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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는 어떤 섬인가? ①
  • 이근봉/독도수호국민연합총재, 경복대학교 초빙교수
  • 등록 2019-05-08 12:3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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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를 자세하게 알기 위해 독도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부터 체계적으로 함께 공부해 나갈 것이며 계속해서 연속된다.

하늘에서본 독도/사진제공=동북아역사재단 독도연구소

 독도를 자세하게 알기 위해 독도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부터 체계적으로 함께 공부해 나갈 것이며 계속해서 연속된다. 


1. 독도는


우리나라에서 제일먼저 해돋이를 볼 수 있는 곳이며 울릉도에서 87.4km 떨어진 곳으로 뱃길로는 2시간 20분 정도 소요되는 동남쪽에 위치한 섬이다.


섬의 총면적은 187.554m²에 달하고 있으며 동도는 73.297m², 서도는 88.74m², 89개의 부속도서는 25.517m²이고 대한민국 정부 소유의 국유 에 속하고 독도는 현재 관리청이 국토해양부이며 울릉도에서도 직접 관리를 하고 있다.


섬의 구성은 화산활동에 의해 생성되는 독도는 하나의 섬이 아니라 동도와 서도 2개의 큰 섬과 주위에 89개의 부속도서로 이루어져 있으며 동도와 서도의 최단거리는 저조시를 기준으로 해서 151m 떨어져 있다.


독도 獨島 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은 고종18년(서기1881년) 조선왕조가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쇄환정책을 종료하고 울릉도에 입주한 주민들이 돌섬이라고 하였다가 독섬으로 변하였고 이 독섬을 발음중심으로 한자로 표기할 때는 독도 獨島 라 표기하고 뜻 중심으로 한자로 표기할 때는 ‘石島’ 석도 돌섬 이라고 표기하였다.


2. 독도의 생성과정


모든 사물에는 자연의 나이테가 있듯이 독도의 발생연도 즉 연혁이 정확히 나타나 있다. 독도는 해저 2,000m 솟구친 용암이 오랜 세월동안 굳어지면서 생긴 화산섬이며 20만년 전부터 해수면 위로 떠 올라왔고 바닷물과 빗물이 용암이 식으면서 섬의 모습으로 갖췄으며 250만년 제주도와 비교하면 340년 앞선 것이 독도이다.


실질적으로 독도의 생성연도는 지금으로부터 약 460만년부터 시작하여 270만 년 전부터 해수면위로 올라왔고 250만 년 전부터 바닷물의 침식작용에 의해 두 개(동도, 서도)로 나뉘어졌으며 바람과 파도에 부딪혀 씻기고 부서져 210만 년 전 무렵에 지금의 독도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3. 독도의 연혁을 살펴보면


독도는 조선 전기부터 우산도 宇山島 또는 삼봉도 三峯島 로 불리면서 울릉도와 함께 강원도 울진현 蔚珍縣 에 소속되어 있었으며 ‘세종실록지리지 世宗實錄地理志’ ‘동국여지승람 東國與地勝覽’ ‘성종실록 成宗實錄’ ‘숙종실록 肅宗實錄’ 등이 문헌에도 그 사실이 남아있다. 또한 조선후기의 민간외교관 안용복 安龍福은 1696년에 일본으로 하여금 울릉도와 함께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인정하게 되었다.


섬 주변에 가제강치가 서식하는데서 1794년 경 부터 가지도 可支島 라고 불리다가 ‘정조실록 正祖實錄’ 1881년 경 부터 독도로 불리고 있으며 1906년 울릉군 군수 심흥택 沈興澤의 보고서에서 최초로 문헌에 나타난다.


1849년 프랑스 포경선 浦鯨船, 리앙쿠르호 Liancourt號에 의하여 독도의 존재가 유럽인들에게 알려졌다. 프랑스인들은 독도를 처음 발견한 배의 이름을 본 따 리앙쿠르 Liancourt 라고 불렸다. 그 후 1854년 러시아 군함이 독도를 발견하고 독도의 서도를 올리브차 Olivoutza, 동도를 메넬라이 Menelai,라고 불렀으며 1855년에는 영국군함 호네스트호 Hornest號 에 의하여 측량되어 영국의 해도海圖에 호넷Hornet으로 표기한다.


한편 일본은 1905년 러.일 전쟁을 통하여 독도의 가치를 다시 인식하고 같은 해 2월 22일 시마네현 고시 告示 40호를 통해 독도를 다케시마 竹島 로 개칭하고 일반적으로 시마네현에 편입시켰다. 이후 계속해서 일본은 독도영유권을 주장해왔다. 하지만 한국정부는 1954년 8월에 등대를 건설하고 1982년에 독도주변을 천연기념물 제 336호로 지정하고 1997년 11월에는 주 부두와 간이부두 진입로를 갖춘 독도 접안시설을 갖추는 등 실효적인 지배 장치를 강화 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본 시마네현 의회는 2005년 3월 16일 해마다 2월 22일 다케시마의 날 竹島の日 로 정하는 조례를 가결하였다. 이로 인하여 한·일간의 영토문제가 또 다시 대두되어 시민들이 일본 대사관 앞에서 촛불시위를 하는 등 큰 사회적 파장을 낳았으며 조례안 가결에 대응해 한국정부는 일반인 독도 방문을 전면 허용하고 대일 對日 신 독트린을 발표하였다./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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