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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서원 56 하동군 편] 하홍도(河弘度)의 넋이 깃든 하동 '종천서원'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2-08-19 17:09:49
  • 수정 2022-12-26 10:5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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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준 기자] 1677년(숙종 3)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하홍도(河弘度)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키 위해 창건해 위패를 모셨다. 


1697년에 하진(河溍), 1718년에 하연(河演)을 추가 배향했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됐다. 이에 유림들이 하홍도의 강학장소인 모한재(慕寒齋)에다 하홍도의 위패를 옮겨놓고 1920년부터 향사를 지내왔다. 이와 함께 종천서원의 현판을 이곳으로 옮겨 사실상의 서원 역할을 하게 됐다. 


하홍도(河弘度)의 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중원(重遠), 호는 겸재(謙齋)로 진양 하씨이다. 진양 하씨의 시조는 고려 시대 사직(司直)을 지낸 하진(河珍)으로 알려져 있다. 



그로부터 9세를 내려와 하즙(河楫)이 현달해 진주부원군에 봉해졌는데, 시호는 원정(元正)이다. 11대조는 하윤원(河允源)으로 역시 진산부원군에 봉해졌다. 10대조는 하자종(河自宗)으로 호는 목옹(木翁)이며, 병부상서를 지냈다. 하자종은 아들 다섯을 뒀는데 모두 현달했다. 셋째 아들이 문효공(文孝公) 하연(河演)이다. 다섯째 아들이 하결(河潔)로 대사간을 지냈는데, 하홍도(河弘度)의 9대조이다.


하홍도의 고조할아버지는 승훈랑을 지낸 하보용(河保溶)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참봉을 지낸 하철부(河哲夫)이고, 할아버지는 봉직랑을 지낸 하무제(河無際)이다. 아버지는 하광국(河光國)으로, 자는 군빈(君賓)이다. 어머니는 이광우(李光友)의 딸인 합천 이씨이다. 부인은 권극의(權克義)의 딸인 안동 권씨로, 사이에 1남 2녀를 뒀다. 아들 하한남(河漢南)이 요절해 하진(河溍)의 손자 하영(河泳)을 양자로 들였다.



1. 모한재에서 강학


하홍도는 1593년(선조 26) 경상도 진주 안계(현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안계리)에서 태어났다. 임진왜란 중에 태어난지라 부모를 따라 전라도 남원과 석성(石城) 등지로 피난을 다니다가 9세 때 비로소 고향으로 돌아왔다. 10세 때 처음으로 ‘소학(小學)’을 배우기 시작했고, 12~13세 때 도를 구하는 데 뜻을 뒀다. 광해군 말년에 정치가 어지러워지자 과거 공부를 그만두고 자신의 수양에 힘썼다.


하홍도는 송정(松亭) 하수일(河受一)(1553~1612)에게 수학했는데, 하수일은 조식의 제자인 각재(覺齋) 하항(河沆))(1538~1590)에게 배웠다. 하홍도는 조식으로부터 하항과 하수일에게 내려온 남명학의 핵심을 전수받아 후대에 이어지도록 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31세 때 산수가 아름다운 곳에 서재를 짓고 이름을 ‘경승재(敬勝齋)’라 했다. 이곳에서 동생 하홍달(河弘達)과 경전의 의리를 강설하고 예문을 상고하면서 성리학의 이치를 밝힌 것이 많았다. 또한 사림산(士林山) 밑에 ‘모한재(慕寒齋)’를 짓고는 하홍달과 함께 그곳에서 강학을 했다. 


주자의 ‘백록동학규(白鹿洞學規)’, 정자(程子)의 ‘사물잠(四勿箴)’, 주자의 ‘경재잠(敬齋箴)’을 벽에 걸어 두고 학문의 방도로 삼았다. 하홍도의 학문은 설창(雪牕) 하철(河澈)(1635~1704)과 삼함재(三緘齋) 김명겸(金命兼)(1635~1689)을 거쳐 주담(珠潭) 김성운(金聖運)(1673~1730)과 지명당(知命堂) 하세응(河世應)(1671~1727)에게 이어졌다.


2. ‘남명 이후 제일인자’


그의 활동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남명학을 계승해 그 정신을 실천하고 보급하는 데 주력한 것이다. 그는 20세 때 덕천서원에 들어가 ‘남명선생학기’를 교정했고, 이듬 해 하진(河溍)과 덕천서원에서 ‘남명선생문집’을 교정했다. 이를 보면 젊은 나이에 이미 문명이 있었음을 알 수 있고, 남명학의 계승에 주도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 20세 이후 하진.신상용(申尙溶).이배근(李培根).문후(文後).이정(李瀞).하증(河憎).성호정(成好正).정훤(鄭暄).정외(鄭頠) 등 경상우도 주요 인사들과 교유했고, 그들과 함께 남명학과 남명 정신을 계승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둘째는 17세기 경상우도 지역의 정신적 지주로서 교육과 풍속을 순화시키는 역할을 담당했다는 점이다. 하홍도는 17세기 경상우도 지역에서 ‘남명 이후 제일인자’로 추앙될 정도로 학덕이 높았다. 그래서 현직 관찰사와 목사가 직접 찾아와 학문과 사무를 물을 정도였다. 또한 인근의 학자들이 수시로 찾아와 학문과 관련해 의문나는 점을 질의했다. 이를 통해 볼 때 17세기 남명학파의 정신적 지주였음을 알 수 있다.


