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서울시 문화재 329] 손기정의 청동 투구/그리스, 기원전 6세기, 1994년 손기정 기증
  • 박광준 기자
  • 등록 2024-05-16 22:06:28
  • 수정 2024-05-16 22:16:19

기사수정

손기정의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골인정면 [박광준 기자] 손기정 선생이 기증한 청동 투구는 기원전 6세기 무렵 그리스에서 만든 것이다. 눈과 입만을 드러낸 채 머리 전체를 감싸는 ‘코린토스 양식’ 투구로, 목으로 이어지는 아랫부분이 잘룩하게 들어가다가 나팔처럼 벌어져 있다. 이 투구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의 우승자에게 주는 부상이었다. 당시 우승자인 손기정 선수가 받아야 했으나, 전달되지 못한 채 베를린 샤를로텐부르크박물관에 50년 간 보관되어 있었다. 이를 안 손기정 선생은 이 투구를 돌려받기 위해 여러모로 노력했고, 그 결실로 1986년 베를린 올림픽 개최 50주년 기념행사에서 마침내 선생의 품으로 돌아왔다. 1987년 정부는 손기정 선생의 올림픽 우승을 표상하는 이 투구를 나라의 ‘보물’로 지정했다. 


# 최초의 우승, 함께한 우승


서윤복의 1947년 보스톤 마라톤 골인 장면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인 1936년 베를린에서 올림픽이 열렸다. 당시 사람들은 올림픽 종목 가운데 마라톤을 가장 주목했다. 8월 9일 열린 마라톤 경기에서 손기정 선수는 2시간 29분 19초 2라는 세계신기록으로 우승했다. 함께 참가했던 남승룡(1912-2001) 선수도 동메달을 따면서, 마라톤에서 금메달과 동메달을 동시에 따는 기록도 함께 세웠다. 


# 손기정이 기증한 그리스 투구 


청동 투구

손기정(孫基禎, 1912-2002) 선생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세계적인 마라톤 선수이다.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에게는 금메달과 함께 그리스 청동 투구를 부상으로주기로 했었다. 그러나 손기정 선수는 그 투구를 받지 못했다. 50년이 지난 1986년 투구를 돌려받은 손기정 선생은 이를 국가에 기증하기로 결심, 1994년 국립중앙박물관에 투구를 기증 했다. 


1994년 국립중앙박물관 기증식 

선생은 투구가 지난 역사적 의미와 공공의 가치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선생이 기증한 그리스의 고대 청동 투구를 통해 우리는 선생을 기억한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선수로 참가할 수 밖에 없었지만, 당당하게 내달려 올림픽 마라톤을 제패한 한국 청년을 떠올린다. 이처럼 문화유산 속에는 사람이 들어 있다. 선생이 기증한 투구는 과거를 돌아보게 하고 새로운 미래를 다짐하는 표상으로 우리에게 남아 있다.   


1986년 주한서독대사관저에서 열린 투구 전달식기증관을 찾는 많은 관람객들이 손기정 선생이 기증한 투구를 바라보며 선생을 기억한다. 선생이 망국의 설움을 딛고 힘차게 내달려 이룩한 올림픽 마라톤 우승의 손간을 떠올린다. 당시 부상으로 받지 못한 투구는 50년 만에 선생의 품으로 돌아왔고, 다시 선생의 뜻에 따라 국민의 품에 안겼다. 이 모든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선생이 기증한 투구에 들어 있다. 투구와 관련된 기억은 개인의 차원을 넘어 많은 사람이 공유하는 새로운 기억이 되었다.


2005년 국립중앙박물관이 용산으로 이전하면서 투구를 기증 문화재실에 전시했다. 투구는 2009년 한국박물관 개관 100주년 기념전과 2011년 대구 세계 육상 성수권 대회 기념전에 출품되기도 했다. 2022년에는 기증관을 새롭게 단장하면서 독립적인 전시공간에 놓았다. 


