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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기의 공연산책15] 소설가 박태순 朴泰洵을 추모하며
  • 박정기 본지 자문위원
  • 등록 2019-09-02 00:10:08
  • 수정 2020-09-10 11: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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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기 본지 자문위원

박태순(朴泰洵.1942.5.8.∼2019. 8. 30.)은 소설가이자 번역가 그리고 문예운동가다.  1974년 신경림, 염무웅, 황석영 등과 함께 자유실천문인협의회 (한국작가회의 초창기 전신) 창립을 주도하고 문예지 ‘실천문학’ 창간에 앞장섰다.


1964년 ‘사상계’에 ‘공알앙당’이 가작 입선, 196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향연’이 가작으로 입선되고, 1966년 중편 ‘형성(形成)’으로 제1회 ‘세대’ 신인문학상을 수상했다. 같은 해 창간된 계간지 ‘창작과 비평’에 단편 ‘연애’를 발표하였다. 1974년 자유실천문인협회 발기인, 1980년 무크지 ‘실천문학’ 발간, 부친이 운영하던 출판사 ‘박우사’ 주간, ‘실천문학’지 편집위원을 역임했다.
   
요산문학상(1998), 21세기문학상(2000), 신동엽 창작기금수상, 한국일보 문학상(1988), 단재상(2009) 등 수상했다.
   
황해도 신천(信川)에서 출생한 박태순은 47년 월남, 한국전쟁으로 대구에서 초등학교를 마친 뒤 서울중.고등학교를 거쳐 60년에 서울대 영문과에 입학한 직후 4월 혁명에 참여한 ‘문단 4.19세대’다. 그는 타고난 ‘역마직성’ 탓에 방랑과 음주벽, 난민촌 칩거로 떠돌기도 했으나 복학하여 64년에 서울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그해에 ‘사상계’에 가작 입선(단편 ‘공알앙당’)으로 등단했다.
   


그리고 66년 ‘세대’ 제1회 신인문학상(중편 ‘형성’) 당선, ‘경향신문’ (‘향연’)과 ‘한국일보’ (‘약혼설’) 신춘문예에 당선작 없는 가작으로 입선하여 연속되는 등단의 영광을 누린다. 이는 작가의 결벽증 또는 완벽주의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다.  


작가 박태순은 1960~70년대에 도시빈민의 삶을 보고문학적 기법으로 파헤친 작품으로 주목을 끌었다. 이때 도시빈민의 실체는 두 가지로 나뉜다. 월남한 실향민의 군상이 단편 ‘사민(私民)’과 장편 ‘가슴 속에 남아 있는 미처 하지 못한 말’ 등에서 그려지고 있다면, 판자촌 철거민이나 이농민들의 삶이 ‘정든 땅 언덕 위’를 비롯한 ‘외촌동 사람들’ 연작 18편에서 다뤄지고 있다.
   
박태순은 도시 변두리 인물의 삶을 형상화함으로써 개발독재시대의 사회경제적인 부작용을 음각시켜 그 극복의지를 투사했다. 도시빈민들의 삶에 대한 탐구는 이내 중산층의 타락과 허위의식을 그린 ‘침몰’ ‘속물과 시민’ ‘좁은 문’등으로 계승되어, 한국사회가 직면했던 모순과 갈등의 극복을 위한 비판의식의 마비와 민주화의 지연 양상을 해부한다. 소시민 의식의 해부는 4월혁명을 직간접적으로 다룬 ‘무너진 극장’ ‘잘못된 이야기’ ‘4월제(四月祭)’ ‘어느 역사학도의 젊은 시절’ 등에서도 드러난다.
   
지배층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변혁의 주체세력도 아닌 부동층(浮動層)에 속하는 세력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4월 혁명의 성공과 한계, 궁극적인 좌절을 예견한 일련의 소설들은 중산층의 허위의식을 다룬 소설들과 맥이 닿아 있다. 박태순의 작가정신은 80년대 군부독재치하에서 변혁의지로 만개한다. 1987년 6월 시민항쟁을 다룬 ‘밤길의 사람들’은 변혁주체 세력을 전면에 등장시켜 민중이 주체가 되는 변혁운동의 장렬한 광경을 그린 문제작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분신―전태일’(1970), ‘광주단지(廣州團地) 3박 4일’(1971), ‘한국탐험’(1973), ‘작가기행’(1975), ‘국토와 민중’(1983), ‘인간과 역사’(계간 ‘오늘의 책’ 연재, 1986), ‘사상의 고향’(‘월간중앙’ 연재, 1988~89), ‘신열하일기’(‘서울신문’ 연재, 1991) 등 일련의 작업은 분단현대문학사에서 보고문학을 본 궤도에 진입시킨 업적으로 높이 평가받았다. 이 가운데 ‘국토와 민중’은 기행문학의 지평을 확대시키면서 일반 독자들뿐 아니라 다른 문화예술 장르의 작가들에게도 깊은 영향을 준 역작으로 기억된다.  


