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島를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은 于山國人이었을 것이다. 기록상으로는 찾아볼 수 없으나 탐험심이 强했던 于山國사람들이 獨島를 자주 왕래했을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생각할 수 있고 于山國이 신라에 복속된 이래 고려, 조선에 걸쳐 鬱陵島와 함께 獨島를 경영해 왔음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日本人들이 獨島를 발견한 것은 언제쯤일까? 日本의 혹자는 말하기를 고려말부터 왜구들이 韓半島 연해를 왕래하면서 獨島를 발견했을 것이며 늦어도 임진왜란 때는 獨島를 발견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이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근거는 없다.
日本側의 사료로서 獨島에 관한 것으로 보이는 최고의 것은 조선 顯宗 8년(1667년)에 이즈모(현 시네마현 동부) 관리가 썼다는 ‘隱州視聽合記’의 기사를 들 수 있다. 이 책 내용중에 松島와 竹島에 관한 설명이 있는데, 前者는 獨島를, 後者는 鬱陵島를 설명한 것이 분명하다. 이 기록다음으로는 조선 純祖 23년(1823년)에 만들어진 ‘檼岐古記集’으로 여기에서는 분명히 獨島를 松島f고 鬱陵島를 竹島로 보고 설명하고 있다. 이보다 5년후인 1828년에 因付江石梁이 썼다고 하는 ‘竹島考’에서는 松島와 竹島를 보다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상 일본측 史料 몇가지로써 日本人들에 의해 獨島가 발견되었거나 알려진 것은 조선 中期 以後의 일이며 그 기사들은 한결같이 鬱陵島와 獨島를 병기함으로써 兩島의 관계를 불분명의 것으로 표시하고 있을뿐만아니라 獨島를 松島, 鬱陵島를 竹島로 쓰고 있다.
그러함에도 1905년의 鬱陵島 告示로써 獨島를 자기네 영토로 편입하면서 鬱陵島에 붙여 쓰던 獨島라는 呼稱을 獨島에 옮겨붙여 날치기 행위를 결행했던 것이다. 위의 사건이 있기 前 獨島가 西歐諸國에 알려진 이후에는 日本人들이 獨島를 량꼬島라고 불렀다. ‘량꼬島’는 ‘리앙크루’의 日本式 발음이며이며 1849년 프랑스 捕鯨船 리앙크루號가 獨島를 발견해 그 船名을 따서 獨島에 붙였고 이어 地圖에도 獨島를 리앙크루가 표시하게 됨으로써 西歐諸國에도 알려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道根縣告示’ 계기가 된 訴請 中井養三郞의 ‘량꼬島松領土編入及貸下願’에서 보여지는 바와 같이 1905년 이전에는 일본인들이 獨島를 松島 또는 량꼬島로 불렀고 道根懸告示 이후에도 일본의 어민들은 竹島보다는 량꼬島를 더 즐겨 불렀다.
獨島가 프랑스의 리앙쿠르號에 발견된 다음 西歐에 알려진 것은 1854년 露艦 올리우차號에 依해서이다. 이 경우도 艦名을 따라서 獨島를 ‘메날레.올리우차’로 命名했다. 세 번째로는 1855년 英國船 호네트號가 獨島를 발견하고 艦名대로 ‘호네트’로 命名했다.
이와 같이 19세기 中葉에 이르러 독도가 서구 열강의 艦船에 依해 발견되고 또 나름대로 命名되어 지구상에도 등장하게 됨으로써 西歐列强에도 널리 알려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