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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통사찰 104] 연암산 중턱에 위치한 하늘이 감춘 비처 ‘천장사(연장암)’
  • 윤여금 기자
  • 등록 2023-06-15 11:15:58
  • 수정 2024-04-02 04:3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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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금 기자] 천장사(천장암)는 연암산 중턱에 제비집처럼 자리해 하늘이 감춘 사찰로 불리며 백제(무왕34) 633년에 담화선사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인법당은 조선중기부터 지금까지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고, 인법당 옆에는 경허선사가 폐침망찬 수행한 원성문, 만공스님의 수행 전진한 월면당 등이 있고, 대한불교조계종 본사인 수덕사(修德寺)의 말사로 인법당, 산신각, 지장전, 성우당, 염궁선원, 요사가 자리해 있다. 

 

    ▲ 천장사(전통사찰 제42호) 


천장사(천장암)는 서산 고북면 연암산(440m) 중턱 골짜기 소나무 숲에 제비집처럼 자리해 ‘하늘이 감춘 절’이라 불린다. 천장이란 하늘이 감춘다는 뜻이다. 연암산(燕岩山)은 큰 바위가 서해 쪽에서 보면 제비가 날아가는 형상으로 보이며, 그 제비 바위에서는 저녁 일몰과 천수만, 간월호, 사찰 옆에 삼준산과 첩첩 산세는 진풍경이다. 천장사는 백제(무왕34) 633년에 담화선사(曇和大師)가 제자와 함께 수도하기 위해 창건했다고 전한다. 




천장암 현판이 걸려있는 인법당은 조선 중후기부터 지금까지 스님들이 수행과 생활을 해 온 곳으로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다.














        ▲ 인법당옆 원성문과 월면당


인법당 옆에는 근대 한국불교 선종을 중흥한 경허선사가 눕지 않고 금식하며 수행한 원성문, 만공스님 월면당, 수월 스님이 염불삼매에 들어간 부엌이 있고, 혜월스님이 짚신을 삼다가 득도한 토굴 등 용맹정진했던 수행처가 있는데, 한국불교 수행 문화재로 보존 해야 할 가치가 있는 장소이다. 








         ▲ 성우당




      ▲ 염궁선원


성우당(경허스님 기념)과 염궁선원은 승가와 재가자가 참선 정진하는 곳이다.


근현대 경허선사(1846~1912)가 깨달음을 얻어 오래 머물렀고, 후학들을 지도했고, 그의 제자인 수월, 혜월, 만공 선사가 출가해 경허선사의 제자가 돼 수도하고 도를 깨쳤다는 곳으로 많은 수도승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편, 천장사를 배경으로 경허스님의 삶과 수행을 잘 묘사한 최인호(崔仁浩)의 장편소설은 『길없는 길』로 널리 알려졌다. 


도지정문화재로는 칠층석탑(문화재자료 제202호)과 아미타후불탱화(유형문화재 제186호)가 있다. 


      ▲ 서산 천장사 아미타후불탱화(瑞山 天臧寺 阿彌陀後佛幀畫)(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86호)

        /문화재청 제공


천장사 아미타후불탱화(충남도 문화재)는 영.정조 시기 궁중의 불사를 맡은 '상겸'이라는 불화장이 그렸다. 상겸의 작품가운데서 가장 우수하면서도 독창적인 화풍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중앙의 본존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4대보살과 사천왕, 제자, 용왕, 용녀 등이 둘러쌓은 구도를 하고 있으며, 높은 대좌위에 앉은 본존불은 화면의 중앙을 차지하고 있고, 좌우보살인 관음과 대세지보살은 앞면 양측에 서 있는 자세에 각기 정병과 여의를 쥐고 있다. 


관음과 대세지보살상의 안쪽에 두 명의 동자상이 손에 지물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은 상겸만의 독창적인 특징이다.  이 동자상은 원래 상단의 좌우에 배치되는 것이 통례이다. 아미타불도에 선악동자가 배치되는 사례는 거의 없다. 색채는 붉은색을 주조색으로 사용했고, 보조색으로는 녹색과 군청색을 사용했다. 오랜 세월 변색과 퇴색이 된 것을 복원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기타 인법당 안에 모셔진 1896년(고종33)신중탱화와 1788년(정조12) 칠성탱화도 조선 후기 제작된 문화재급 탱화들이다. 


상겸은 경기도에 위치한 정조의 왕실 사찰인 용주사 불사에 참여할 정도로 당시 기량을 인정받았던 화가이다. 이외에도 상겸은 1780년 남양주 봉선사 경기도 사찰에서 활동하면서 경상도 전라도 등 광범위한 지역에서도 작품을 남기고 있다.


천장사 관계자는 “아미타후불탱화(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86호)를 보관함에 잘 보관 유지 관리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 칠층석탑 (충청남도 문화재재료 제202호) (고려시대) 


천장사 인법당 앞에 우뚝선 기단은 밑돌이 바닥돌과 하나의 돌로 되어 있고, 그 위로 지붕 모양의 맨 윗돌을 덮어두고 있다. 그 폭이 탑신의 1층 몸돌과 거의 같다. 탑신부의 각 몸돌은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겨 두었고,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줄어드는 비율이 그리크지 않다. 지붕돌은 밑면에 3단씩의 받침을 새겨두었다. 


