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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통사찰 111] ‘합천 해인사 홍하문’ 등 사찰 일주문 6곳 보물 된다
  • 이승준
  • 등록 2023-08-26 08:19:53
  • 수정 2024-04-02 04:3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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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준 기자] ‘합천 해인사 홍하문’ 등 사찰로 들어가는 초입에 있는 건축물인 일주문(一柱門) 6곳이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됐다.


일주문(一柱門)은 조선시대 사찰의 삼문(三門) 체계가 성립되면서 등장한 사찰 진입부의 첫 건축물이다. 대부분 다포계의 화려한 양식으로, 조선 전기에서 후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하지만 그동안 사찰의 주요 불전(主佛殿) 위주로 문화유산 지정이 이뤄져, 상대적으로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2021년까지 ‘부산 범어사 조계문’이 일주문으로는 유일하게 보물로 지정됐다.


문화재청은 이에 따라 지난해부터 전국 사찰의 일주문 50여 곳을 일괄 조사한 뒤, 전문가 검토와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역사.예술.학술 가치가 큰 일주문을 선별해 지난해 12월 ‘순천 선암사 일주문(順天 仙巖寺 一柱門)’ 등 4곳을 보물로 지정했다. 그리고 이번에 일주문 6곳을 추가로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합천 해인사 홍하문(陜川 海印寺 紅霞門)’은 정확한 창건 연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1457년(세조 3)에 중수해 지금까지 다섯 차례 고쳐 지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정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정면 평방에 6개 공포, 전체 14개 공포를 올린 다포식 공포 구조로 서까래와 부연이 있는 겹처마 지붕이다.


맞배지붕을 한 일주문은 정면에서 봤을 때 5개 공포로 구성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 일주문은 6개 공포를 올려 상대적으로 웅장한 모습을 보여준다.


‘함양 용추사 일주문(咸陽 龍湫寺 一柱門)’은 경남 함양 용추계곡 일대에 존재했던 옛 장수사(長水寺)의 일주문으로 1711년(숙종 37)에 건립됐다.


6.25전쟁 당시 장수사 화재로 전각이 모두 소실됐을 당시 유일하게 화마를 피했고, 지금은 장수사의 암자였던 용추사의 일주문으로 사용되고 있다.


단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서까래와 부연으로 구성한 겹처마 구조이고, 정면 평방에 7개 공포, 전체 20개 공포의 다포식 공포이다. 7개 공포로 구성되어 웅장한 형태를 자랑한다.


‘곡성 태안사 일주문(谷城 泰安寺 一柱門)’은 2017년 보수공사에서 확인된 상량문에 조선 전기인 1521년(중종 16년)에 ‘조계문(曹溪門)으로 창건됐다는 기록과 함께 태종의 둘째 아들인 효령대군(孝寧大君, 1396~1486)의 수결(手決, 서명) 흔적이 남아 있다.


공포의 형식과 짜임은 조선 후기의 건축 기법을 잘 보여줘, 창건 이후 지속해서 보수된 건물임을 알 수 있다.


주 기둥 상부 안쪽에 용두(龍頭)를 설치했고, 용두에는 두 뿔, 큰 눈, 눈썹, 크게 벌린 입과 이빨, 머리 뒷부분의 갈기 등이 화려하고 사실적으로 표현됐다.


’하동 쌍계사 일주문(河東 雙磎寺 一柱門)‘은 ’영남하동부쌍계사사사적기문‘에 1641년(인조 19)에 세워졌다고 기록됐다.


전면 1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며, 전면 평방에 5개 공포, 전체 14개 공포의 다포식 공포 구조이고, 측면의 규모가 큰 편이다.


또한, 대웅전으로 이르는 일직선상의 축에 따라 일주문, 금강문, 사천왕문 등의 전각을 건립한 산지가람배치 형식이 잘 보존돼 있다.


’달성 용연사 자운문(達城 龍淵寺 慈雲門)‘은 1695년(숙종 21년)에 창건된 것으로 상량문(1695년)과 중수기(1938년)가 남아 있어 건축연대와 중수연대가 확실하다.


처음에는 ’일주문‘으로 건립됐지만, 1920년 사진자료에는 ’자운문‘이란 편액이 걸려 있어 그전에 명칭이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정면 1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우진각 지붕틀을 구성한 뒤 맞배형의 덧지붕을 씌웠다. 정면 평방에 5개 공포, 전체 14개 공포의 다포계 공포 구조로 겹처마 지붕이며, 주 기둥의 부재 형태가 하부에서 벌어지는 비스듬한 형태로 독특한 모습을 보여준다.


’순천 송광사 일주문(順天 松廣寺 一柱門)‘은 건립연대가 확인되지 않았지만, 1802년(순조 2) 중창됐고 1842년(헌종 8) 큰 화재로 송광사의 대부분 전각이 소실된 와중에도 살아남았다는 ’조계산송광사사고(曹溪山松廣寺史庫)‘ 등의 기록을 통해 1802년 이전부터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정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겹처마 지붕으로, 공포는 정면 평방에 5개 공포, 전체 12개 공포의 다포식 구조이다. 주 기둥 안쪽 상단에 둔 용두는 조선 후기의 양식을 보여준다.


문화재청은 30일간 의견을 수렴한 뒤 문화재위원회 심의 절차를 거쳐 보물로 지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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