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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통사찰 108] 보물 14종을 보유한 천년고찰 ‘개심사’
  • 윤여금 기자
  • 등록 2023-07-09 23:11:26
  • 수정 2024-04-02 04:3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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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금 기자] 코끼리 왕의 뜻인 상왕산에 위치한 개심사는 654년에 혜감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하며 고려 충정왕 때 처능대사가 중창했고, 1484년에 화재로 소실된 것을 중건했고, 1740년에 중수를 거쳐 1955년 전면 보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달마대사관심론 목판, 모자리혹론 목판 등의 보물 14종이 박물관에 소장돼 있고,  명부전(충남도 문화재자료), 팔상전, 박물관, 산신각, 요사채가 자리해 있다. 


       ▲ 개심사 명부전(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94호)


개심사 명부전은 무량수각 동편에 위치하며 공포는 익공계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으로 측면에 풍판(風板: 비바람을 막기 위해 연이어 대는 널빤지)이 있는 조선 초기의 건물이다. 









명부전 내부에는 철불지장보살좌상과 시왕상(十王像)을 모신 전각이다. 지장보살은 저승세계인 명부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모두 구원하기 전에는 성불하지 않겠다고 맹세한 보살이다. 시왕은 저승세계에서 죽은 자의 죄를 심판하는 10명의 왕이다.


       ▲ 철불지장보살상






불단 가운데는 지장보살이 앉아 있고, 양옆에 무독귀왕과 도명존자가 서 있다. 무독귀왕은 사람들의 악한 마음을 없애준다는 왕이다. 도명존자는 사후세계를 경험하고 이승에 돌아와 자신이 본 바를 세상에 알린 왕으로 젊은 스님의 모습을 하고 있다. 불단 양옆에는 시왕상과 시왕의 재판을 보좌하는 판관상 및 실무관인 녹사의 상이 배치돼 있으며, 양쪽 끝에는 불교의 수호신인 인왕상이 서 있다. 출입문 좌우에는 사람과 같은 크기의 사자상이 서 있다. 










     ▲  시왕상(十王像)


      ▲  시왕상(十王像)


개심사 명부전은 1646년(인조 24년)에 지어진 건물로 안쪽에 기둥을 세우지 않아 공간이 넓어보이는 특징이 있다.  


명부전은 개심사 중창 수리기의 내용에 '순치삼년명부전신설'이란 기록이 있어, 1646년(조선 인조24)에 신축된 건물임을 알 수 있다.



#제1 대왕(지옥)


세상에서 부모에 불효하고 주색에 방황하여 악행을 쌓은 자는 칼날을 산같이 꽂아 놓은 지옥에 가두어 벌하고 반면에 착한 일과 의로운 일을 많이 한 사람은 극락세계로 보내어 영화를 누리게 할 것이다.



#제2 초광대왕(화탕지옥)


세상에서 도적질하거나 살인하거나 부모에 불효한 사람은 펄펄 끊는 기름가마 솥에 넣어 죽이는 지옥으로 보낼 것이고 반면에 부부와 화합하고 이웃을 도운자와 많은 공덕을 쌓은 사람은 극락으로 보내리라.



#제3 송제대왕(한빙지옥)


이 세상에서 빈민구제를 많이하고 선한 일을 한 자 즉 배고픈 이웃을 도와주고 남에게 보답없이 선행을 하였으면 극락으로 보내 부귀를 누리게 될 것이나 악독한 짓으로 남을 괴롭혔으면 찬 얼음 지옥에 가두리라






         ▲ 서산 개심사 팔상전




        ▲ 서산 개심사 팔상전


팔상전은 석가모니의 일대기를 담은 탱화 등을 보관하는 전각으로, 팔상(八相)은 부처님 일대기의 여덟 가지 장면을 의미한다. 


서산 개심사 팔상전은 명부전 북쪽에 위치하며 정면 3칸, 측면 3칸의 주심포 건물이다.