박태순은 문예운동가이기도 했다. 1974년 1월 6일 ‘문학인 61인 시국선언’을 발기했으며, 같은 해 11월 고은.이문구와 함께 자유실천문인협의회(한국작가회의 전신)를 창립하고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문예운동사’를 기록했고, ‘실천문학’ 간행 발기에도 참여했다. 4.19세대의 증언자로서 ‘1960년대 사회운동사’(공저)를 쓰고, 인권운동협의회와 평화시장대책위원회 등에 참여했다. 하워드 파스트의 소설 ‘자유의 길’ ‘랭스턴 휴즈 시선집’ ‘팔레스티나 민족시집’, 치누아 아체베의 소설 ‘민중의 지도자’ 등을 발간하는 번역가로도 활동했다.


특히 박태순의 ‘국토와 민중’은 ‘국토인문학’이라는 새로운 문예적 지평을 제시한 명저다. 한국인들에게 ‘국토가 무엇인가’라는 문제의식을 제시했다. 일찍부터 기행문학에 천착해온 박태순은 ‘국토와 민중’으로 한국 기행문학의 한 이정표를 세우게 된다. 


‘국토와 민중’이 출간되던 1983년 이른 봄날 박태순은 북한산에 올라, “우리 함께 손잡고 이 국토를 걷자! 이 아름다운 산하를 걸으면서 우리 역사 우리 현실을 온몸으로 호흡하자!”고 외쳤다. 


저자와 독자, 출판인이 함께 참여하는 ‘한길역사기행’은 그렇게 기획되었다. “역사는 책과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온몸으로 체험해야 한다!”고 박태순은 강조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이 국토와 강산에서 연 3000여명이 참가한 한길역사기행, 그 계기를 만든 한 권의 책이 ‘국토와 민중’이었다. 이 땅의 독자들은 ‘국토와 민중’을 통해 국토정신, 역사정신을 온몸으로 체득하는 것이었다. 박태순은 ‘국토와 민중’을 펴낸 이후 25년 만인 2008년 ‘나의 국토 나의 산하’(전 3권)를 저술해낸다. 박태순 국토인문학의 절정이다. ‘국토와 민중’이 저 1980년대의 폭압적인 군부통치 시대의 소산이고 그에 저항하는 언어로 쓰였다면, ‘나의 국토 나의 산하’는 희망을 말한다. “국토언어는 기본적으로 희망의 언어이다”고 말을 맺었다.


필자는 박태순과 중학교 시절 같은 반이 되고부터 가까이 지냈기에 그의 부친이 운영하던 박우사에 들러 세계문학전집 전권을 한 권 한 권 빌려 탐독하고, 고교시절에는 세계 각국의 명 희곡집과 셰익스피어 전집도 독파했다. 그 때문에 연극을 하게 되었고, 극작과 연출 그리고 연극평론을 하게 된 것이 모두 박태순과 가까웠기에 이루어진 것이다. 


박태순은 20여 년 전 모친 병환을 돌보느라 충북 수안보로 들어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작품 활동을 하다가, 모친 사후 전국을 다니며 ‘나의 국토, 나의 산하 3권’을 발표 간행했다. 


중앙일보 논설위원이던 서울대 영문과 동기 정규웅이 재작년에 수안보에를 가서 만났다는 소식에 접했고, 지난달 미국에 있는 정신과 닥터로 근무하던 서울고 동기 한원삼이 박태순의 소식을 물어보기에 메일로 대충 전해주었는데, 어제 밤 박태순이 지병을 앓다가 8월 30일에 별세했다는 부음을 듣고, 그동안 박테순에게 소홀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울 뿐 아니라, 가슴 한 쪽이 잘려나가는 아픔이 느껴지기에 박태순에게 사과하는 마음으로 이 추도문을 작성한다. 부디 저세상에 가서도 좋은 글을 집필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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