1645년 유일(遺逸)로 천거돼 건원릉참봉에 제수됐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이후 여러 차례 참봉.교관.현감 등에 제수됐으나 끝내 나아가지 않았다. 1662년(현종 3) 현종이 곡물을 하사하자, 상소해 사은하고서 아홉 가지 일을 건의하기도 했다. 1666년(현종 7) 5월 6일 7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하홍도의 학문은 한 마디로 ‘겸사상(謙思想)’이라 할 수 있다. 그가 존경하고 사숙한 남명(南冥) 조식(曺植)은 공자가 ‘주역(周易)’에서 “경으로써 안을 곧게 하고 의로써 바깥을 방정하게 한다[敬以直內 義以方外]”고 한 말을 사상적 근거로 해, “내면을 밝히는 것은 경이고, 외적인 일을 처단할 적에는 의에 따른다[內明者敬 外斷者義]”고 자기 철학을 재정립했다. 이것이 바로 남명학의 요체라고 하는 경의(敬義)이다.


하홍도는 공자로부터 정자.주자.남명을 거쳐 내려온 심성 수양의 요지를 ‘겸(謙)’으로 다시 자기화했다. 그래서 그의 사상은 한 마디로 겸(謙)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이러한 자신의 사상을 ‘겸괘도(謙卦圖)’에 정리해 놓았다. 그 속에 담긴 정신은 주자의 ‘백록동학규’, 정자의 ‘사물잠’, 진백(陳柏)의 ‘숙흥야매잠(夙興夜寐箴)’, 주자의 ‘경재잠’을 바탕으로 하고, 그 위에 조식의 ‘내명자경 외단자의(內明者敬 外斷者義)’의 경의사상을 근간으로 한 것이다.


하홍도는 또한 역행(力行)을 특별히 강조해 심성 수양의 실천적인 측면을 중시했다. 그래서 관혼상제의 예를 매우 중시했는데, 여자들이 성년이 되면 거행하던 계례(笄禮)를 당시 아무도 행하지 않았으나 하홍도의 집에서만은 이 계례를 행했다고 하는 데서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저서로 목록.별집.원집의 12권 합 6책의 ‘겸재집(謙齋集)’이 있다. 이익(李瀷)은 ‘겸재집서(謙齋集序)’에서 “일찍이 겸재라 자호하고, ‘지산육획도(地山六劃圖)’를 그려 걸어 두고서 비목(卑牧)으로 최초의 공정을 삼았다.”고 했다. 자호를 ‘겸(謙)’으로 한 것은 자신의 사상을 겸(謙)으로 정립한 것을 의미한다. 


‘지산육획도’는 ‘주역’의 겸괘를 말한다. ‘비목’은 ‘주역’ 겸괘 초육효(初六爻) 효사에 “겸손하고 겸손한 군자는 자신을 낮추어서 스스로 자신의 덕을 기른다[謙謙君子 卑以自牧也].”에서 취한 말이다. 이를 보면, 하홍도는 남명의 경의학을 계승하면서 보다 구체적인 실천 방안으로서 겸사상을 정립한 것을 알 수 있다.



묘소는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종화리 문암(文巖) 한천(寒泉) 위에 있다.


1679년(숙종 5) 위패를 종천서원(宗川書院)에 봉안했다. 허목(許穆)이 묘갈명을 짓고 글씨를 썼고, 이현일(李玄逸)이 행장을 지었고, 이익(李瀷)이 문집의 서문과 묘지명을 짓고 글씨를 섰다. 증손 하대관(河大觀)이 ‘겸재집(謙齋集)’ 초간본을 간행했고, 후에 후손 하응로(河應魯)가 중간본을 간행했다. 출생지인 안계리에 하홍도를 기리는 유적비가 서 있고, 하홍도가 후학을 가르치던 모한재는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30호로 등록돼 있다.



모한재(慕寒齋)는 본래 하홍도(河弘度)가 1635년(인조 13)에 창건한 것이다. 하홍도는 벼슬을 단념하고 재야에서 학덕을 닦고 실천했던 당대 대표적인 성리학자의 한 사람이었다. 특히 예학에 밝았던 인물이다. 


이 재사는 그가 학문을 닦고 후학들을 가르치던 곳이고 미수 허목 등을 비롯한 당대의 명유들과 교류하던 곳이기도 했다. 모한재(慕寒齋)의 사당에는 겸재 하홍도의 위패를 모시고 있고 매년 음력 3월 10일에 제사를 받들고 있다. 


선생의 위패는 원래 종천서원에서 모시고 있었으나 서원이 철폐되면서 옮겨왔고 종천서원의 현판 등이 보관돼 있다./사진-윤정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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