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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기의 공연산책 256] 지구엔터테인먼트, 양지모 연출의 바니타스
  • 박정기 자문위원
  • 등록 2023-06-10 20:4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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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블루에서 지구엔터테인먼트의 최 은 작 양지모 연출의 바니타스를 관람했다.


Vanitas는 라틴어로 '허영심 중 허영심'을 뜻하는 'Vanitas Vanitatum'에서 파생되었다.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 중 가장 대표적인 정물화는 '바니타스(Vanitas) 정물화'다. '허무'란 뜻을 가진 라틴어 바니타스는 정물화에서 재물의 덧없음, 시간의 무상함,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의미한다. 해골이나 빈 유리잔, 낡은 책이나 골동품, 꽃을 갉아먹는 벌레는 보는 사람에게 언젠가는 죽게 마련이니 방탕한 생활을 경계하라, 즉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꽃, 세계 각지에서 온 진귀한 보물들은 언젠가는 부식되고 쓸모 없어지는 존재들이다. 인간도 시간이라는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이 물건들이 아무리 값비싸고 화려하다 하더라도, 영원히 소유할 수는 없다는 걸 바니타스 정물화는 이야기한다.


정물화는 보통 의뢰인의 집을 꾸미는 인테리어 용도로 주문되었다. 다양하고 화려한 물체들이 그려진 그림을 보면서 의뢰인은 심미적 만족감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왜 그런 그림에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걸까. 금욕을 강조한 칼뱅파의 교리 때문이기도 하지만, 당시 유럽인들의 죽음관이 크게 변화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 죽음은 인간이 추해지는 것을 막아주는 구원이었다. 그러나 파괴적인 종교 전쟁을 겪은 17세기 바로크 시기의 사람들에게 죽음은 꽃과 아름다움으로 꾸며진 안락한 휴식처가 아니었다. 현실은 죽은 자의 해골이 나뒹굴고, 그것을 갉아먹는 벌레들이 공존하는 처참함 그 자체였다. 그래서 바로크 시기의 화가들은 살아 있는 현실에 죽음의 이미지를 투영하기 시작했다.


바로크 시기의 사람들은 삶이란 죽음의 연속이라 생각했다. "유년기가 죽으면 청년기가 오고, 청년기가 죽으면 노년기가 오고, 어제가 죽으면 오늘이 오고 오늘이 죽으면 내일이 온다."라는 미셸 몽테뉴의 말이 당시 유럽 사람들의 죽음관을 그대로 말해준다. 네덜란드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네덜란드 화가들은 바니타스 정물화를 통해 우리 삶에 자리 잡은 죽음을 인식하고 지금 주어진 짧은 생을 가치 있게 살라는 교훈을 이야기했다. 당시 사람들은 자신의 집에 걸린 정물화를 보면서, 한정적인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끊임없이 고민했을 것이다.


연극 바니타스는 '2호선 세입자' 연출을 맡았으며 극단 '도움닫기'의 대표인 양지모 연출과 국문과 출신의 신예 '최은' 작가가 함께 만든 창작극이다. .


요절한 화가의 자화상을 중심으로 그림이 복원되는 과정 속에서 과거와 현재를 오고 가며 극이 진개되고,. 미술품 복원가와 요절한 화가, 이렇게 두 사람이 그림을 복원하는 동안 서로의 비밀과 아픔을 나누며 관객들에게도 감동을 전한다.


미술품 복원가인 한예준은 27년 전 죽은 여류화가 팝아티스트 윤지호의 자화상 복원을 맡게 된다. 기록에도 찾을 수 없는 그림은 심하게 찢어져있고 의뢰인은 빨리 복원해달고 보채고 있다. 복원의 작업 방향을 정할 수 없었던 예준은정밀 분석을 위해 엑스레이 촬영을 실시한다. 그때 자화상의 주인공인 윤지호가 스튜디오에 나타나는데... 윤지호 화백 뿐 아니라 30년 전의 윤 화백과 가까웠던 남성 2인이 등장하면서 당시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과 윤화백의 심경이 노정되면서 갈등과 화합이 노출된다. 대단원에서 의뢰인이 등장해 복원된 작품을 보는 장면에서 극은 마무리가 된다.


무대는 미술품 복원실이다. 배경에 커다란 창이 있고 커튼으로 가려놓고 극의 진전에 따라 커튼을 열고 닫는다. 무대 좌우에 등퇴장로가 있고, 상수쪽은 내실, 하수 쪽은 출입문이다. 서랍장이 배치되고 그위에 지구본을 위시해 병과 장식품이 올려져 있다. 여기저기 캔버스를 뒤집어 올려놓고 이젤도 배치했다. 탁자와 안락의자가 있고, 물통과 잔, 쟁반 그리고 칼을 비롯한 소품을 사용한다등. 등불 빛의 변화와 예리한 효과음으로 분위기 창출을 한다.


요절한 화가이자 팝아트의 선구자 '윤지호' 역에는 윤진솔, 김도하, 최용준이 트리풀 캐스팅 되어 출연한다. 천재 미술복원가 '한예준' 역에는 구준모와 최하윤이 더블 캐스팅 되어 출연한다. 젊은 시절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던 국회의원 '이은수' 역은 고유나와 한동훈이 더블 캐스팅 되고, 지호의 서양화학과 선배이자 은수의 운동권 선배인 '임경석' 외 멀티 역은 김민수와 이승준이 더블 캐스팅 되어 출연한다. 멀티 역을 제외한 주요 배역은 성별을 정하지 않는 젠더 프리 캐스팅으로 정해져, 출연진의 호연과 열연은 물론 성격창출이나 상황변화에서의 감정표현도 수준급이라 관객을 몰입시키며 극을 이끌어 갈채를 받는다.


무대디자인 조경훈, 조명디자인 이현규, 음악 음향디자인 배미령, 소품디자인 김린아, 분장디자인 최진엽, 제작 지구엔터테인먼트, 제작투자 블룸즈버리 등 스텝진의 열정과 기량이 하나가 되어 지구엔터테인먼트의 최 은 작 양지모 연출의 바니타스(Vanitas)를 현대적 감각과 표현이 독특한 새로운 형식의 수준급 공연물로 탄생시켰다.


* 주요경력


황해도 금천생, 서울고 서울대미대, 서울대학교 총동문회 이사, 극작가/연출가/평론가, 한국희곡뮤지컬창작워크숍 대표, 한국문인협회 희곡분과 위원, 전 서초연극협회 회장, 본지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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