투구 전달식에서 환하게 웃는 손기정 선생# 새로운 기억, 새로운 이야기 


손기정 선생이 투구를 되돌려받는 과정에서 마음속에 깊이 품고 있던 생각은 보다 많은 국민이 투구를 볼 수 있도록 국가에 기증하는 일이었다. ‘이 투구는 나 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것’이라는 생각을 한 순간도 놓지 않았던 손기정 선생은 1987년 투구를 독립기념관에 위탁했다가 1994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투구는 이곳 박물관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투구 안쪽에 새겨진 글귀 손기정 선생은 우영히 투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으나 그 보관처를 알 수 없었다. 그러던 중 1976년 재독 교포인 노수웅 씨의 노력으로 투구의 소재를 알게 된 손기정 선생은 투구를  되찾고자 했다. 그러한 노력의 결실로 1986년 베를 린 올림픽 개최 50주년 기념 행사에서 손기정 선생에게 투구가 헌정되었다. 다음 해 정부는 50년 만에 돌아온 투구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하여 ‘보물’로 지정했다. 


월계관을 쓴 시상대 위의 손기정 투구는 마라톤 경기의 우승자였던 손기정 선생에게 전닭되지 못했다. 당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 ‘아마추어 선수에게 메달 이외에 어떠한 선물이나기념품도 동식적으로 줄 수 엇다’는 규정을 내세웠기 때문이었다. 손기정 선생도 투구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결국 투구는 독일 국가올림픽위원회(NOC)의 관리 하에 베를린에 남았고, 제2차세계대전 뒤에는 베를 린에 있는샤를로텐부르크박물관에 전시되었다. 


시상대 위에서 고개를 숙인 손기정과 남승룡# 투구의 여정


1936년 7월 27일 그리스의 ‘이 브라디니(Vradyni)’ 신문사는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이 우승자에게 그리스 청동 투구를 주겠다는 기사를 냈다. 이 투구는 1875년 독일 고고학자 에른 스트 쿠르티우스(1814-1896)가 이끄는 조사단이 그리스의 올림피아에서 발굴한 것으로 이후 브라디니 신문사가 투구를 갖게 되었다. 투구 안쪽에는 “1936년 제11회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의 우승자에게”라는 글귀를 새겨 놓아 마라톤 경기의 우승자가 곧 투구의 주인임을 밝혔다. 


'동아일보'에 실린 손기정 일장기 말소 사건올림픽 마라톤 우승과 3위라는 쾌거를 국민들에게 선물한 두 사람은 광복 후인 1947년 보스톤 마라톤대회에도 참가했다. 손기정 선수는 감독으로, 남승룡 선수는 코치이자 선수로 활약해 서윤복(1923-2017) 선수가 우승하도록 이끌었다. 이는 대한민국 국적으로 국제 마라톤대회에서 당당히 이룩한 첫 우승이었다.   


시상대 위의 손기정과 남승룡

손기정 선수의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을 더욱 잊을 수 없게 만든 사건은 국내 신문에서 우승 소식을 전하며 사진 속 선수복의 일장기를 지워버린 일이었다. 먼저 ‘조선중앙일보’가 1936년 8월 13일 자 기사에서 일장기를 지우고 보도했다. 며칠 뒤 ‘동아일보’는 8월 25일 자에는 손기정 선수의 가슴에 있던 일장기를 완전히 지운 사진을 실었다. 이 기사 때문에 두 신문은 강제로 폐간되거나 휴간되었다. 이 일은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불리며 1930년대 항일 운동의 상징이 되었다./사진-박광준 기자(국립중앙박물관 손기정 기증관 영상 캡처)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한국의 전통사찰더보기
 박정기의 공연산책더보기
 조선왕릉 이어보기더보기
 한국의 서원더보기
 전시더보기
 한국의 향교더보기
 궁궐이야기더보기
 문화재단소식더보기
리스트페이지_004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