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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하나1] 스리랑카 민주사회주의공화국대사관
  • 우성훈 기자
  • 등록 2024-03-09 11:08:50
  • 수정 2024-03-10 13:3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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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훈 기자] 주한 스리랑카 대사관(싱할라어: කොරියාවේ ශ්‍රී ලංකා තානාපති කාර්යාලය, 타밀어: கொரியாவில் உள்ள இலங்கை தூதரகம்)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중구 신당동 347-359에 있는 스리랑카 대사관이다. 


스리랑카는 남북한 동시 수교국으로서 1977년 11월 대한민국과 정식 외교 관계를 수립했고, 같은 해 12월 공관을 설치하고 1987년 3월 대사관으로 승격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는 이보다 앞서 1970년 6월 수교해 1975년 10월 공관을 설치했다.


대한민국과는 1978년 1월 문화협정, 1978년 10월 항공협정, 1980년 3월 투자보장협정. 1984년 5월 이중과세방지협정, 무역협정, 1994년 5월 과학기술협력협정 등을 맺었다.



스리랑카 민주사회주의공화국(싱할라어: ශ්‍රී ලංකා ප්‍රජාතාන්ත්‍රික සමාජවාදී ජනරජය 스리랑카 프라자탄트리카 사마자바디 자라나자야, 타밀어: இலங்கை சனநாயக சோஷலிசக் குடியரசு 일랑카이 자나나야카 카맛투바 쿠티야라쿠, 영어: Democratic Socialist Republic of Sri Lanka 데모크라틱 소셜리스트 리퍼블릭 오브 스리랑카), 약칭 스리랑카(싱할라어: ශ්‍රී ලංකා 스리랑카, 타밀어: இலங்கை 일랑카이, 영어: Sri Lanka 스리랑카)는 남아시아에 있는 섬나라이며 입법 수도는 스리자야와르데네푸라코테이고 행정·사법 수도 및 최대 도시는 콜롬보이다.


스리랑카는 1948년 영국 연방의 일원으로 독립했고 국호도 '실론'에서 현재의 국호로 변경했다. 고대에는 다양한 이름으로 알려진 바 있다. 인도에서는 랑카(Lanka), 싱할라(Singhala) 등으로 불렀고, 고대 그리스 학자들은 타프로바네(Taprobane)[1] (/təˈprɒbəniː/), 아랍권에서는 Serendib ('세런디피티(serendipity)'의 어원)라고 불렀다.


1972년, 공식 국호를 '스리랑카 자유주권독립공화국'으로 변경했다가 1978년에 '스리랑카 민주사회주의공화국'으로 변경했다. 예전 명칭인 실론(Ceylon)이라는 이름은 지금도 많이 쓰인다. 지리적으로 인도 아래에 위치해 '인도의 눈물'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스리랑카의 역사는 고고학적 연구에 의하면 선사시대부터 여러 원주민이 살았던 것으로 보이고 현재는 스리랑카 중심부 산지에 소수만이 남아있는 베다족이 이러한 원주민의 마지막 후손인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보통 스리랑카의 역사는 기원전 500년 경에 인도 벵골지방에서 위자야 왕자가 건너와 나라를 세우면서 시작됐다고 전해진다. 이들 도래 민족은 곧 싱할라인을 이루어 스리랑카의 토착민이 된다. 곧 기원전 377년 아누라다푸라 왕국이 성립했고 기원전 250년 경에 불교가 전해져 국교로 받아들여졌다. 아누라다푸라 시대는 스리랑카의 고전시대를 이루면서 기원후 1000년 경까지 이어진다. 그러다가 1017년 인도 남부의 촐라 제국이 침략해 아누라다푸라 왕국을 멸망시켰고, 곧 비자야바후 1세가 이를 몰아내고 폴론나루와 왕국을 세웠다.


스리랑카는 16세기부터 포르투갈인들이 스리랑카에 당도해 해안 지역 전체의 지배권을 넘겨받았고, 17세기에는 네덜란드가 전쟁에 승리하면서 지배권을 가져갔다. 나폴레옹 전쟁 당시 영국의 속령이 되어 인도와 함께 영국의 지배를 받아왔고 이때 실론(Ceylon)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사진출처-스리랑카 관광청스리랑카는 1948년 영국 연방의 일원으로 독립해 실론 자치령이 되었다. 1972년에 공화정으로 바뀌면서 국호도 '실론'에서 현재의 국호로 변경했다. 이전까지는 콜롬보가 수도로 알려졌으나 현재는 스리자야와르데네푸라코테(행정 수도)와 콜롬보(정치 경제적 실질적 수도)로 분류되고 있다.


