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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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준 기자] 1838년(헌종 4) 후손들이 지역사림과 의논해 숭절사(崇節祠)를 창건하고 전이갑(全以甲)과 전의갑(全義甲)형제를 제향했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됐다. 이에 위패를 매립하고 단(壇)을 만든 다음 서원터에 한천재(寒泉齋)를 건립했다. 


1967년 대구 지역에 거주하는 후손이 중심이 되고 전국의 후손이 협의해 제단(祭壇)을 개축하고 재사(齋舍)를 중수 한 후 매년 4월 5일에 전국 후손들이 단제(壇祭)를 올려왔다. 1981년 재사 동쪽에 서원 부지를 확보해, 1989년 한천서원을 복원하고 매년 음력 3월10일에는 유림 향사를 음력 9월 15일후 둘째 일요일에는 향사를 봉행하고 있다.



# 전이갑(全以甲):자는 자경(子經), 호는 도원(桃源), 시호(諡號)는 충렬(忠烈), 고려개국의 벽상공신(壁上功臣)이다. 육예(六藝)와 태공(太公)의 병법을 익혀, 일찍이 기랑(騎郞)이 되어 궁예(弓裔)막하의 왕건(王建)을 송악에서 만나 창생홍제(蒼生弘濟)의 웅지(雄志)를 서로 약속하고 왕건과 함께 동벌서정(東伐西征)하며, 서기896년 병진(丙辰)에는 송악에 발어참성(勃禦塹城)을 쌓고 양한주(陽漢州)와 서원(西原)등 한남제군(漢南諸郡)을 토평(討平)하고, 906년 병인에는 정기장군(精騎將軍) 유검필(庾黔弼)과 함께 상주사화진(尙州沙火鎭)에서 견훤을 물리치고, 다시 4년후 금성포구(金星浦口)에서 견훤군을 대파하여 왕건은 파진(波珍) 겸 시중(侍中)이 되고 공(公)의 위무(威武)는 사해(四海)에 떨쳤다.


918년 무인(戊寅)에는 궁예가 날로 광폭(狂暴)하고 학정(虐政)을 저질러 신민(臣民)이 도탄에 빠짐에 공은 신숭겸(申崇謙) 홍유(洪儒) 배현경(裵玄慶) 복지겸(卜智謙)등 제장(諸將)과 함께 왕건 잠저(潛邸)로 찾아가서 폐혼입명(廢昏立明)과 응천순인(應天順人)의 대의(大義)를 들어 왕건을 왕으로 추대, 군신의 예를 올리고 고려를 개국하게 되니 곧 천수원년(天授元年)이다.



천수3년(927년 庚辰(경진))에는 견훤이 대량(大良) 구사(仇史) 이성(二城)을 공략함에 정기대장(精騎大將) 신승겸과 함께 추격 격퇴했고, 천수10년(927년 丁亥(정해)) 9월, 견훤이 신라도성(新羅都城)을 유린해 경애왕을 자진(自盡)케 하고 도성을 초토화함에 고려태조가 친솔(親帥)하는 친정군(親征軍)에 출전해 공산동수(公山桐藪)에서 견훤군을 만나 대혼전중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수중포위(數重包圍)되자 태조를 미복탈출(微服脫出)케 하고 신숭겸대장으로 하여금 어가(御駕)에 대승(代乘)하게해 홍유 배현경등 제장과 함께 진명분투(盡命奮鬪)했으나 거군진몰(擧軍盡歿)했다. 그후 태조는 이를 몹시 슬퍼해 공에게 '개국공신 태사 겸 상서좌복야 시충렬공(開國功臣 太師兼尙書左僕射 諡忠烈公) 봉정선군(封旌善君)'을 추증(追贈)했다.


조선조(朝鮮朝)에 와서 태조 태종 선조 효종 등 열성조(列聖朝)의 승음교지(承蔭敎旨)가 후손에 대해 누반(累頒)됐다.


# 전의갑(全義甲):전이갑(全以甲)의 친제(親弟)로서 유소년시절부터 형을 본받아 활쏘기 등 무예에 능(能)하여 형과 같이 기랑(騎郞)이 되어 왕건(王建)의 휘하(麾下)에 합류했고, 왕건이 주장(主將)하는 모든 전투에 형과 함께 참전해 많은 전공을 세웠다.



서기 918년 무인(戊寅)년에는 형과 같이 왕건의 잠저(潛邸)에서 군신(君臣)의 예를 올리는 등 고려개국에 동참했고, 고려태조가 친솔(親帥)한 공산동수전(公山桐藪戰)에 참전해 살신진충(殺身盡忠)했다. 그 후 고려태조가 개국공신(開國功臣) 산기상시문하시랑(散騎常侍門下侍郞) 시호충강공(諡號忠康公) 봉죽산군(封竹山君)을 추증(追贈)했다.


조선조(朝鮮朝)에 와서, 태조 태종 선조 효종 등 열성조(列聖朝)에서 후손에 대해 내린 승음교지(承蔭敎旨)나 관문(關文) 완문(完文)에도 두 형제(兄弟)분의 입훈유공(立勳有功)을 함께 적시(樀示)하고 있다.


서원외삼문에 들어서면 내삼문이 있고 그 안에 강당이 있으며, 외삼문앞에 순절비가 있다. 강당동편에 담장을 사이에 두고 사당인 충절사(忠節祠)가 있다. 서원바깥 마당에는 수령이 7,8백년이나 되는 은행나무가 서있고 육각정자(六角亭子)가 있어 쉼터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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