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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문화재 97] 서울 진관사 독성도 외
  • 박광준 기자
  • 등록 2024-03-10 20:3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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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관사 독성도-독성전-명호스님 초상-산신도-석불좌상

[박광준 기자] # 진관사 독성도


진관사 독성도(津寬寺 獨聖圖)는 서울특별시 은평구 진관외동에 위치한 진관사의 독성각에 봉안된 독성도로, 2002년 3월 15일 서울특별시의 문화재자료제12호로 지정됐다.


진관사는 고려 현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진관조사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지은 절로서 조선시대에는 수륙재의 근본 도량이었다. 현재 대웅전과 명부전을 비롯해 홍제루, 동정각, 나한전, 독성각, 칠성각, 나가원, 객실 등의 건물이 있다.


이 독성도(獨聖圖)는 가로로 긴 화면에 민화풍(民畵風)의 산수를 배경으로 독성(獨聖)과 시자(侍者), 동자(童子) 등을 그린 것으로서 가로가 2m가 넘는 대작에 속한다. 이 불화는 19세기말~20세기초 경기도 일원에서 활약하던 화승(畵僧) 경선당(慶船堂) 응택(應釋)이 그린 독성도(獨聖圖)로서 홍순모(洪淳謨)와 상궁(尙宮) 이씨(李氏)의 시주에 의해 1907년에 제작됐다.


사진-문화재청

이 그림은 주황색이 주조(主調)을 이루는 가운데 감청색과 녹색이 간색(間色)으로 쓰였는데, 전체적으로 채색이 탁하게 되어 있다. 화면의 중앙에는 늙은 비구가 정면을 향해 앉아 있고 그 좌우에 시자(侍者)와 동자(童子)가 시립(侍立)하고 있다. 


늙은 비구(比丘)는 부처의 제자로 16나한(羅漢) 중의 한 분인 나반존자(那畔尊者)(빈두로존자, 賓頭盧尊者)로서 선홍색과 청색으로 채색된 옷을 입고, 왼손에는 석장(錫杖)을 들고, 한 무릎을 괸 채 앉아 있는 백발이 성성한 노비구(老比丘)의 모습으로 표현됐다. 그림의 배경은 나반존자(那畔尊者)가 거주하던 남인도(南印度)의 천태산(天台山)을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화면의 향좌측 가장자리에 그려진 청록색의 소나무와 산악 등은 민화(民畵)에서 자주 묘사되던 모티프이다.


1907년에 제작된 작품이지만, 전체적으로 필선이 유려하며 작품성이 있는 예이다. 보존상태도 양호하다./사진-문화재청


# 서울 진관사 독성전 


진관사 독성전은 진관사 명부전 옆에 건립되어 있는 정 측면 1칸의 목조와즙 건물로 노후로 인해 최근에 보수가 이뤄졌으나 원형을 비교적 잘 유지하고 있다.기단은 장대석을 활용해 넓게 마련했다. 초석은 사각형으로 치석해 그 위에 사각형 기둥을 올렸고, 창호 앞에는 디딤돌을 마련해 높은 문지방을 쉽게 드나들도록 했다. 창호는 사분합문(四分閤門)이고, 지붕은 방풍널이 시설된 맞배지붕이다. 정면 처마부는 원형 서까래와 사각형 부연(附椽)을 올린 겹처마이고, 후면 처마부는 홑처마로 시공됐다. 



건물 양측면에는 화방벽(火防壁)이 설치되어 있다. 독성전은 단아하고 정연한 인상을 주고 있으며, 소규모 건물이지만 중요 건물로 인식해 보기 드물게 격을 높여 독성각이 아닌 독성전(獨聖殿)이라는 현판을 걸었다. 건물 내부는 간단한 구조의 불단을 마련해 소조나반존자상(塑造那畔尊者像)과 독성도 산신도를 봉안했다.독성전은 상궁 4명과 민간 부부가 후원해 융희 1년(1907)건립된 건물로 같은 해 나반존자상과 독성도도 함께 조성됐다. 진관사 독성전은 조선 말기 소규모 건물의 구조와 양식을 이해하고 독성신앙을 살피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사진-문화재청


# 서울 진관사 명호스님 초상


이 불화는 현재 진관사 칠성각의 칠성도 향우측에 봉안된 영정으로서 세로 106.2cm×83.0cm에 달한다. 화면의 왼쪽 상단에는 세로로 “影入山水圖 □珠看經”으로 시작되는 4줄의 贊詩가 적혀 있고, 오른쪽 상단에는 한글로 “인사졀 명호불영뎡”이라 적혀 있어 인사사의 명호스님 영정을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문화재청그림의 중앙에는 經床을 앞에 두고 정면을 향한 채 바닥에 結跏趺坐한 스님의 모습을 화면 가득 그렸는데 스님의 옆으로 拂子와 두루마리를 든 侍者를 배치한 특징적인 화면 구성을 보여준다.제작연대와 화가의 기록이 없어 조성연대, 畵僧 등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나 전체적인 구도와 채색 등으로 볼 때 조선 후반기(19세기말~20세기 초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사진-문화재청


# 서울 진관사 산신도


이 불화는 현재 津寬寺 獨聖閣에 봉안된 山神圖로서 세로로 긴 화면에 산신이 호랑이를 끼고 앉아 있는 모습을 화면 가득 그렸다. 산신은 붉은 색의 옷을 입고 머리에는 망건을 두른 노인의 모습인데 왼손에는 파초선을 들고 오른손은 가슴 부근에 댄 채 비스듬히 호랑이에 기대앉은 자세를 취하고 있다. 


사진-문화재청세밀하게 수염이 묘사된 산신의 얼굴은 마치 인자한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는 듯하며 산신을 두르고 있는 호랑이는 해학적이며 익살스러워 마치 민화의 호랑이를 연상시킨다. 밝은 진홍색의 채색과 녹색이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여기에 호랑이의 황색과 흰색 등이 어우러져 밝은 색감을 나타내고 있다. 


畵記가 없어 제작연대와 화가 등을 알 수 없지만 진홍색의 채색과 호랑이의 표현 등으로 볼 때 19세기 말~20세기 초반경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일반적으로 山神圖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山水 배경이 생략되고 山神과 호랑이만을 부각시켜 그린 대담하면서도 단순한 구도가 돋보이는 작품이다./사진-문화재청


# 서울 진관사 석불좌상


이 불상은 현재 津寬寺 七星閣에 봉안된 석불좌상으로 佛石(玉石)으로 만들어졌다. 동글면서도 앳된 얼굴이 특징적 童形佛像으로 신체에 비하여 頭部가 유난히 크게 표현되어 있다. 


사진-문화재청머리는 螺髮로서 肉髻가 낮고 頂上髻珠와 中間髻珠가 모두 표현됐고 크고 넓적한 얼굴에는 이목구비가 작게 묘사되었다. 특히 작은 입가에는 미소를 머금고 있어 아기 같은 신체와 함께 친근하면서도 온화한 인상을 나타내고 있다. 


신체에는 通肩의 法衣를 걸치고 있는데 양 어깨를 덮은 옷자락은 가슴 한가운데에 평행으로 표현된 裙衣 아래로 끼워 놓았다. 두 손은 유난히 크게 묘사됐고 양 무릎 위에 가지런히 모아 대었다. 


이 불상은 千佛像 중의 하나로 생각된다. 이 像과 같은 형식의 佛像은 강원도와 서울, 경기 북부 지역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전체적으로 신체에 비해 얼굴이 큰 편이지만 삼각형을 이루는 안정감 있는 자세와 조형성에서 조선 후기 불상의 특징을 보여준다./사진-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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