토착민족인 싱할라인과 영국 식민지배 당시 이주한 타밀인 간의 지속적인 분쟁이 있어왔다. 불교를 믿는 싱할라인과 달리 타밀인들은 주로 힌두교를 믿어 종교적 차이가 있고, 타밀인들은 주로 농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로서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못했던 등, 두 민족 간에는 균형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타밀인들은 1976년 북부 지방을 근거지로 하여 타밀 엘람 해방 호랑이(Liberation Tigers of Tamil Eelam)라는 조직을 결성해 독립을 주장하게 되었고, 그 이후로 약 30여년에 걸쳐 타밀 호랑이 조직과 스리랑카 정부 사이의 스리랑카 내전이 펼쳐지게 되었다. 2001년에 노르웨이의 중재로 일단 심각한 폭력적 분쟁은 사그라들었지만 갈등의 불씨는 완벽하게 꺼지지 않은 상태였다. 2009년 타밀 반군이 정부군에 항복하면서 스리랑카 내전은 막을 내리게 된다.


사진출처-스리랑카 관광청스리랑카는 인도의 남동쪽, 인도양에 위치한 섬나라로, 과거에는 실론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고, '인도의 눈물'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이는 '국토의 생김새'가 꼭 '눈물' 혹은 '진주'처럼 생겨, 지리적으로도 인도의 꼬리 쪽과 아주 가까이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국토의 면적은 6만 5610km2로, 남한의 약 2/3 정도 된다. 정글에서부터 고산지대까지 다양한 식생을 관찰할 수 있다.


또 스리랑카의 인구는 2000만 명이 넘어 인구밀도는 다소 높다. 민족구성은 토착인인 싱할라인이 75%, 타밀인이 15%, 무슬림(스리랑카 무어) 10%를 차지한다. 인도 남부와 교류는 계속적으로 있었으나 타밀인의 유입은 영국의 스리랑카 식민 지배 당시 본격화됐다. 이는 캔디 인근의 고산지대가 홍차 재배에 유리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영국인들이 인도의 타밀인들을 노동자로 데려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싱할라어와 타밀어가 공용어로 쓰이고 있다. 싱할라어는 스리랑카인 대다수가 사용하는 고유의 언어이고, 타밀어는 근대 이후 영국인들과 함께 스리랑카로 본격 유입된 인도의 타밀 지방 출신 사람들 사이에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타밀 사람들의 많은 수가 싱할라어를 말할 수 있기 때문에 언어의 차이로 인한 소통 문제는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영국 식민 시대의 영향으로 상당수가 영어로도 의사 소통이 가능하다. 한편 스리랑카 중심부 산지에는 원주민인 베다족이 사용하는 소수언어인 베다어(Vedda)가 존재한다.


사진출처-스리랑카 관광청

스리랑카의 종교는 영국으로부터 독립 후 상좌부 불교를 국교로, 싱할라어를 국어로 정하면서, 성전어인 팔리어삼장을 싱할라어로 번역하고, 불교대백과사전을 편찬하는 등 불교교단을 정비했다. 국민들은 불교신자들이 대다수(70%)이고, 타밀에서 건너온 힌두교(13%) 신자가 그 다음이다. 그 외에 이슬람교(10%), 기독교(7%) 신자도 존재한다.


스리랑카는 불교문화권이기 때문에, 마을에 보리수 나무 등 불교의 상징물들이 있다. 매년 7월 말에서 8월 초 열리는 ‘캔디 페라헤라 축제’는 2000년의 역사를 가진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불교축제이다.


스리랑카 요리를 살펴보면, 음식에는 쌀과 카레, 피투, 키리바트, 통밀 로티, 이디야팜, 와탈라팜(코코넛밀크, 자게리, 캐슈, 계란으로 만든 말레이 원산의 풍부한 푸딩과 계피와 육두구 포함), 코투와 아팜이 포함된다. 잭프루트는 때때로 쌀을 대체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음식은 플랜틴에서 제공된다.


사진출처-스리랑카 관광청

스리랑카와 대한민국의 관계를 살펴보면, 대한민국은 1972년 10월 9일 주(駐)스리랑카 통상대표부를 개설했고, 1977년 11월 14일 통상대표부를 대사관으로 승격한 공식적인 외교관계를 수립한 이후 양국관계는 발전되어 왔다. 1978년 1월에 한국-스리랑카 항공협정을 체결했고, 1978년 3월에 관민 경제기술협력단이 스리랑카를 방문해 투자보장협정을 체결하고 경제협력 확대에 합의했다. 1980년 3월 28일에는 외무부 장관의 스리랑카 방문으로 투자보호협정을 체결해 상호경제협력강화에 합의했고, 1984년 이중과세방지협정과 무역협정을 체결했다. 1994년 과학기술협력협정을 체결했다. 


스리랑카는 비동맹 중립노선 표방으로 남북한문제에 대해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으나, 국제무대에서 대한민국에 대해 협조적인 태도를 보여주었다. 2005년 기준으로 많은 스리랑카인들이 한국에서 일하고 있으며, 상당한 수의 한국인들 역시 스리랑카에서 살며 일하고 있다. 수도인 콜롬보에 한국 대사관(주 몰디브 대사관을 겸임)과 KOICA 및 한국수출입은행 EDCF 사무소가 있다./사진-우성훈 기자, 스리랑카 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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