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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문화재 99] 서울 진관사 십육나한도 외
  • 박광준 기자
  • 등록 2024-03-10 21:4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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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관사 십육나한도-영산회상도-칠성각-칠성도-소 십육나한상

[박광준 기자] # 서울 진관사 십육나한도


이 불화는 1884년에 제작된 십육나한도로서 羅漢圖 4幅과 帝釋神衆圖 1幅과 使者神衆圖 1幅 등 모두 6幅으로 구성되어 있다. 4幅의 羅漢圖에는 각각 4명의 羅漢이 산수를 배경으로 해 侍者와 侍童을 거느리고 앉아 다양한 동작을 취하고 앉아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진관사나한전십육나한도1/사진-문화재청羅漢들은 가지가 휘어진 소나무 또는 폭포가 흘러내리는 산 아래, 대나무 숲 속 등에 시동을 거느리고 앉아 있는데 합장을 하거나 경전을 읽는 모습, 등을 긁는 모습, 용을 잡거나 손바닥에 학을 올려놓은 모습, 부채.지팡이.警策 등을 들고 있는 다양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진관사나한전십육나한도2/사진-문화재청대부분의 尊者들은 선홍색과 청색이 어우러진 가사를 입고 있으며 그 옆에 시립하고 있는 侍者와 侍童 또한 붉은 색과 청색의 옷을 착용하고 있어 전체적으로 강한 색감을 느끼게 한다. 시동들은 각 尊者 옆에서 사슴과 거북이 등 동물들과 함께 놀고 있거나 향을 피우고 차를 달이는 등 다양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진관사나한전십육나한도/사진-문화재청3각기 1幅으로 된 帝釋神衆圖와 使者神衆圖는 나한도의 좌우에 봉안되었던 것으로 화면을 둘로 나누어 구름 속에 서 있는 釋帝桓因과 神衆, 使者와 神衆을 각각 그렸는데 近代 西洋畵法인 陰影法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는 점이 특히 주목된다.그런데 帝釋神衆圖에는 1884년 金魚竺衍이 그렸다는 내용이 적혀져 있고 使者神衆圖에는 東昊 震徹을 비롯하여 錦華 機炯, 玩炯, 修法, 守一, 宗賢, 妙□, 智仁, 應涉, 敬雲, 慧照, 洪順, 普察이 그렸다고 기록되어 있어 그림의 조성에 참여한 畵師의 명칭을 확인할 수 있다. 


진관사나한전십육나한도/사진-문화재청4十六羅漢圖에는 화가의 명칭과 제작연대 등이 빠져 있어 확실하지는 않지만 羅漢殿 靈山會上圖 畵記에 16羅漢幀 4폭, 帝釋神衆圖 1폭․使者神衆圖 1폭, 觀音幀 1폭 등과 함께 1884년에 일괄적으로 불화를 조성했다고 밝힌 것으로 보아 十六羅漢圖, 帝釋神衆圖, 使者神衆圖는 같은 해, 같은 畵師들에 의해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이 十六羅漢圖는 19세기 후반에 王室 尙宮에 의해 發願되고 上記한 바와 같은 당대의 유명한 畵僧들에 의해 제작된 작품으로서 특히 세밀한 筆線과 정교한 문양 표현 및 金泥의 사용 등의 측면이 돋보인다./사진-문화재청


# 서울 진관사 영산회상도


이 불화는 靈鷲山에서 설법하는 석가모니를 그린 靈山會上圖로서 1884년에 제작됐다. 가로로 긴 화면의 중앙에는 釋迦牟尼가 說法하는 모습을, 그리고 그 옆에 네 菩薩과 四天王, 여섯 명의 弟子를 배치했는데 화면의 빈 공간에 彩雲을 가득 그려 넣어 전체적으로 여백 없이 빽빽한 화면 구성을 보여준다. 


본존인 석가모니는 붉은 색의 법의를 입고 蓮花臺座 위에 結跏趺坐한 모습으로서 量感 있는 얼굴과 당당한 신체로 인하여 건장한 느낌을 준다. 몸에는 通肩의 法衣를 걸치고 있으며 두 손은 왼손을 가슴 위로 올리고 오른손을 배에 댄 채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어 마치 아미타수인(阿彌陀手印)과 같은 손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문화재청이러한 手印은 일반적인 釋迦牟尼의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과는 사뭇 다르지만 조선 후기에는 불상과 불화에서 이와 같은 手印이 자주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釋迦牟尼의 手印으로 보아도 무방하다.本尊의 좌우에는 文殊菩薩과 普賢菩薩이 두 손으로 커다란 연꽃(白蓮)을들고 본존을 향해 侍立하고 있으며, 그 옆으로는 四天王이 각각 칼과 비파(향우측), 용과 여의주 및 탑(향좌측)을 들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옆과 위로는 두 菩薩과 상체만 드러난 채 합장을 하고 있는 弟子가 좌우에 각각 3명씩 묘사됐다.


화면의 향우측 하단에 적힌 畵記에 의하면 이 불화는 19세기 후반에 왕실의 상궁에 의해 발원되어 조성됐는데, 靈山殿의 後佛上壇幀으로서 16羅漢禎 4폭, 釋帝桓因使者幀 2폭, 觀音幀 1폭 등과 함께 1884년에 일괄적으로 조성됐다. 따라서 원래는 羅漢殿이 아니라 靈山殿에 봉안됐던 것임을 알 수 있다.횡축의 화면과 단아한 형태, 밝은 주조색 등 19세기 말의 불화 특징을 보여주고 있는 靈山會上圖로서 당대 불화 중 대표작에 속한다./사진-문화재청


# 진관사 칠성각


진관사 칠성각은 진관사 나한전 옆에 건립되어 있는 목조와즙 건물로 여러 번 보수가 이루어졌으나 창건 당시의 원형을 비교적 잘 유지하고 있다.건물은 외벌대 기단을 마련해 건립한 정면 3칸, 측면 1칸의 소규모 건물이다. 초석 위에 사각형 기둥을 올린 민도리 형식으로 창호 앞에는 디딤돌을 마련해 문지방을 쉽게 오르내리도록 했다. 지붕은 맞배지붕이며, 정면 처마부는 겹처마이고, 후면 처마부는 홑처마로 구성됐다. 


