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박정기의 공연산책 264] 지공연협동조합, 문삼화 연출 '누란누란(累卵累卵)'
  • 박정기 자문위원
  • 등록 2023-07-09 20:57:06
  • 수정 2023-07-09 20:58:45

기사수정

씨어터 쿰에서 지공연협동조합의 홍창수 작 문삼화 연출의 누란누란을 관람했다.


홍창수 극작가는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거쳐 동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고려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하며 연극과의 다양한 만남을 즐기고있다. 1998년 극단 실험극장에서 첫작품 '오봉산 불지르다'를 공연한 이래 '수릉', '신라의 달밤', '여름안개', '윤이상, 나비이마주'등을 발표하며 꾸준히 극작을 하고있다. '한국희곡 '편집주간을 맡았고 월간지 '한국연극'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있다. 지은 책으로는 한국희곡 연구서 '역사와 실존', '김우진 전집1,2,3(공편)', '한국희곡 읽기의 새로움', 희곡집 '오봉산 불지르다'. '수릉', 번역한 책으로는 '희곡쓰기의 즐거움', '연극의 역사1,2(공역)', '연극의 즐거움(공역)'등이 있다. 2023년 올해의 극작가상 을 수상했다.


문삼화 연출은 2003년 연극 ‘사마귀’로 공식 데뷔하여 10년 넘게 연출가로 살아온 베테랑이며 공상집단 뚱딴지의 대표를 역임하고 그 후 서울시극단 단장도 역임한 미녀 연출가다. 연출작품은 ‘잘자요 엄마’ ‘뽕짝’ ‘바람직한 청소년’ ‘뮤지컬 균’ ‘세자매’ ‘일곱집매’ ‘언니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너 때문에 산다’ ‘쿠킹 위드 엘비스’ ‘백중사 이야기’ ‘Getting Out’ ‘라이방’ ‘사마귀’ '로미오와 줄리엣' 을 연출했다.


2003평론가협회선정 올해의 베스트3, 2004밀양 여름공연예술축제 제3회 젊은 연출가전 최우수작품, 2005 서울연극제 연기상, 신인연기상, 2006 거창 국제공연 예술제 남자연기상, 2008 서울문화재단 젊은 예술가 지원사업(Nart)선정, 2008대한민국연극대상여자연기상, 2009대한민국연극대상희곡상, 2013 서울연극제 우수작품상, 여자연기상, 2013한국연극BEST7, 2013제1회 이 데일리 문화대상 연극부문최우수상, 2013대한민국연극대상여자연기상, 2014 제16회 김상열 연극상 2016 올해의 연출가상 등을 수상했다.


누란(累卵)은 알을 쌓아(포개) 놓은 것처럼 위태로운 형세의 비유다. 누란(累卵)의 어원은 전국시대, 세 치의 혀[舌] 하나로 제후를 찾아 유세하는 세객(說客)들은 거의 모두 책사(策士)‧모사(謀士)였는데, 그 중에서도 여러 나라를 종횡으로 합쳐서 경륜하려던 책사‧모사를 종횡가(縱橫家)라고 일컬었다. 위(魏)나라의 한 가난한 집 아들로 태어난 범저(范雎)도 종횡가를 지향하는 사람이었으나 이름도 연줄도 없는 그에게 그런 기회가 쉽사리 잡힐 리 없었다. 그래서 우선 제(齊)나라에 사신으로 가는 중대부(中大夫) 수가(須賈)의 종자(從者)가 되어 그를 수행했다. 그런데 제나라에서 수가보다 범저의 인기가 더 좋았다. 


그래서 기분이 몹시 상한 수가는 귀국 즉시 재상에게 ‘범저는 제나라와 내통하고 있다’고 참언(讒言)했다. 범저는 모진 고문을 당한 끝에 거적에 말려 변소에 버려졌다. 그러나 그는 모사답게 옥졸을 설득, 탈옥한 뒤 후원자인 정안평(鄭安平)의 집에 은거하며 이름을 장록(張祿)이라 바꾸었다. 그리고 망명할 기회만 노리고 있던 중 때마침 진(秦)나라에서 사신이 왔다. 정안평은 숙소로 은밀히 사신 왕계(王稽)를 찾아가 장록을 추천했다. 


어렵사리 장록을 진나라에 데려온 왕계는 소양왕(昭襄王)에게 이렇게 소개했다. “전하, 위나라의 장록 선생은 천하의 외교가 이옵니다. 선생은 진나라의 정치를 평하여 ‘알을 쌓아 놓은 것처럼 위태롭다[累卵之危]’며 선생을 기용하면 국태민안(國泰民安)할 것이라고 하였사옵니다.” 소양왕은 이 불손한 손님을 당장 내치고 싶었지만 인재가 아쉬운 전국 시대이므로, 일단 그를 말석에 앉혔다. 그 후 범저(장록)는 ‘원교근공책(遠交近攻策)’으로 그의 진가를 발휘했다.


'누란누란'은 새로운 기업에게 인수된 어느 대학의 문과대학 이야기다. 독단적인 기업식 운영을 자행하는 재단, 생존과 발전을 내세우며 재단의 입장에 선 교수들, 재단의 독단에 반발하는 교수들 등 구성원 간의 서로 다른 입장이 끊임없이 충돌한다. 한국사회에서 점점 실추되고 있는 대학의 위상과 그 위기에 대한 묘사다. 지성의 요람이자 진리의 상아탑을 포기한 한국의 대학,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윤 추구의 장으로 전락한 대학의 현주소를 그려낸다. 


