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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구석 구석 189] 우리나라의 국가대표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
  • 우성훈 기자
  • 등록 2024-03-01 21:3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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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도서관 전경

[우성훈 기자] 국립중앙도서관은 대한민국의 국가대표도서관 역할을 수행하는 국립도서관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도서관으로, 사서들 사이에서는 '국중도'나 '국중'이라는 줄임말로 불린다. 행정조직법상으로는 문화체육관광부에 소속된 기관이다.


본관 외에도 관내에 국가학술원이나 국가예술원 등 다양한 시설이 있고, 과거 분관이 산하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으로 바뀌기도 했다. 또한, 점점 부족해지는 서고 공간의 확충을 위해 세종특별자치시에 분관인 국립세종도서관을 설립했고, 강원도 평창군 알펜시아 리조트 내에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국제방송센터(IBC)로 활용되던 시설을 리모델링해 지난해 국가문헌보존관을 설립했다. 


국립중앙도서관 전경

이 외에도 도서관법 제45조 제1항에 의거해 지식정보 취약계층인 장애인에 대한 도서관 서비스를 지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국립중앙도서관장 산하에 국립장애인도서관을 두고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은 1906년 2월에 국내 최초의 국립도서관인 대한도서관으로 개관했다. 위치는 회현방 미동의 이용문의 집을 임시사무소로 해 발족했다. 같은 해 3월 25일에는 민영기를 초대 도서관장으로 임명했고, 대한제국 궁내부 종부사 청사로 이전했다.


사진-국립중앙도서관/디지털자료실 전경하지만 경술국치 이후 1911년에 조선총독부에 10만여 권에 달하는 장서를 모두 빼앗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가 했지만, 1923년 11월 29일 '조선총독부도서관관제'가 발령되면서 조선총독부도서관이 개관하면서, 해당 장서들이 모두 이관돼 명맥이 이어지게 되었다.


1942년 12월에는 아현동 분관을 준공했다.


사진출처/자료실 신규철재서가 등 설치(연보용)해방 직전 당시에 조선총독부도서관에는 28만 4천여 권에 달하는 장서들이 보관되어 있었다고 하고, 도서관을 인계받은 한국인들은 행여나 일본인이 귀한 책들을 빼돌려서 가져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면서 장서실을 지켰다고 한다.


또 1945년 8.15 해방 후, 박봉석 등 조선총독부도서관의 한국인 사서들을 주축으로 하여 10월 15일 서울특별시 중구 소공동에서 국립도서관으로 재개관했다. 개관 이듬해인 1946년에는 국립조선도서관학교를 열어서 사서 양성에 힘쓰기도 했다.


지식의 길 전경/사진출처-국립중앙도서관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문교부 산하로 들어갔고, 1957년에는 아현동 분관을 개조, 1959년에는 증설해 학생들이 열람실로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이후 1963년 10월 28일 '도서관법' 제정에 따라 현 명칭인 국립중앙도서관으로 바뀌었고, 1965년부터 도서 의무납본제도를 시행했다.


그러나 이미 1950년대 말부터 도서관 시설이 협소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1942년부터 서고로 써오던 아현동 분관 역시 이를 커버하기엔 택도 없었고, 이후 소공동 재개발과 맞물려 부지가 호텔롯데로 매각되자, 1974년에 남산의 옛 어린이회관 자리로 이전했다. 1982년에 조직을 개편하면서 전산실을 신설했고, 1983년 사서직 공무원 직무교육을 개시했다.


실감서재입구/사진출처-국립중앙도서관그럼에도 남산 본관은 산 중턱에 있는데다가 원래 어린이회관으로 지어진 건물이어서 도서 보관에는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이 많이 제기됐다. 그리하여 영동개발 당시 법조단지를 조성하면서 남는 부지에 새로운 국립중앙도서관을 짓기로 결정했고, 연희종합건축사사무소가 설계를, 경향건설이 시공을 맡아 1988년 5월 28일 현재의 반포동 위치로 이전했다. 


1991년부터 소관업무가 문교부에서 문화부로 넘어갔고, 1997년 '전자도서관 시범사업'을 주도하면서 1999년에는 통합정보시스템 'KORIS'를 개통했다. 2000년에는 자료보존관을 세우고 2002년에 '출판시 도서목록(CIP)' 제도를 시범 실시했고, '국립중앙도서관 주제명표목표'도 개발했다.


초록쉼터/사진출처-국립중앙도서관강남역 8번 출구 인근의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은 원래 이 도서관의 분관으로 어린이 열람실 및 청소년의 출입이 가능한 일반열람실 위주로 운영됐다. 그러나 건설 당시 부실공사 탓에 세월이 지나 지반이 약하고 금이 곳곳에 나면서 1998년 D등급 판정을 받아 1999년 11월 1일에 개보수를 통해 학위논문관으로 기능을 전환하면서 기존의 어린이.청소년 이용기능이 사라지고 학위논문의 열람 및 복사만 가능하게 되었다가 다시 현재와 같이 변하게 되었다. 


국립중앙도서관 전경(뒷면)본관 바로 앞 오르막길 터에 짓고 있던 국립디지털도서관은 2009년 5월 26일에 개관했다. 이 건물이 거의 본관과 맞먹는 크기를 자랑한다. 이를 통해 명실공히 국가내 최첨단 대표도서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2012년에는 국가서지과를 신설한 뒤 국립장애인도서관도 열었고, 2016년부터 온라인자료 납본을 개시했다. 2018년에 기록매체박물관을 열었다.


국립중앙도서관 내의 조형물해가 갈수록 장서의 질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있으나, 이는 국립중앙도서관의 운영 정책을 전혀 모르고 하는 이야기이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선 사서가 이용자들을 위해 책을 '큐레이션'해서 진열하는 것이 아니고, 국내에서 발행되는 모든 책을 납본받아 최근 3년치(대략)까지는 서가에 꽂아두고 그 이상 되면 창고로 보낸다. 


국립중앙도서관 머릿돌

따라서 아무리 유명하고 중요한 책이라도 오래된 것은 서가에 없고, 창고에서 열람 신청을 해야 한다. 가령 행정학 같은 분야의 서가를 가보면, 최근에 발행되어 납본받은 9급이나 경찰공무원수험서 같은 것만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국립중앙도서관은 도서관이라기보다는 출판물 박물관의 성격이라고 볼 수 있다.


누에다리에서 바라본 국립중앙도서관 전경과거 본관 정면 뜰에 전두환의 친필을 새긴 돌조각이 있었으나, 현재는 치워진 상태다. 2017년부터 본관이 또다시 단계적 보수공사에 들어갔다. 2018년 3월 1일부터 7월 중순까지 도서관 본관 운영이 임시 중단됐다가 7월에 3~4층이, 8월 말경에 1층이 각각 준공됐다. 2021년 기준 현재는 중앙도서관, 디지털도서관 모두 리모델링 공사가 끝나면서 현재는 잘 운영되고 있다./사진-우성훈 기자, 국립중앙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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