사진-문화재청

건물 양측면에는 화방벽(火防壁)이 설치되어 있다. 건물 내부는 안쪽 벽에 불단을 마련해 칠성도와 석불좌상, 명호스님의 영정을 봉안했 받치고 있는 도리를 받치고 있다.진관사는 1900년대 초 중창 불사가 있었으나 6.25전쟁으로 나한전, 독성각, 칠성각만 남기고 모두 소실됐다. 이처럼 칠성각은 6.25전쟁 당시에도 소실되지 않고 온전하게 남은 건물로 융희 1년(1907)건립된 것으로 확인됐다.


칠성각은 불교에 흡수된 민간신앙인 칠성신(七星神)을 모시고 있는데, 북두칠성은 재물과 재능을 주고, 수명을 관장하면서, 비를 내려 풍년을 들게 하는 신으로 민간에서 널리 신앙되었다. 이와 같이 칠성각은 여러 민간신앙적인 요소를 흡수해 불교화시킨 통불교적인 한국불교의 특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건물이다./사진-문화재청


# 서울 진관사 칠성도


이 불화는 현재 진관사 칠성각의 後佛幀으로 봉안된 불화로서 1910년에 제작된 것이다. 


사진-문화재청

가로가 긴 화면에는 치성광여래(熾星光如來)를 중심으로 七星과 星君 등이 묘사됐다. 중앙의 靑蓮花 위에 結跏趺坐한 熾星光如來는 붉은 法衣를 걸치고 오른손은 가슴 부위에, 왼손은 무릎 위에 대고 앉아 있는데 유난히 뾰족한 肉髻 위에는 圓形의 頂上髻珠가 표현됐다. 


熾星光如來의 좌우에는 향우측에 넷, 향좌측에 셋 등 모두 7구의 七星如來가 熾星光如來를 향해 합장을 하고 서 있는데 7軀 모두 붉은 法衣를 입고 있으며 熾星光如來와 같이 뾰족한 肉髻가 돋보인다. 


熾星光如來의 아래쪽에는 脇侍인 日光菩薩과 月光菩薩이 각각 금빛으로 칠해진 如意를 들고 있는데 일광보살은 붉은 해, 월광보살은 흰 달이 그려진 寶冠을 쓰고 本尊을 侍立하고 있다. 그리고 그 옆으로는 도교식으로 표현된 七元星君이 笏을 들고 서 있다.이 불화는 두터운 設彩法, 붉은 적색의 主調色에 감색과 녹색이 약간 섞인 채색, 주위의 星衆 얼굴에 발라진 두터운 胡粉 등의 표현 등에서 20세기 초반의 불화양식을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정확한 조성연대와 畵僧 등이 밝혀져 있을 뿐 아니라 서울 인근 지역에는 드문 七星圖의 作例로서 주목된다./사진-문화재청


# 서울 진관사 소 십육나한상


사진-문화재청현재 津寬寺 羅漢殿에는 釋迦三尊佛像 좌우로 각각 8軀씩 16軀의 羅漢像과 帝釋像 1軀, 使者像 1軀, 仁王像 2軀 등 총 20軀의 상이 봉안되어 있다. 모두 塑造像으로 현재는 화려한 채색이 되어 있는데 각 상은 47cm에서 53cm에 이르는 그리 크지 않은 아담한 규모이다. 


사진-문화재청16구의 羅漢은 向右側에 제1(빈도라바라다바자), 3(가나가바라타자), 5(나쿠라), 7(카리카), 9(지바카), 11(라후라), 13(안가다), 15(아지타) 尊者가, 向左側에 제2(가나가바차), 4(소빈다), 6(바다라), 8(바자라푸트라), 10(판타카), 12(나가세나), 14(바나바시), 16(수다파나카) 尊者가 배치됐는데, 여러 가지 持物을 들고 특징적인 자세를 취하는 등 자유롭게 표현됐다. 


사진-문화재청

즉 합장을 하거나 禪定을 한 모습, 무릎 위에 손을 얹은 모습, 등을 긁는 모습을 비롯해 연꽃, 부채(파초선), 거울, 붓, 해태, 용, 경전 등을 들고 있는 羅漢들의 다양한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다. 


또한 각 羅漢들의 얼굴표정과 자세는 매우 사실적일 뿐만 아니라 해학적으로 묘사되어서 불교 조각이 갖는 엄격하고 규격적인 모습을 탈피하고 초상 조각과 같은 개성적이고 활달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16나한의 옆에 봉안된 인물은 寶冠의 형상과 天衣의 형태 등 菩薩의 모습을 취하고 있는데 완주 松廣寺 16羅漢像의 腹藏記에 16나한상과 함께 조성된 보살형 인물에 대해 帝釋像이라는 銘記가 있는 것을 볼 때 여기에 표현된 보살형 인물 역시 帝釋像으로 추정된다. 진관사의 16나한상은 역동감이 부족하고 다소 섬약한 느낌을 주기는 하지만 조선 후기16나한상으로서의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다./사진-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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