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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금의 여행이야기 ]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 윤여금 기자
  • 등록 2023-06-09 01:52:57
  • 수정 2024-02-12 20:4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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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금 기자] 충남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국보)은 가야산 계곡을 따라 가면 층암절벽에 여래입상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보살입상, 왼쪽에 반가사유상이 조각돼 있다. 이곳은 중국과 교통하던 길이었고, 산세가 유수하고 경승지여서 600년 당시 중국 불교 문화의 자극을 받아 찬란한 불교 문화를 꽃피웠다.


     ▲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瑞山 龍賢里 磨崖如來三尊像)(국보 제84호)백제시대 후기


      ▲ 용현계곡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국보)은 운산면 가야산 계곡을 따라 들어가면 층암절벽에 여래입상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보살입상, 왼쪽에는 반가사유상이 조각돼 있다. ‘백제의 미소’로 알려진 이 마애불은 암벽을 파고 들어가 불상을 조각하여 형성됐다. 태안반도를 거처 부여로 가는 이 지름길은 예로부터 중국과 교통하던 길이었다. 이곳은 산세가 유수하고 천하의 경승지여서 600년 당시 중국 문화의 자극을 받아 찬란한 불교문화를 꽃피웠던 것이다. 



      ▲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오후1시)


      ▲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오후4시)


      ▲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오후4시)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은 1962년 국보로 지정됐고, 높이 2.8m로 연꽃잎을 새긴 대좌(臺座) 위에 서 있는 여래입상은 묵중하고 중후한 체구의 머리에는 보주형(寶珠形) 두광(頭光)은 머리 바로 위에 연화문을 두었고, 그 바깥에 원권문을 돌리고, 가장 바깥에 화염문을 장식했고, 화불 3구를 새겼다. 


소발(素髮)의 머리에 육계(肉髻)를 갖추었으며, 백호 구멍이 있다. 직사각형에 가까운 살이 많이 오른 얼굴에 눈썹은 초생달 모양, 눈은 행인형(杏仁形)으로 뜨고 있어 은행씨 모양의 눈, 얕고 넓은 코, 미소를 띤 입 등을 표현했다. 목에는 삼도(三道)가 없고, 전체 얼굴 윤곽이 둥글고 풍만하여 백제 불상 특유의 자비로운 인상을 보여준다. 


수인(手印)은 시무외(施無畏)·여원인(與願印)으로 왼손의 끝 두 손가락을 꼬부리고 있다. 법의는 통견(양쪽 어깨를 보두 덥음)이고, 두꺼워 몸의 윤곽이 드러나지 않으며, 가슴에 옷의 매듭이있고, 옷주름은 앞면에 U자형으로 좌우대칭을 이루며 무릎아래까지 드리웠다. 발가락이 정면으로 드러나있고, 발밑에는 큼직한 복련연화좌(覆蓮蓮華座)가 조각돼 있다.





오른쪽의 보살입상은 머리에 관(冠)을 쓰고 있고, 머리 뒤에는 보주형 광배가 있는데, 중심에 연꽃이 있을 뿐 화염문은 없다. 얼굴에 본존과 같이 살이 올라 있다. 눈과 입에 미소를 띠고 있고, 두 손은 가슴 앞에서 보주(寶珠, 불가에서 보배로 여기는 둥근 모양의 구슬)를 잡고 있다. 천의를 걸치지 않은 상체는 목걸이만 장식하고 있고, 천의는 두 팔을 거쳐 앞에서 U자형으로 늘어져 발등까지 길게 늘어져 있다. 발밑에는 복련연화좌가 있다. 





왼쪽의 미륵반가사유상은 통식(通式)에서 벗어나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을 배치했다. 머리 뒤에는 큰 보주형 광배가 있는데, 그 형식은 우협시보살의 광배 형식과 같다. 미소를 띤 둥글고 살찐 얼굴이고, 두 팔은 크게 손상을 입었으나, 전체의 형태는 충분히 볼 수 있다. 목에는 짧은 목걸이를 걸쳤다. 허리 밑으로 내려온 옷자락에는 고식의 옷주름이 나 있다. 왼쪽 다리 위에 오른쪽 다리를 올리고, 왼손으로 발목을 잡고 있는 모습이고, 오른쪽 손가락으로 턱을 받치고 있는 모습에서 세련된 조각 솜씨를 볼 수 있다. 발밑에는 큰 꽃잎으로 나타낸 복련대좌(覆蓮臺座)가 있다.  


미륵반가사유상이 조각된 이례적인 이 삼존상은 『법화경』에 나오는 석가불과 미륵보살, 제화갈라보살을 나타낸 것이다. 『법화경』 사상이 백제 사회에 유행한 사실을 입증해 주는 중요한 사료이다. 고로 이 불상은 백제 불교사, 사상사 연구에 중요한 가치를 지니며, 조선시대 사찰에 건립된 응진전(應眞殿) 수기삼존불의 원조로서의 의의가 있다. 본존불의 묵직하면서 당당한 체구와 둥근 맛이 감도는 윤곽선, 보살상의 세련된 조형 감각, 그리고 공통적으로 나타나 있는 쾌활한 인상 등에서 6세기 말이나 7세기 초에 만든 것으로 보인다.


서산 마애여래삼존상이 자리한 운산면은 백제 때 중국으로 통하는 교통로의 중심지인 태안반도에서 백제의 수도인 부여로 가는 길목에 해당하므로, 이 마애여래삼존상은 당시의 활발했던 중국과의 문화교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 용현리 마애불삼존상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은 미학적 우수함과 해뜨는 방향인 동동남 30도로 서있어 햇볕을 풍부하게 받아들이고, 마애불을 새긴 돌이 80도로 기울어져 있어 비바람이 정면으로 들이치지 않는 과학적 의미를 갖추고 있다.


서산마애여래삼존상의 미소는 자연 빛의 방향과 각도에 따라 보는 사람에게 표정이 다른 미소로 감동을 준다. 아침 햇살을 받은 오전 10시경의 표정이 가장 아름답다고 전한다.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발견


그윽한 미소가 돋보이는 마애여래삼존상은 1959년 4월 당시 부여박물관 홍사준 관장이 보원사지에 유물조사를 나왔다가 이 고장의 주민의 얘기를 듣고 찾아서 발견했다. 그후 국보고적보존위원회에 보고한 후 국보로 지정됐다. 마애여래삼존불은 주변의 자연경관과 어울리면서 인공과 자연의 조화를 이루고, 반듯하지 않은 바위 면에 불상을 새기면서 올려다보는 시선까지 고려하여 얼굴은 높게 부각하고 아래로 내려오면서 차츰 낮은 각도로 조각됐다. 서산 마애여래삼존상은 가장 어려운 조건에서 제작했으나 가장 편안한 인상으로 완성됐다.


용현리 마애불삼존상의 발견으로 금동미륵반가상이나 일본 고류지의 목조반가사유상, 호류지의 백제관음 등은 백제계 불상이라는 추정을 해왔으나, 그 관련성이 드러났다.


이곳 마애여래삼존불은 보주(寶珠)를 들고 있는 입상보살과 반가사유보살이 함께 새겨진 것은 중국, 일본, 고구려, 신라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형식으로 ‘백제의 미소’라 불리고, 단정하고 유연하게 조각된 솜씨는 중용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백제의 불상은 균형미가 뛰어나고 단아한 느낌이 드는 귀족 성향의 불상과 온화하면서도 위엄을 잃지 않는 서민적인 불상으로 나눌 수 있는데, 서민적인 대표적인 불상이 서산 마애여래삼존상이라고 한다./사진/윤여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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