      ▲ 서산 개심사 박물관


서산 개심사 박물관에는 제석.범천도  및 팔금강.사위보살도(보물), 달마대사관심론 목판(보물), 달마대사혈맥론 목판(보물), 묘법연화경 목판(보물), 계초심학인문 목판(보물), 도가논변모자리혹론 목판(보물), 몽산화상육도보설 목판(보물) , 예수시왕생칠재의찬요 목판(보물) ,  성관자재구수육자선정 목판(보물) , 오대진언 목판(보물 ) 등이 개심사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 서산 개심사 제석·범천도 및 팔금강·사위보살도(보물)/문화재청 제공


          ▲ 서산 개심사 제석·범천도 및 팔금강·사위보살도(보물)/문화재청 제공


            ▲ 서산 개심사 제석·범천도 및 팔금강·사위보살도(보물)/문화재청 제공


         ▲ 서산 개심사 제석·범천도 및 팔금강·사위보살도(보물)/문화재청 제공


            ▲ 서산 개심사 제석·범천도 및 팔금강·사위보살도(보물)/문화재청 제공


        ▲ 서산 개심사 제석·범천도 및 팔금강·사위보살도(보물)/문화재청 제공

 

       ▲ 서산 개심사 제석·범천도 및 팔금강·사위보살도(보물)/문화재청 제공


         ▲ 서산 개심사 제석·범천도 및 팔금강·사위보살도 (보물)/문화재청 제공


        ▲ 서산 개심사 제석·범천도 및 팔금강·사위보살도 (보물)/문화재청 제공

            ▲ 달마대사관심론 목판(達磨大師觀心論 木板) 보물/문화재청 제공


개심사에 소장된 ‘『달마대사관심론』 목판’은 모두 8매가 전하고 있다. 다만 제1장부터 제21장까지는 7판에 새겨져 있으나, 마지막 판에는 제22장과 함께 『도가논변모자리혹론(道家論辨牟子理惑論)』의 17장이 함께 새겨져 있다. 조선시대에 간행된 『달마대사관심론』은 고창 문수사간본(1538), 무등산 안심사간본(1570) 등이 있으나, 목판으로 현전하는 것은 개심사 소장본이 유일하다.


마지막 장인 제22장과 함께 새겨진 『도가논변모자리혹론』의 제17장에 남아 있는 ‘萬曆八年庚辰(1580)四月日新刊于伽耶山普願寺’라는 내용을 통하여 1580년 4월에 가야산 보원사에서 새로 간행하였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목판은 조선시대에 간행된 『달마대사관심론』의 현전 판본 가운데 그 모본이 완전하게 전하고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따라서 보물로 지정하여 원천자료를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


       ▲ 달마대사혈맥론 목판(達磨大師血脈論 木板) 보물/문화재청 제공


개심사에 소장된 ‘『달마대사혈맥론』 목판’은 모두 7매가 전한다. 한 면에 1장에서 3장까지 새긴 판도 있고, 더욱이 “팔(八)”자형으로 굽어진 목판도 사용하였는데 이러한 경우에는 굽어진 형태에 맞추어 해당 장을 새겨 놓았다. 이렇게 서적을 목판의 크기나 모양에 맞추어 자유분방하게 새긴 사례는 매우 특이한 경우에 속한다. 


『달마대사혈맥론 목판』은 1579년 5월에 간행되어 지금까지 거의 완전하게 전하는 것이다. 간행은 마지막 장의 “萬曆七年乙卯(1579)仲夏忠淸道瑞山地伽耶山普願寺留鎭”과 같이 선조 12년(1579) 5월에 개심사 인근에 있던 보원사나 보원사 인근에서 간행한 것이다. 


조선시대에 간행된 「달마대사혈맥론」의 국내 전본으로 개심사 소장본보다 앞선 판본으로는 광양 옥룡사간본(1473), 무등산 안심사간본(1570) 등이 있으나 목판으로 전하는 것은 없다. 


