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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기의 공연산책 328] 제8회 늘푸른연극제 극단 은행나무, 박승원 연출 '누구세요?'
  • 박정기 자문위원
  • 등록 2024-02-01 05:3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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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학교 메리홀 소극장에서 제8회 늘푸른연극제 극단 은행나무의 이현화 작 박승원 연출의 누구세요?를 관람했다.


이현화(1943~) 황해도 재령 출생으로 서울고를 거쳐 연세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197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요한을 찾습니다>가 당선되어 데뷔했다. 1976년 중알일보 창간 10주년 기념 천만원 고료 작품모집에<쉬- 쉬- 쉬잇>이 당선되었고 1977년에는 문학사상 신인작품 모집에<누구세요>가 당선되었다. 1978년<카덴자>를 발표하여 제 4회 영희연극상, 한국연극영화예술상, 제 1회 서울극평가 그룹상을 수상했다. 1979년 현대문학상을 수상했고 1984년에는 대한민국문학상을 수상했다. 1987년 서울연극제에서<불가불가>로 희곡상을 수상했다. 이 밖의 대표작으로는<우리들끼리만의 한 번>(1978),<오스트라키모스>(1978),<0.917>(1980),<산씻김>(1981) 등이 있고, 희곡집으로는 《누구세요?》(1979)와 《0.917》(1985)이 있다.


그는 초기작에서 주로 자아 상실, 소외적 부부관계, 프로이드적 인간관에 집중된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0.917>(1980)은 소외적 현대 문명 속에서 억압된 에로스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중년 남자를 유혹하는 어린 여아를 등장시켜 가학-피가학적 관계를 통해 인간관계의 원형적 본질을 조명하고 있다.<카덴자>와 그 이후 1982년에 발표된<불가불가>에서는 한층 영역을 넓혀 역사와 개인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는 역사적 사건을 다루되 이를 무대 위에 구체화시키는 과정에서 주로 감정 충격 요법적인 접근방법을 사용하는데,<카덴자>에서 세조의 왕위 찬탈 과정을 다루며 역사의 방관자에게 잔인한 고문을 실행하는 것이 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그의 주된 관심사는 인간 내면의 탐구와 심리적 차원의 접근이며, 이를 위해 이성적인 논리보다 주로 감각적, 심리적 충격에 호소한다. 이와 함께 반복과 병렬을 바탕으로 하는 ‘상황’ 중심의 실험적 형식을 시도하는 점, 그리고 간결하고 함축적이면서도 약간의 냉소적 풍자가 어려있는 언어를 적절히 구사하는 것이 또한 그의 극작술상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현화는 엥야라차 행진곡, 요한을 찾습니다, 누구세요? 쉬-쉬-쉬-잇, 우리들끼리만의 한번, 카덴자, 산씻김, 오스트라키스모스, 내일은 뭐 할꺼니? 라마 사박다니, 불가불가, 산씻김, 어우동 등을 발표 공연했다.


박승원 연출은 75년 부터 극단 산울림에서 임영웅 연출 밑에서 15년 정도 연극을 하다가, 호암아트홀에서 18년 간 근무하다 다시 대학로에 돌아와 연극을 하고 있고, 올 봄에 연극연출가 협회의 신춘문예단막극제에 참가를 했고, 문화예술의 전당에서 아라발의 두 사람의 사형집행인을 연출했다.


누구세요?는 연락처에 찍혀있는 지인과 그렇지 않은 낯선 이.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 현대의 각박한 대인관계를 들여다보기라도 한 듯싶은 연극이다. “여보세요?”라는 말을 주고받았을 사람들조차 “누구세요?”라는 물음으로 낯선 이로 전환하며 연은 시작된다. 이 극은 각각의 인물들과 분리된 낯선 타인에게 초점을 맞추면서도, 그 안에서 모호해지는 개개인의 정체성까지 파고든다.


'다음 주 월요일이면 집으로 돌아올 통계과장 남편인’ 남자와 ‘언니 집에 놀러 가서 다음 주 월요일쯤에야 오는 마누라인’ 여자는 상황과 시기로 추측해 보았을 때 서로가 부부여야 하지만 귀가한 그들은 서로를 알아보지 못 하는 상황 속에서 서로를 경계한다. 그렇다면 이 둘은 어째서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며, 이 상황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것인가.


이현화 작가의 <누구세요>는 1974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1970년대 사회를 되돌아 보았을 때 비로소 이 연극을 이해할 수 있다. 당시 민주국가의 국민은 모종의 이유로 자유를 누릴 수 없었고, 산업화 시대가 도래해 곳곳엔 공장이 들어섰으며, 사람 냄새는 조금씩 희미해지기 시작한 이 시기에 <누구세요>를 비롯하여 않은 문예들이 줄줄이 발표되었다.


