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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서원 138] 정신보 등 9명의 위패를 모신 '송곡서원(松谷書院)'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2-11-15 20: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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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준 기자] 송곡서원은 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애정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서원으로,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됐다.


서원은 조선시대 중기 이후에 학문 연구와 명현(明賢)들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사림(士林)에 의해 설립된 사설 교육기관으로, 1694년(숙종 20)에 세워졌고 정신보(鄭臣保).정인경(鄭仁卿).유방택(柳方澤).윤황(尹璜).유백유(柳伯濡).유박순(柳泊淳).유윤(柳潤).김적(金積).김위재(金偉材) 등 9명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1871년(고종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폐됐다가 1910년에 다시 세웠다.




정신보는 송나라가 망한 후 고려에 망명해 서산에 살았던 중국인으로, 서산 정씨의 시조이다. 부인은 고창군부인 오씨로, 고창[현 덕산]의 세력가였던 오세재(吳世才)의 손녀딸이다. 아들은 정인경(鄭仁卿).정준경(鄭俊卿)이다. 아들 대에 서산을 본관으로 하사받아 서산 정씨의 시조가 됐다.


정신보(鄭臣保)는 송나라에서 상서형부원외랑(尙書刑部員外郞)을 지냈고, 몽골의 침략으로 송나라가 멸망하자 1237년(고종 24) 고려로 망명했다. 서산 간월도에 정착해 살면서 고창군부인 오씨와 혼인했다. 아들이 태어난 후인 1251년 서산 대사동[현 서산여자고등학교 자리]으로 이사해 망운대를 짓고 자주 그곳에 올라 고국을 그리워했다. 1269년(원종 10) 인주태수[지금의 의주]를 지냈다. 이때 아들 정인경이 임연(林衍)이 반란을 일으킨 사실을 알려 와 원나라에서 귀국하던 세자를 돌려보내 위기를 넘겼다. 정신보는 고려에 망명해 송나라의 성리학을 전하는 공을 세웠다.



묘소는 서산시 성연면 오사리 95번지에 있다. 조선 후기에 후손인 정인홍(鄭仁弘)이 인조반정 후 참형되고 일가가 큰 화를 입어 묘역이 수백 년 동안 방치돼 있었다. 1920년대에 후손들이 되찾아 새로 단장했다.



송나라의 앞선 문물을 전수한 공으로 1292년(충렬왕 18)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에 추증됐다. 망운대에 올라 고국을 그리워했던 정신보의 충의가 알려져 조정에서 충신문을 세워 주었는데 병란으로 훼손됐다고 전한다. 조선조에 후손들에 의해 서산시 인지면 애정리 495번지 송곡서원(松谷書院)에 배향됐다.


건물로는 사우(祠宇), 내삼문(內三門), 동재(東齋), 서재(西齋) 등이 있다. 위패는 사우에 모셔져 있고 매년 음력 2월과 8월말 정일(丁日)에 제사를 지낸다. 사우는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내부에 우물마루(짧은 널을 가로로 하고 긴 널을 세로로 놓아 짠 마루)를 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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