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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관, 11월의 독립운동가 전시회 개최
  • 박광준 기자
  • 등록 2021-11-10 09: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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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을사늑약에 죽음으로 항거한 순국지사들


[박광준 기자] 독립기념관(관장 한시준)은 국가보훈처, 광복회와 공동으로 자결(自決)로서 을사늑약(乙巳勒約)에 적극 항거한 독립운동가 홍만식(1842~1905), 이상철(1876~1905), 김봉학(미상~1905), 이건석(1851~1906) 선생을 2021년 1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를 개최한다. 


홍만식(洪萬植), 이상철(李相哲), 김봉학(金奉學), 이건석(李建奭)은 자결 순국해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강렬히 규탄한 독립운동가들이다. 1905년 러일전쟁(露日戰爭)에서 승리한 일제는 대한제국을 ‘보호국화’하려는 명목으로 1905년 11월 을사늑약을 강제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했다. 


을사늑약은 광무황제의 위임과 비준 없이 강제 조인된 불법 조약이었다. 

 

대한제국 전직 고관 홍만식은 1884년 갑신정변(甲申政變) 이후 20여 년간 세상을 등지고 살덤 중, 을사늑약 체결 소식을 전해 듣자 이를 통탄하면서 1905년 11월 음독 순국해 을사늑약 반대 의지를 알렸다. 

 

대한제국군 진위대 소속 군인 김봉학은 1905년 초대 통감으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서울에 오자 그를 처단해 군인의 의무를 다하고자 했으나, 처단 계획이 사전에 누설돼 실패하자 1905년 자결 순국하여 을사늑약 강제 체결에 적극 항거했다.

  

대한제국 관료였던 이상철은 을사늑약 체결 이전부터 일제의 강압적인 국권 침탈 시도를 규탄했다. 1905년 을사늑약 강제 체결 후 민영환(閔泳煥) 등이 울분을 참지 못해 자결 순국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의 뒤를 이어 음독 순국으로 을사늑약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이건석은 1905년 유생들과 함께 13도유약소(大韓十三道儒約所)를 결성해 을사늑약 폐기와 매국노(賣國奴) 처단 등을 요청하는 상소운동을 전개하던 중 일본군 사령부에 투옥됐다. 일제의 회유에도 을사늑약 반대 투쟁을 이어나가다 1906년 옥중 순국했다. 


정부는 자신의 목숨으로 을사늑약 반대운동에 앞장선 네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홍만식.김봉학.이상철에게 독립장, 1963년 이건석에게 독립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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