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서울시 문화재 119] 서울 홍제동 오층석탑
  • 박광준 기자
  • 등록 2024-04-20 11:03:49

기사수정


[박광준 기자] 서울 홍제동 오층석탑은 서울특별시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고려시대 화강암으로 건조한 5층 석조 불탑. 석탑으로, 1963년 보물로 지정됐다. 전체를 화강암으로 건조한 이 석탑은 원래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홍제동에 있었으나 시가지 확장으로 1970년 경복궁으로 옮겨왔다. 현재는 용산 새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놓았다. 원위치는 사현사(沙峴寺)이다.

 

현재의 상태는 기단부가 없고 탑신부(塔身部)뿐인데, 원위치에 서 있을 당시도 기단부의 구조가 없이 자연석으로 탑신을 지탱하고 있었다. 현재 높이는 3.51m이다. 이러한 변형은 후대의 개수로 인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탑신부는 탑신(塔身)과 옥개석(屋蓋石)이 각 1석씩으로 조성됐는데 모두 특이한 양식과 조성수법을 보이고 있다. 초층 탑신석에는 양쪽 우주(隅柱 : 모서리기둥)가 표시되지 않고 각 면에도 아무 조각이 없고, 높이나 넓이의 비례도 2층 이상과 합치되지 않는 점이 있어, 기단이 변형될 때 후보(後補)한 것으로 추측된다.


2층의 탑신을 비롯해 그 이상의 탑신석은 모두 각 면에 양쪽 우주가 표현되고 중앙에 탱주(撑柱 : 받침기둥)가 마련되어 두 구역으로 나뉘었고 그 안에는 네모난 액자형으로 벽테두리를 표시했다.



그리고 각 층 탑신석 밑에는 같은 돌로 만들어진 넓은 방좌(方座)로 탑신받침을 마련했는데, 이와 같이 굄돌을 첨가한 방식은 고려시대 석탑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 네모난 굄대의 하부에는 호형(弧形)과 각형 굄의 몰딩(moulding : 테두리장식)이 있으나, 이러한 수법은 2층에서만 볼 수 있고 그 이상에서는 아래턱에 각형의 층단을 내었다.


각층 탑신은 전체적으로 ‘상촉하관(上促下寬:위는 좁고 아래는 넉넉함)’의 작풍을 보이는데, 이것은 목조건축을 모방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옥개석은 각 층이 모두 평박하면서 넓은 편에 속하나 다듬기가 세련되지 않아서인지 육중해 보인다. 두꺼운 추녀는 수평으로 펼쳐지다가 전각부(轉角部)에 이르러서는 심한 반전(反轉)에 의해 합각선(合角線)도 반전을 보이고 있어 중후한 가운데서도 경쾌한 느낌을 준다.


옥개석 하면의 받침부에는 2층탑신굄돌에서와 같이 각형(角形)과 원호(圓弧)로 된 받침이 있어 층단을 이룬 일반형 석탑에서의 받침수법과는 다른 면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초층과 2.3층은 같은 수법이나 4.5층에서는 약화(略化)되었다.



상륜부(相輪部)는 각 부재가 모두 없어지고 현재는 나중에 보완한 원형석이 보주(寶珠)를 함께 조성한 형태로 놓여 있다. 5층 옥개석 윗면 중앙에는 네모난 찰주공(擦柱孔)이 있어 4층 옥개석까지 구멍이 뚫려 있다. 그리고 5층 옥개석 네 귀의 전각 위에는 각각 장방형 구멍이 하나씩 있어 원래는 금속제의 상륜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이 석탑은 현재 기단부가 결실되어 있으나, 탑신과 옥개의 체감비가 완만해 전체적으로 중후하면서 경쾌함과 안정성을 겸하고 있다. 전체적인 모습은 정림사지석탑과 비슷하나 층마다 탑신보다 넓은 돌로 굄돌을 끼워 넣은 점이나 옥개석 양식에서 고려시대 석탑의 특징이 잘 나타나고 있다.



이 탑의 창건연대에 대해서는 안성 칠장사 혜소국사비(보물, 1968년 지정)의 비문에 의해 이곳이 1045년(정종 11) 사현사 터임을 알 수 있어서, 이 탑도 사현사 창건 당시 건립한 것으로 추정된다./사진-박광준 기자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한국의 전통사찰더보기
 박정기의 공연산책더보기
 조선왕릉 이어보기더보기
 한국의 서원더보기
 전시더보기
 한국의 향교더보기
 궁궐이야기더보기
 문화재단소식더보기
리스트페이지_004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