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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서원 154] 하항을 모신 서원 진주 '대각서원'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2-12-17 00:06:47
  • 수정 2022-12-17 06: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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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준 기자] 대각서원은 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 사곡리에 있는 서원으로, 1610년(광해군 2)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제자인 하항(河沆)을 모시기 위해 대각사를 세웠다. 이후 손천우, 하응도, 김대명, 이정, 유종지, 하수일 등 일곱 명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키 위해 위패를 모시고 매년 음력 3월, 9월 중정일에 향사하고 있다. 1869년(고종 6)에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됐다가 1918년 복원해 오늘에 이른다.



하항의 본관은 진주. 자는 호원(浩源), 호는 각재(覺齋). 1538년(중종 33)에 태어나 남명 조식(曺植)의 문하에서 공부했다. 1567년(명종 22) 사마시에 합격한 후 참봉에 임명됐으나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평소 효심이 지극해 매일 새벽에 일어나 세수하고 머리를 깨끗이 빗질한 후 어머니 침실로 찾아들어 문안을 드리니, 여러 문인들이 말하기를, '소학'의 가르침을 실제로 보여준다고 칭송했다. 말년에 진주 수곡면 대각촌(大覺村)에 은거하면서 세속에 물들지 않고 살다가 1590년(선조 23) 별세했다.



조식의 문하에서 최영경(崔永慶)과 동문수학하면서 서로 깊이 사귀었다. 특히 '소학'에 전념했다. 그의 문장은 고답적이어서 사우들이 ‘설중매(雪中梅)’라 일컬었고, 시문도 소박하고 박진력이 있었다.



건물의 배치는 대문채와 서원을 직선 배치하고 그 사이에 동재, 서재를 둬 전체적으로 口자형의 구성을 보인다. 서원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규모로 전.후 툇집 형식이며 정면의 기둥은 배흘림을 둔 두리기둥이다. 가구는 5량 구조로 장식이 돼 있고, 양 툇간에는 퇴보를 걸었고 홑처마에 팔작지붕 형식이다.


동재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규모는 작지만, 평면 및 입면 각 부의 비례가 잘 이뤄진 아름다운 건축물이로, 서원과 동일한 부재를 사용했고 5량 가구에 팔작지붕 형식이다. 서재는 동재에 비해 격이 떨어진다. 동재와 규모나 실의 구성은 같으나 마루를 꾸민 형식에서 차이를 보이는데, 그것은 부엌을 둔 구성이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5량 가구에 우진각 지붕형식이다. 대문채는 정면 5칸, 측면 1칸으로 홑처마에 우진각 지붕형식이다. 담장의 아랫부분은 돌각담의 형태로 위에 토담형식을 가미했다.



진주 대각서원은 전체적인 건물 배치가 무난하고 부재의 사용과 비례의 적용 등 조선 후기 건축의 여러 기법들을 잘 볼 수 있어 학술적 가치가 크다. 2004년 3월 18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44호로 지정됐고, 지난해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됐다./사진-윤정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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