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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구석 구석 299] 사복시(司僕寺)터
  • 우성훈 기자
  • 등록 2024-03-15 10:17:21
  • 수정 2024-04-10 23:3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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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훈 기자] 조선시대의 여마(輿馬).구목(廐牧) 및 목장에 관한 일을 관장하기 위해 설치되었던 관서.


1392년(태조 1) 고려 제도에 따라 사복시를 설치하고 임금이 타는 수레.말.마구.목축 등을 관장했다. 그 뒤 1405년(태종 5)에 병조의 속아문이 되고, '경국대전'의 완성으로 정3품 아문의 관청으로 정비됐다.



소속 관원으로 제조(提調) 2인과 판관(判官) 이상의 임원 2인은 장기복무인 구임(久任)으로 했고, 정3품 장인 정(正)은 1인으로 했다. 그 밑에 종3품 부정(副正) 1인, 종4품 첨정(僉正) 1인, 종5품 판관 1인, 종6품 주부(主簿) 2인과 잡직관에 종6품 안기(安驥) 1인, 종7품 조기(調驥) 1인, 종8품 이기(理驥) 1인, 종9품 보기(保驥) 2인, 마의(馬醫) 10인이 소속되어 있었다.


이속으로 서리(書吏) 15인, 제원(諸員) 600인, 차비노(差備奴) 14인, 근수노(跟隨奴) 8인, 이마(理馬) 4인, 견마배(牽馬陪) 11인, 고직(庫直) 4인, 대청직(大廳直) 1인, 사령(使令) 11인, 군사(軍士) 2인이 배정되어 있었다.



'속대전'에서는 제조 2인 중 1인은 의정(議政)이 겸임하고, 또 이마 4인, 마의 3인, 견마배 11인, 서리 20인, 제원 3,448인을 두게 했다. '대전통편'에서는 이마 4인을 체아직(遞兒職)으로 하되 6품은 1인, 8품은 2인, 9품은 1인으로 했다.


사복시의 지방조직인 목장은 '세종실록지리지'에 53개, '동국여지승람'에 87개, '대동여지도'에 114개, '증보문헌비고'에 209개가 전해진다. 관찰사 관할 아래 감목관(監牧官)이 지휘, 감독했고 그 밑에 군두(群頭).군부(群副).목자(牧子)가 배속돼 생산과 관리에 종사했다./사진-우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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