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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서원 61] 고려말 충신 장안세 선비정신 남아있는 구미 ‘옥계서원’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2-08-22 18: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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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준 기자] 1774년(영조 50)에 창건했고 1819년(순조 19)에 중수했다. 고종 8년에 조정의 명령으로 묘우(廟宇)가 훼철됐으나 강당과 삼문(三門)은 남았다. 1893년 옛 묘우터에 신당(神堂)과 비를 세웠고, 1984년 묘우와 강당을 중건하고 비각과 동.서재를 새로 지어 1987년 완공했다. 



장안세는 고려 후기 함주(현 함경남도 함흥시)에 있는 갈한천(乫罕川)이 해마다 범람해 재해가 연속되자 함주부사에 임명됐다. 10여 년 동안 재임하면서 치수에 공을 세웠을 뿐만 아니라 70칸이 되는 만세교(萬歲橋)를 가설하는 등 수리 사업에 많은 업적을 쌓아 덕녕부윤(德寧府尹)에 제수됐다.



조선왕조가 개창되자 광덕산 기슭에 있는 두문동(杜門洞, 현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에 은둔했다. 이성계와는 잠저 때 친교가 있어 태조가 친필로 여러 번 출사를 청했으나 끝내 나가지 아니하고, 아들 장중양(張仲陽)과 함께 고향인 인동으로 낙향해 고려에 대한 절의를 지켰다. 장안세의 행적은 김집(金集)이 기록한 ‘두문동칠십이현록(杜門洞七十二賢錄)’에 전한다.


후손들이 유문과 관련 기록을 편집한 2권 1책의 ‘송은선생실기(松隱先生實紀)’가 전한다.



1774년(영조 50) 후손들이 세운 옥계사(玉溪祠)에 배향됐다. 옥계사 창건 무렵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이 유허비 비문을 지었다. 영남 유생들의 청원에 의해 1834년(순조 34) ‘충정(忠貞)’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옥계사는 1871년 서원 철폐령에 의해 묘우가 철거됐으나 1989년 현재의 경상북도 구미시 인의동에 묘우를 중건하고 강당을 중창하고 동서재를 신축했고 이듬해 옥계서원(玉溪書院)으로 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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