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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통사찰 91] 예산 덕숭산 수덕사(3) 만공, 선맥(禪脈)을 이어 고승석덕(高僧碩德)을 배출
  • 윤여금 기자
  • 등록 2023-02-21 03:24:59
  • 수정 2024-04-02 04: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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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금 기자] 수덕사 정혜사는 덕숭산에 불조(佛租)의 선맥(禪脈)을 이어 고승석덕(高僧碩德)을 배출한 선지종찰(禪之宗刹)로서 만공 스님이 40여년 머물면서 선불교를 중흥시켜 현대 불교계에 큰 법맥을 형성했다. 이곳에는  능인선원, 관음전, 산시각, 남매탑, 금선대 등이 있으며 숭덕산 곳곳에  관음보살입상, 만공탑, 향운각, 소림초당 , 전월사 등이 자리하고 있다.




    ▲소림초당


소림초당은 스님의 수도처이므로 일반인은 출입금지구역이다.




     ▲관세음보살상입상. 예산 덕산면 산천리 20번지 소재.


행운각의 관세음보살상는 1924년 만공 스님이 조성 봉안했다고 전한다. 관세음보살의 위덕으로 모든 중생의 8가지 고통 즉 살아있는 고통(생고), 늙는 괴로움(노고), 병드는 고통(병고), 죽는괴로움(사고), 아무리구해도 얻어지지않는 고통(구부득고), 사랑하는 사람은 헤어지는 고통(애별리고), 원수는 만나는 고통(원중회고), 오음(색 수 상 행 식)이 치성하는 괴로음 을 덜어주는 감로수 병을 손에 들고 머리에는 어머님의 상호를 모시고 있다. 


     ▲약수


    ▲향운각


일반인은 출입금지구역이다.                                                                                                                      



     ▲ 수덕사 만공탑. 문화재 제473호 2011. 8. 24. 지정.예산군 덕산면 사천리 산1-1. 소재


수덕사 만공탑은 만공(滿空1871~1946)의 스님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47년에 세운 석탑으로 근대적 기념탑이다. 육각의 지대석 위에 둥근 괴임돌을 놓고 , 그 위에 세 개의 기둥을 평면 Y자 형태로 세운 후, 그 위에 둥근 돌을 올려놓았다. 기둥의 삼면은 오석(烏石)으로 면석을 만든 후, 앞면은 ‘만공탑’, 좌우옆면은 ‘세계일화(世界一花)’ 백초시불모(百艸是佛母) 등 만공 스님의 친필과 행장(行狀), 법훈(法訓) 등을 새겼다. 탑 주위에 두른 육각의 돌난간은 후대에 만공탑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한 것이다. 만공탑은 한국불교의 자주성과 전통성을 지키기 위한 만공 스님의 사상과 불교 교리를 상징적으로 잘 나타내고 각 구조물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조화와 균형을 이뤄 근대 사찰 조형물로 가치가 높다. 

 

만공(滿空1871~1946)은 조선과 일제강점기의 승려이자 독립운동가이다. 한국 현대 불교의 대선사로 석가모니 이래 제76대 조사이다. 경허(75대)- 만공(76대)- 혜암(77대)- 묘봉(78)으로 법맥이 이어졌다.

 

만공 스님은 조선불교를 지키려 했고, 또한 선불교를 중흥시켜 현대 불교계에 큰 법맥을 형성했다. 법명은 월면(月面)이며 만공(滿空)은 법호다. 

 

그는 이론과 사변을 배제하고 무심의 태도로 화두를 스스로 참구하는 간화선법(看話禪法)을 채택해 제자들에게는 항상 조주의 무자 화두를 할 것을 강조했다. 그는 참선을 위해서는 보조적 요건도 필수적인 요건도 구비되어야 하고, 또한 환경과 배경이 사람을 만든다는 견해도 설파했다. 참선의 보조 여건은 선지식과 적절한 도량, 함께 수도하는 좋은 도반의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보았고, 좋은 스승을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봤다.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그에 맞는 배경과 환경적 요인도 사람을 만든다고 전했다.

 

만공의 수도승에 대한 지도방법은 침묵 또는 방망이질, 할, 격외의 대화와 동그라미등 여러 가지로 사용했다. 

 

만공 스님의 문하는 부월 전강 용음 고봉 금봉 계암 춘성 금오 벽초 금봉 춘성 서경 혜암 원담 등이 있고, 비구니로는 법희 만성 일엽등 제자가 배출됐다. 

 

만공 스님은 덕숭산에 머무르며 30세 되던해 이 곳 정혜사 선원장이 돼 많은 납자들을 배출했고, 수도생활중 40 여년간을 이곳 정혜사(능인선원)에서 보내고 8.15해방 이듬 해 세수 75세, 법랍 62년 만월사에서 입적했다. 

 

     ▲ 정혜사 


     ▲능인선원


수덕사 금선대/자료사진

(좌) 경허선사/ (우) 만공스님/자료사진

정혜사(定慧寺)(능인선원)는 841년(신라 문성왕 3)에 세워진 사찰이다. 정혜사는 소선시대에 송월선사가 다시 세운 이래 수차례 고쳐 지었고, 1907년 (순종 원년)에 큰불이 나서 전소돼 그 이듬해 월파스님이 다시 지었다. 독립운동가 최고의 명필가 오세창이 전서로 쓴 ‘능인선원’ 이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  남매탑

 



     ▲관음전



     ▲산신각

 

    ▲향적당(香積堂) 송원 스님 글씨


     ▲ 나가대정과 만공대 각자

 

‘나가’는 nagar에서 온 산스크리트어로 ‘용’, ‘큰 뱀’이란 의미의 말로 나가대정은 무궁무진한 조화력을 가진 부처님의 정력을 말하며, 용은 항상 고요한 가운데 사심과 잡념없애기를 계속해 큰 신통 변화를 나타내므로 부처님의 큰 정력에 비유하게 됐다고 한다. 

 

 나가대정의 앞의 바위는 만공 스님이 좌선 수도했다고 전한다. 

 




이곳은 수님들의 수행공간이므로 일반인은 출입금지지역이다.



이곳은 수님들의 수행공간이므로 외부인은 출입금지지역이다.



     ▲석문


석문은 정혜사 아래쪽에 위치해 있다.

 


   ▲전월사


만공 스님은 1946년 (세수75세, 법랍 62년) 전월사 이곳에서 입적했다. 숭덕산의 정혜사는 만공 스님이 주석하던 곳이므로 처처에 만공의 흔적이 남아있다./사진-윤여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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