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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통사찰 138] 신라 51대 잔성여왕때 도선국사가 창건한 '봉원사(1)'
  • 박광준 기자
  • 등록 2024-04-13 17:44:47
  • 수정 2024-04-15 08:5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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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륵전(彌勒殿)



미륵전은 현대식 건물로 조성되어 내부에는 미륵부처님의 입상을 봉안하고 있으며, 이곳에는 인등을 모신 인등각으로도 사용되어지는 전각이다.


# 미륵부처님



석가모니불이 입멸한 뒤 56억 7천만년이 되는 때에 다시 사바세계에 출현해 화림원(華林園)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미륵보살이 성불하고, 3회의 설법으로 모든 중생을 교화하게 되는데 이 법회를 '용화삼회'라고 하며 용화수 아래에서 성불하기 이전까지는 미륵보살이라 하고 성불한 이후는 미륵불이라 한다.


미륵보살의 미륵이란말은 범어로는 마이트레야(Maitreya)이며, 미륵은 성씨이고 이름은 아지타(Ajita, 阿逸多)로서 성인 미륵이 자씨(慈氏)로 번역되어 흔히 자씨보살로 불리기도 한다.


# 칠성각(七星閣)







주불로는 약사여래불을 봉안하고 있으며, 내부에 조성되어 있는 탱화들도 대단히 좋은 작품으로 평가된다.


# 만월전(滿月殿)





만월전은 대웅전 가람과는 다소 거리 및 높이 차이가 있고 경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있다. 주불로는 약사유리광여레불을 봉안했고 협시불로는 독성님(오백나한 중 한분)이 모셔져 있다. 1904년 산신단을 봉안했고 내부에는 4점의 탱화가 있다. 그중 산신탱화 및 독성탱화 2점은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일부 부식된 부재는 신재로 교체됐으나 건물의 규모 및 형식에는 변형이 없었다.


# 전씨영각(全氏靈閣)



부처님당시의 기원정사(祇園精舍) 즉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 이야기는 우리에게 매우 잘 알려진 유명 이야기다. 급고독이라 불리는 장자는 제타의 소유인 원림(園林) 구입해 승가에 기증하는데, 원림을 구입을 하겠다는 의사를 보인 급고독 장자에게 제타는 원림의 넓이와 같은 양의 금을 요구해, 급고독장자는 전 재산을 황금으로 바꾸어 땅에 깔고 팔라고 한다. 


낙화담 이에 제타는 연유를 묻고 감동해 나머지 원림도 기증했다고 한다. 봉원사에 전씨 부부는 부처님 당시의 급고독 장자라 해 부부가 한 평생 모은 재산을 모두 기부를 했다. 그래서 봉원사에서는 전씨 부부를 위해 매년 기일에 제사를 모시고 있다.


# 운수각(雲水閣)




운수각(雲水閣)은 조실스님의 거처로서 사용되는 곳으로 팔직지붕의 정면 3칸, 측면 1칸의 벽체로 되어 있고 대웅전과 나란히 배치되어 있으며 그 오른편으로는 영안각(靈安閣)이 자리잡고 있다.


# 영안각(靈晏閣)




이 건물의 기능은 일정기간동안 혼백(魂魄)을 모셔두는 곳으로 아미타불을 봉안하고 있다. 60년대초 건립된 건물로 화려한 단청으로 마감된 것이 특징이다.


# 종각(鐘閣)




이 건물이 지어진 시기는 대방건물 이건시기와 같고 그당시 제 1의 목수인 이광규씨에 의해 건립 됐고 종각은 단칸 건물로 팔작지붕 형태로 짜여져 있고 종의 아래에는 단지가 묻혀있는데 이것은 소리의 공명정도를 길게 하고자한 방법이다.


# 16나한상



나한이란 아라한(阿羅漢)이라는 뜻으로 수행 완성한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이 세상에서 정법(正法)을 지키는 불제자. 당(唐)나라 현장(玄)이 번역한 '대아라한난제밀다라소설법주기(大阿羅漢難提蜜多羅所說法住記)'에는 이들 나한의 이름이 보인다. 즉 빈도라발라타사(賓度羅跋惰), 가락가벌차(迦諾迦伐蹉), 가락가발리타사(迦諾迦跋釐墮), 소빈타(蘇頻陀), 낙거라(諾距羅), 발타라(跋陀羅), 가리가(迦理迦), 벌사라불다라(伐羅弗多羅), 수박가(戍博迦), 반탁가(半託迦), 나호라(羅), 나가서나(那迦犀那), 인게타(因揭陀), 벌나파사(伐那婆斯), 아시다(阿氏多), 주다반탁가(注茶半託迦)이다. 한국에서는 8세기 후반 말세신앙과 함께 16나한에 대한 신앙이 깊어지기 시작했다고도 한다. 부처님 당시의 제자중 16분의 아라한상을 봉원사에서는 대웅전 뜰앞에 조성해 봉안했다.



아라한(阿羅漢)은 산스크리트 arhan을 소리나는 대로 적은 것으로, 줄여서 나한(羅漢)이라고 한다. 응공(應供), 무학(無學), 이악(離惡), 살적(殺敵), 불생(不生)이라고도 번역한다. 응공은 마땅히 공양을 받아야 한다는 뜻이며, 무학은 더 배울 것이 없는 것, 이악은 악을 멀리 떠났다는 의미로, 살적은 번뇌라는 적을 죽였으므로, 불생은 미혹한 세계에 태어나지 않았으므로 이렇게 표현한다.



초기 불교의 최고의 성자를 가리키는 뜻으로 번뇌를 완전히 끊어 더 닦을 것이 없으므로 마땅히 공양받고 존경받아야 할 성자라는 뜻이다. 이 경지를 아라한과(阿羅漢果), 이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수행하는 단계를 아라한향(阿羅漢向)이라 한다. 초기 불교에서는 붓다를 아르하트(arhat: arhan의 주격)라고도 했고, 고대 인도의 여러 학파에서도 존경받을 만한 수행자를 아르하트라고 했다.



자이나교에서는 지금도 성자를 아르하트라고 한다. 그러나 대승불교에 이르러서는 부처와 아라한을 구별해, 아라한은 부처의 경지에 미치지 못하는 소승의 성자라고 격하시켰다. 아라한의 유래는 부처님이 정각을 이룬 녹야원에서 부처님과 함께 수행한 다섯 수행자에게 가장 먼저 설법을 했다는 초전법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다섯 사람이 부처님과 함께 생활하고 원시적인 교단의 형태를 이루게 됐고, 이후 이들은 차례대로 모두가 정각을 얻게 됨으로써 부처님을 포함해 여섯 사람의 아라한이 생겼다고 한다. 



초기 불교에서 아라한은 부처님과 같은 사람을 가르켰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부처님의 별칭인 '응공'이라고도 함께 불렀던 것이다.


그러나 부파불교에 이르러서는 아라한이 부처님을 가리키는 명칭이 되지 않고 불제자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계위가 됐다. 


# 관음바위


사진-봉원사 홈페이지'관음바위'에 얽힌 이야기는 영조임금당시 현재 연세대학 자리했던 봉원사가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게 된 얽힌 비화(秘話)로서 구전(口傳) 되어 오던 것을 심만춘(沈滿春) 법사스님이 교계 원로스님의 말씀을 토대로 1979년 정리해 '관음바위'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20년이 지난 후 최영찬 거사의 각색에 의해 '우리 곁에 계신 관세음보살님'이란 제목으로 불기 2544년 경진년 4월 초파일에 만화책으로 다시 선보이게 됐다./사진-박광준 기자<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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