오직 개심사 『달마대사혈맥론』의 목판만이 완전하게 전하고 있다. 따라서 보물로 지정하여 원천자료를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


         ▲ 묘법연화경 목판(妙法蓮華經 木板(2017-2) 보물/문화재청 제공


묘법연화경 목판은 1443년 성달생이 정서하여 새긴 고산 화암사판을 바탕으로 1565년 충청도 가야산 보원사(普願寺)에서 복각(復刻)한 것이다. 권말에 있는 혜능(慧能)의 발문을 통해 이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총112판 중에서 41~44장에 해당되는 1판이 결판되어 서산 개심사에는 111판이 소장되어 있다. 판목은 나무의 생긴 그대로의 굴곡을 살려 판각했기 때문에 자연친화적인 느낌이 강하다. 


임진왜란 이전에 간행된 성달성계 묘법연화경 목판 중 강화 전등사 소장 묘법연화경 목판과 더불어 유일하게 전해지고 있는 판본이라는 점에서 자료적 가치가 크다.


     ▲ 계초심학인문 목판(誡初心學人文 木板) 보물/문화재청 제공


       ▲ 계초심학인문 목판 (신국보보물전 1017~2019 특별전 도록)/문화재청 제공


계초심학인문 목판은 1584년(선조 17)에 가야산 개심사에서 간행한 것이다. 『계초심학인문』은 보조국사 지눌(知訥)이 1205년에 저술한 책으로 불교수행의 초보자들이 경계해야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총 8판으로 결판 없이 완전하게 전하고 있으며, 한 면에 2장씩 판각되어 총 32장이 새겨져 있다. 충해나 균열 등도 없어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하다. 


1603년 간행된 하동 쌍계사 소장본(능인암 판각본)보다 10년이 앞서 제작된 것으로, 현존 『계초심학인문』목판 중 가장 오래되고 완전한 목판이라는 점에서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하였다.


         ▲ 도가논변모자리혹론 목판(道家論辨牟子理惑論 木板) 보물/문화재청 제공


『도가논변모자리혹론』은 중국 한(漢)나라 사람으로 전하는 모자(牟子)가 당시 사람들이 불교에 가지고 있던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쓴 글로, 일반적으로 『모자리혹론(牟子理惑論)』 혹은 『리혹론(理惑論)』으로 불린다. 


도가논변모자리혹론 목판은 1580년(선조 13) 가야산 보원사(普願寺)에서 개판된 것으로, 총5판 중에서 제1장 등에 해당하는 1판이 결판되어 현재 4판이 개심사에 전해지고 있다. 


조선시대 동안 『도가논변모자리혹론』은 목판으로 간행된 사례가 매우 희소하며, 그 중 개심사 판본이 현존 유일본이자 가장 오래된 목판이라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크다.


      ▲ 몽산화상육도보설 목판(蒙山和尙六道普說 木板) 보물/문화재청 제공


『몽산화상육도보설』은 원(元)의 선승인 몽산 덕이(蒙山德異, 1231~1308)가 불가의 육도윤회(六道輪廻)를 설명하기 위해 지은 책으로, 몽산화상육도보설 목판은 1584년(선조 17) 현 소장처인 개심사에서 개판한 것으로 완전한 구성을 갖춘 6판이 전해지고 있다.


 『몽산화상육도보설』은 15~16세기 가장 활발히 간행되어 현재 20여종의 판본이 전하는데, 진안 용출사 현암본(1497) 계통의 해서체 13자본이 가장 많으며, 개심사본은 행서체의 15자본인 일월사본(1432), 자비령사본(1490), 대광사본(1509) 계통을 저본으로 하여 복각된 것으로 파악된다. 


임진왜란 이전에 간행된 몽산화상육도보설 목판 중 가장 완전한 판본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


     ▲ 예수시왕생칠재의찬요목 (豫修十王生七齋儀纂要 木板) 보물/문화재청 제공


예수시왕생칠재의찬요 목판은 1577년(선조 10) 충청도 서산 가야산 보원사(普願寺)에서 개판한 것으로, 현재 개심사에 26판이 소장되어 있다.『예수시왕생칠재의찬요』는 살아있는 동안 공덕을 미리 닦아 사후에 극락왕생하고자 하는 의식인 예수재(豫修齋)에 대한 의식집이다. 


