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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 광복을 꿈꾼 청년들 재조명...대구근대역사관 특별기획전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3-06-11 15:4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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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달 9일부터 11월 5일까지 2층 기획전시실

광복회 활동 당시 모습을 보여주는 대구 도심 지도(1918년)/대구문화예술진흥원 박물관운영본부 제공[이승준 기자] 대구근대역사관이 이달 9일부터 2층 기획전시실에서 '대구에서 만나자-1910년대 광복을 꿈꾼 청년들' 특별기획전을 연다.


이번 기획전은 1910년대 대구를 중심으로 무장투쟁을 전개했던 '광복회'를 재조명하기 위해 마련됐다.


1915년 8월 25일 국권 회복과 독립을 꿈꾸던 청년들은 대구 달성공원에서 광복회를 결성했다. 광복회(대한광복회로 불리기도 함)는 1910년대 독립운동을 대표하는 비밀결사조직으로, 대구를 중심으로 전국적인 조직망을 갖추고 가장 격렬히 행동했던 단체였다.


전시는 모두 4부로 구성됐다. 1부 '달성공원에서 광복회가 결성되다'에서는 광복회 결성과정과 조직 구성, 광복회 결성 당시 대구의 모습 등을 당시 사진과 문서, 지도를 통해 만날 수 있다. 2부는 '청년들, 광복을 꿈꾸다'라는 주제로, 광복을 위해 광복회가 어떤 활동을 했는지, 그리고 그 활동이 당시에 어떻게 비춰지고 있었는지 살펴본다.


3부 주제는 '청년들, 꿈을 이루지 못하다'로, 광복회가 와해되어가는 과정을 담았다. 1910년대 가장 많은 순국자가 나온, 매우 치열하게 활동한 독립운동단체였음을 재판 관련 신문기사, 판결문, 편지 등을 통해 알 수 있다.


광복회 총사령 박상진/대구문화예술진흥원 박물관운영본부 제공4부는 광복회의 치열했던 독립투쟁의 모습이 이후 계승, 발전되는 과정을 '청년들의 꿈은 이어지다'라는 주제로 풀어본다. 국권 회복과 독립을 꿈꾸던 청년들의 독립 투쟁은 1919년 3·1운동으로 결집하는 계기를 만들었고, 1920년대 이후 더 격렬해진 의열활동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1945년 '광복'을 맞게 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중요한 연락 거점이었던 대구경찰서 앞 '상덕태상회(尙德泰商會)'에 대한 신문 기사가 처음으로 공개되고, 대구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진 군자금 모집 활동인 '대구권총사건'(1916년 9월)도 상세하게 소개된다.


신형석 대구문화예술진흥원 박물관운영본부장은 "대구는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시작점이었는데, 1907년 나라 빚을 우리 손으로 갚아 국권을 회복하자는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났던 곳이며, 서로 다른 사상을 지닌 독립운동단체가 통합하여 활동한 곳도 대구였다"면서,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대구가 사람과 물산이 모이는 곳이자 육로와 수로로 어디든 갈 수 있는 곳, 즉 대구가 '열린 도시'였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열린 도시' 대구를 광복회를 통해 새롭게 주목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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