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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서원 201] 조경온배향한 '회계서원(晦溪書院)'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3-07-08 08:5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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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준 기자] 회계서원은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조경온을 배향하고 있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신녕면 치산리의 구천서원에 권응수와 함께 제향했으나 문무가 다르다 해 1832년(순조 32)에 화남면 귀호리에 회계서원을 따로 창건하고 위패를 이봉안(移奉安)했다. 1871년(고종 8)에 훼철된 후 설단해 유지해 오다가 1994년 현 장소로 이건했다.

 


조경온(曺景溫, 1548~1592)의 자는 여율(汝慄), 호는 임계(林溪), 본관은 창녕(昌寧), 아버지는 희장(希章)이다. 조경온(曺景溫)은 임신왜란 때 적들이 남의 분묘를 발굴하는 변(變)이 있으므로 가권(家眷)을 산중으로 피난을 보내고 자기는 재사(齋舍)에서 묘를 수호했다. 하루는 왜적이 와서 창(槍). 검(劒)으로서 위협하나 조경온이 의관을 정재하고 조금도 굴복치 않거늘 적이 감동해 그냥 가고 말았다. 


그 후 왜병이 또 와서 위협하다가 칼로 목을 찔려 유혈이 낭자하니 제적(諸敵)들이 경동(驚動)해 묘직(墓直)을 찾아 잘 보호하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내가 나라를 위해서 전지(戰地)에 나가지 못한 것이 한스러우나 선묘 앞에서 죽는 것도 영광"이라면서 그 익일(翌日)에 절명(絶命)했다. 선조때에 효(孝)로써 공조참의(工曹參議)의 증직(贈職)이 내려졌다.

 

1994년 이건당시 사당인 효절사(孝節祠)와 강당, 무본재(務本齋) 등 동.서재를 중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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