개심사 소장 『예수시왕생칠재의찬요』 목판은 여러 가지 의식문을 합철하여 새긴 것으로, 본문 42장과 「예수천왕통의」, 「소청사자소」 등과 함께 총 26판에 55장이 전한다. 구성과 행자수가 동일한 안동 광흥사간본(1576년)과 비교해 보면 「예수문」 31장이 유실되었으며, 42장에 시주질을 비롯한 간행 기록이 새겨져 있다.


원래의 목재 형태를 목판으로 그대로 활용했기 때문에 모양과 크기가 다양하며, 임진왜란 이전에 간행된『예수시왕생칠재의찬요』목판 중 가장 오래되고 완전한 수량이 전해진다는 점에서 문화재적 가치가 크다.


      ▲ 성관자재구수육자선정 목판(聖觀自在求修六字禪定 木板) 보물/문화재청 제공


성관자재구수육자선정 목판은 불가에서 육자진언(六字眞言)으로 선정을 닦는 공덕을 담은 책인 『성관자재구수육자선정』을 간행하기 위해 판각한 것으로, 1621년(광해 1) 충청도 덕산(德山) 상왕산(象王山) 가야사(伽倻寺)에서 개판해서 현재 개심사에 전래되고 있다. 한 면에 2장씩 판각하여 1판에 모두 4장이 새겨진 형태로 총 5판에 19장이 새겨져 있다. 


마지막 제16장에 새겨진 간기(刊記)를 통해 발원문과 더불어 목판이 판각된 시기와 판각처, 불사를 시주한 김국남(金國男) 등 6명의 속인(俗人)과 판각을 담당한 각수 경은(敬訔)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보존상태가 양호하며, 성관자재구수육자선정 목판 중 가장 오래되고 유일한 판본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 오대진언 목판(五大眞言 木板) 보물/문화재청 제공


     ▲ 오대진언 목판 (신국보보물전 2017~2019 특별전 도록)/문화재청 제공


오대진언 목판은 1604년(선조 37)에 가야산 강당사(講堂寺)에서 간행된 것이다. 1619년 한여현(韓汝賢)이 지은 서산군 읍지류인 『호산록(湖山錄)』에 보원사가 강당사로 불린다는 기록이 있어 강당사는 보원사의 또 다른 이름인 것으로 보인다. 


오대진언은 1485년(성종 16)에「사십이수진언(四十二手眞言)」,「신묘장구대다라니(神妙章句大陀羅尼)」,「수구즉득다라니(隨求卽得陀羅尼)」,「대불정다라니(大佛頂陀羅尼)」,「불정존승다라니(佛頂尊勝陀羅尼)」등 다라니 다섯 종류를 묶어 범자(梵字)를 적고 한자와 한글로 음역을 달아 처음 간행되었다. 이로 인해 범자와 한글의 용법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개심사 소장 목판은 오대진언 중에서「수구즉득다라니」부분만을 판각한 것으로 9판(28장)이 완전하게 전래되고 있으며, 현존 오대진언 목판 중 가장 오래되고 완전한 판본으로서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 서산 개심사 산신각


산신은 원래 불교와 관계가 없는 토착신이나, 불교의 재래신앙에 대한 수용력에 의하여 먼저 호법신중이 되었다가, 후대에 원래의 성격을 불교 안에서 되찾게 된 것이다.

 

산신각에는 호랑이와 노인의 모습으로 묘사한 산신을 봉안하거나, 이를 탱화(幀畫)로서 그림만을 모시기도 한다. 산신신앙은 우리나라 산악숭배신앙과 관련이 깊다. 우리나라 불교사의 초기 및 중기의 사찰에서는 산신각을 찾아볼 수 없다.

 

조선시대에 나타나기 시작한 산신각은 하근기 사람들을 위한 방편으로 건립된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의 산신은 가람수호신으로서의 기능과 산속 생활의 평온을 비는 외호신으로서도 받들어지고 있다. 현재 산신각에서는 자식과 재물을 기원하는 산신 기도가 행하여지고 있으며,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찰에는 산신각이 갖추어져 있다.




     ▲ 서산 개심사 산신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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