재단은 비 인기 학과, 취업률이 낮은 문과대를 하나의 학부로 줄이려고 하는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이에 구조조정에 대한 찬반투표를 시행하기로 하고, 찬성하는 교수와 반대하는 교수 사이에 갈등이 생긴다. 그러나 투표 실시는 취소되고 구조조정은 강행된다. 이후에도 연구실 축소, 교수 휴게실 폐쇄, 외국인 학생들의 입학 증가 등의 산적한 문제들 속에서 대학의 기업화는 가속화되어가지만 교수들은 거대한 흐름 앞에 일상을 이어간다. 


연극 소재대로라면 인문학이 죽어가고 있다는 상황을 묘사한 연극이라 하겠다. 인문학의 필요는 전세계적으로 더욱 높아지고 있는데, 한국 대학에서의 인문 교육은 성과주의 평가 기준 속에 더욱 축소되고 있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충돌 속에서 각각의 성격과 욕망은 이기주의·보신주의·적당주의 등 분열적인 양상으로 드러나고, 자본의 거대한 흐름 앞에서 무너지고 피폐해지는 인물들의 모습은 물질중심주의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반영하는 듯싶다.


연극 <누란누란>은 한국사회에서 점점 실추되고 있는 대학의 위상과 그 위기에 대해 이야기 한다. 지성의 요람이자 진리의 상아탑을 포기한 한국의 대학.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윤 추구의 장으로 전락한 한국 대학의 현주소를 찾아가 보고자 한다. 현재 대학은 캠퍼스 안에 외부 사업체를 끌어들이고 교수와 학생을 상대로 장사하는 등 수익 증대와 자산 규모의 확대를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정부는 입법을 통해 대학의 교육・연구용 자산을 수익용 자산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대학은 국가의 지원사업들에 교수들을 참여하도록 독려한다. 그러나 이러한 행태는 대학이 국가와 사회에서 가져야 할 공공성을 약화시키고 교육기관으로서 갖춰야 할 본질을 점점 잃게 만들고 있다. 인문학 분야 및 기초과학 분야의 위기는 대학의 기업화, 자본주의화라는 흐름 속에 위태롭게 놓여 있다. 거대한 자본의 흐름 앞에 피폐해져 가는 인간의 나약함과 본질을 잃어가는 대학의 모습, 마치 누란(累卵)의 형국이라 비견된 연극이다. 


본인이 인문대 교수인 홍창수 극작가는 꼼꼼한 취재를 바탕으로, 실감나는 현장 스펙터클을 구현해낸다. 후반부에 논문 표절, 총장 직선제와 임명제의 득실 등을 놓고 벌이는 아귀다툼은 흥미진진하다. 꼼꼼한 현실의 반영이 어떻게 연극의 지평을 확장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무대는 흑색으로 된 삼면벽과 백색으로 된 조형물로 구성된다. 배경에 백색의 창 같은 가리개개 좌우로 연결되어 부착되고 출입문 형태의 백색 조형물도 배경 좌우에서 장면변화에 따라 객석 가까이 이동할 수 있도록 롤러와 선을 깔았다. 또 백색의 입체로 된 정사각의 조형물롸 받침대 형태의 조형물을 배치하고, 역시 장면변화에 따라 배우들이 이동시켜가며 의자와 탁자로 사용하며 교수실, 강의실, 카페 그 외의 장소로 사용된다.


출연 전소현, 권남희, 정아미, 노윤정, 오정민, 박현미, 우연호, 권기대, 조주경, 김루시아, 김윤태, 최 담, 이종승, 박원진, 이서이, 조하연, 김현주, 박신운 등이 배역마다 더블 캐스팅되어 출연하여 대사와 연기는 물론 무용하듯 또는 훈련받는 생도 같은 공통된 동작으로 기량과 열정을 다한 호연으로 1시간 30분의 공연을 이끌어 가며 갈채를 받는다. 필자가 관람한 날엔 심리학과 선 교수에 정아미, 역사학과 장 교수에 최 담, 영문학과 유 교수에 김윤태, 국문학과 한 교수에 권기대, 불문학과 지 교수에 박현미, 역사학과 민 교수에 이서이, 문과대학장에 노윤정, 교학처장에 박원진, 국문과 심 강사에 박신운 배우가 출연해 관객의 기억에 아로새겨질 놀라운 호연을 펼쳤다.


조연출 이진샘, 무대 김혜지, 조명 문동민, 음악 류승현, 안무 최병로, 사진 김명집, 오퍼 허동수, 그래픽디자인 디자인SNR, 기획 컬쳐루트 등 스텝진의 열정과 기량도 하나로 뭉쳐, 지공연협동조합의 홍창수 작 문삼화 연출의 누란누란(累卵累卵)을 출연진과 연출가의 기량이 일치된 근래 보기드문 한편의 탁월하고 우수한 연극으로 창출시켰다.


* 주요경력


황해도 금천생, 서울고 서울대미대, 서울대학교 총동문회 이사, 극작가/연출가/평론가, 한국희곡뮤지컬창작워크숍 대표, 한국문인협회 희곡분과 위원, 전 서초연극협회 회장, 본지 자문위원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한국의 전통사찰더보기
 박정기의 공연산책더보기
 조선왕릉 이어보기더보기
 한국의 서원더보기
 전시더보기
 한국의 향교더보기
 궁궐이야기더보기
 문화재단소식더보기
리스트페이지_004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