4층 지붕돌에서부터 7층 몸돌까지는 흩어져 있던 석재를 모아 쌓았다. 각종 병화로 소실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탑신부의 몸돌이나 지붕돌의 모습에서 고려시대의 석탑 양식을 보이고 있다.


천장사 관계자는 “천장사 7층석답은 해체·보수한 것이 아니고, 전쟁 등으로 흩어져 산재해 있던 석부재를 오래전(1~200년전)에 모아 쌓았는데, 누가 모아서 쌓았는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다.”고 전했다.


# 경허스님과 천장사 삼월(三月) 만공, 수월, 혜월스님


만공, 해월, 수월스님은 천장사에서 경허스님을 모신 불연으로 일제하에서 한국 불교를 거듭 진작시켰다. 만공은 전국 선원의 수좌들을 지도하고 해월은 남쪽에서 수월은 북간도에서 중생 구제와 불법 홍포에 힘을 기울여 한국불교의 새싹을 틔웠다.


       ▲ 경허스님 기념탑 


 

      ▲ 경허스님 방


경허(1849~1912)스님은 입의 설법, 구두선이 아니라 정신을 바짝 들게하는 살아있는 법문으로 만공, 수월, 혜월 등 제자들을 키우고 조선 선불교(禪佛敎)를 중흥했다. 9세 때 의왕 청계사에 출가하고, 14세 때 동학사 만화스님께 공부해 21살에 전강을 받고 31세까지 동학사 강사로 학인을 지도했다. 그해 동학사에서 용맹정진 중 ’콧구멍 없는 소’로 여사미거 마사도래(驪事未去 馬事到來)라는 화두를 타파한 뒤 천장사로 왔다. 


 #경허스님의 오도송


홀연히 콧구멍 없다는 말을 듣고 단박에 깨치니 삼천대천세계가 내 집이더라

유월이라 연암산 아랫길에서 할 일 마친 야인이 태평가를 부르네


원성문 방에서 폐침망찬하며 용맹정진한 후 생사대사(生死大事)를 마치고 나와, 18년 간을 천장사에서 보림(保任)하면서 전국 각지의 사찰에 선원을 개원하고 법문을 펼쳐 조선의 선불교의 새바람이 불개했다. 1904년 천장사에서 만공에게 전법게(傳法偈)를 주고 삼수갑산으로 갔다. 당시는 외세와 일제로 인해 나라가 어려웠고 백성은 곤궁했다. 갑산 웅이방 도화동에서 학동들과 젊은 지식인들을 교유하던 중 1912년 천화했다. 



#수월스님


수월스님(1885~1928)은 홍성 출신으로 천장사에서 태허스님을 은사로 경허스님을 법사로 출가한 관음보살의 화현 같은 스님이라고 전한다.


천장사 공양주를 하던 스님은 부엌에서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암송하며 삼매에 들었고, 북간도에서 어려운 조선 백성들에게 손수 짚신을 삼고 주먹밥을 만들어 망국의 한을 품고 국경을 넘은 사람들의 어둠을 밝혔다.


#해월스님


해월스님(1861~1937)은 충남 예산 출생해 정혜사에 출가하고, 24세 때 천장사에서 경허스님을 모시고 공부했다. 경허스님은 “그대는 남방에 인연이 있으니 남쪽으로 내려가라”고 말했다. 고로 선산 도리사, 파계사 등에서 수행과 사찰 중창에 힘썼고 부산 선암사에서 선풍을 날리며, 암울했던 일제기 남쪽 하늘의 어둠을 밝혔다. ‘하루 일을 안하면 하루 동안 먹지 말라’를 실천하며 천장사 바위 밑 토굴에서 엄동설한에도 수행했다. 


#만공 스님


만공스님(1871~1946)은  전라도 정읍 출신으로 동학사에서 출가 후 천장사에서 경허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받았고, 경허스님을 어렸을 때부터 시봉하며  존경했고, 선기(禪機)가 뛰어나고 지혜가 밝았다. 아산 봉곡사에서 초발심을 했고 통도사 백운암에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 


천장사에서 경허스님이 전법계로 부촉하니 수덕사 정혜사에서 주석하며 전국에서 몰려온 수좌들을 제접했다. 덕숭산 견성암에서 일엽스님 등 많은 비구니스님을 배출하고 수덕사를 중창했고 한국 선불교의 토대를 닦아 놓으신 대선사(大禪師)이다. 


80여 명의 법제자와 왜색불교에 맞서 선학원을 중심으로 조선불교의 자력갱생을 주도했다. 만해 한용운 선사와 가까이 하고 아낌없는 후원을 했고, 경허스님 유고집을 출간했다. 덕숭산 전월사(轉月舍)에서 1946년 입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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