그중 최인호 작가의 <타인의 방>은 도시 문물의 상징이자 각각의 똑같은 모습을 지닌 ‘아파트’라는 복제 공간을 통해 가장 안락한 내 집이 그저 ‘타인의 방’으로 전락한 상황을 보여 주며, 인간 소외 현상은 심화하여 인간의 물질화 현상까지 이르게 된다. 살을 부대끼던 옆 사람의 모습조차 새카맣게 잊는 상황은 그 자체로 밝혀내고 싶은 메시지가 분명히 있다고 보이도록 만드는 작품이다.


그럴 뿐만 아니라 김승옥 작가의 <서울, 1964년 겨울>을 통해서도 볼 수 있듯이 내가 아닌 남은 완전히 배제하게 된 현실, 남의 딱한 사정을 눈으로 보고도 이내 외면해버리는 상황은 한 줌 남은 휴머니즘마저 완전히 소멸해 버린다. 이렇듯 당대의 문예들은 산업화 시대의 폐해를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 극단적인 외면의 출처를 이해할 여유가 생긴다.


배타적인 상황이 최우선이 되어 내 집에서 남을 쫓아내려고 하는 냉정한 말투, 전혀 소통되지 않는 등장인물의 갈등을 보다 보면 한 가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바로 인물들의 이름이 한 번도 불리워지지 않는다는 것.


기껏해야 남자, 여자, 남자 A, 여자 A로 분류할 뿐 극의 시작부터 끝까지 인물들은 이름을 한 번도 부르지도, 그렇다고 상대방의 이름을 묻지도 않으며 ‘저기요’ 내지는 ‘당신’이라는 호칭으로 개인의 정체성을 대신한다. 각각의 개별적 특성을 가릴 이름은 지워졌으며 성별로만 남겨진 고유한 정체성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안에서 권력을 이어간다.


1970년대 사회를 주름잡은 공포 정치의 권력은 개인의 생활까지 통제하고, 권력을 거스르는 자에게는 가차 없이 총을 겨누었던 당대의 상황은 연극에서도 고스란히 연출된다. 극 중 경찰인 남자A가 남자와 여자를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총을 꺼내 들고, 그들을 제압하기 위해 손을 묶어버리는 모습은 당시의 폭력적인 공권력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남자 A, 즉 공권력이 무대 밖으로 나가버리고 남자와 여자만이 무대를 채우는 순간도 상황은 결코 안정적이지 못한다. 공권력이 사라지고 난 후에는 명백한 젠더 권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남자가 외설적인 말을 서슴없이 내뱉으며 자신의 욕망을 표출하고, 저항하던 여자의 의지가 결국 좌절되는 장면에서 불편함을 느꼈다면 그것은 곧, 공권력에 휘둘리던 남자가 권력의 주체가 되었을 때 '여성'에게 지배를 행사하는 모순을 파악하였다면 자연스레 스며드는 감정이라고 볼 수 있다.


1970년대 극을 2024년 현재로 끌고 와 공연하는 과정에서 분명히 시대적 어폐가 존재할 수 있다. 이제는 굴복하지 않는 자에게 총을 내밀지 않는 시대가 왔고,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경계를 허물고자 노력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1974년 작품을 온전히 이해하기가 분명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4년을 살아가는 노장들이 이 극을 선택한 이유는 60~70년대 문예들이 표현했던 '인간 소외 현상'이 현재에도 지속하고 있음이 아닐까.


공연이 시작되면서 전화벨 소리가 울리기 시작하고 아니 왜 이렇게 오래 울리나 할 정도로 극 도입의 벨 소리 뿐 아니라 효과음은 물론 조명까지 꺼진상태에서 놀랄 정도로 오래 지속되는 연출방법이 관객을 자극시키고 포르노 영상 같은 여배우의 자위행위 같은 연기도 관객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엄청나게 마셔대는 주량 또한 충경을 주지만 모두 1970년대를 그려냈구나 하는 공감대가 형성 된다.


진현태, 김도연, 김 영, 이규원 등 출연진의 호연과 성격창출 그리고 감정설정이 관객을 극에 심취토록 만든다.


조연출 김태윤, 무대감독 서삼석, 무대미술 임 민, 조명 정 철, 의상 김경숙, 분장 김미숙, 홍보 조현지, 프로듀서 이영석, 기획 조연호 등 스텝진의 기량이 하나가 되어 제8회 늘푸른연극제 극단 은행나무 이현화 작 박승원 연출의 누구세요?를 한편의 성공적인 공연으로 만들어 냈다.


* 주요경력


황해도 금천생, 서울고 서울대미대, 서울대학교 총동문회 이사, 극작가/연출가/평론가, 한국희곡뮤지컬창작워크숍 대표, 한국문인협회 희곡분과 위원, 전 서초연극협회 회장, 본지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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