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한국의 서원 104] 김해김씨 문중서원 창원 '도남 서원'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2-10-03 08:13:10
  • 수정 2022-10-03 08:19:57

기사수정


[이승준 기자] 도남서원은 현대에 세워진 문중 서원으로서, 향사나 강학보다 후손의 돈목을 더 큰 목적으로 삼으면서 그 구심점을 선조에게서 찾았다. 김귀는 단종 때에 문과에 급제해 관직에 있었으나, 당시 세력가인 이극돈의 무고에 의해 어려움을 당하다가 창원으로 낙향한 인물이다. 제사는 후손들에 의해 받들어지면서, 향사일은 3월 7일이다.


창원에서 북쪽 지방도를 따라 동읍사무소와 주남저수지 입구를 지나가면, 화양리에서 산기슭으로 들어간 곡목마을에 있다.



강당과 사우가 1976년에 함께 건립됐다. 문중의 주장에 의하면 사우의 창건 시기는 확실하지 않지만 오래전에 창건됐다가 1868년(고종 5)에 훼철됐고, 이것을 강당 건립 때 복원했다고 한다.


서원은 정문인 불사문(不舍門)과 강당으로 이뤄졌고, 정문은 일반 가옥의 대문과 같고, 강당은 정면 4칸에 유리문을 덧댄 현대식 건물이다. 사당의 정문인 유정문(由正門) 역시 일반 가옥 출입문과 유사하고, 구봉사(九峰祠)는 정면 3칸으로 이뤄졌다.



도남서원은 현대에 지은 건물로서, 사우와 강당이 30여m 떨어진 별개의 구역에 각각 담을 둘러 완전히 분리돼 있다. 두 건물은 같은 시기에 건립된 것으로, 서원의 강학 기능이 중단된 시대에 건립됐기 때문에 전통적 건물 배치와 구조를 따르지 않았다.


서원의 강학 기능이 중단된 현대에 건립된 문중 서원으로서, 예전에는 많은 자료를 소장했으나 분실했다고 한다. 동족마을에 재실.서원.사우가 분리돼 있어서, 실제로 재실이 강학과 친목의 중심 역할을 하고 서원은 서고와 독서당 기능을 한다.


김귀의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영인(靈人).희우(希禹), 호는 금산(琴山). 아버지는 별시위(別侍衛)를 지낸 김이형(金利亨)이고, 어머니는 밀양손씨(密陽孫氏)이다.



김귀는 1453년(단종 1) 사마시에 급제하고 1466년 문과에 급제해 장악원 장악(掌樂院掌樂)으로 있었다. 1469년(예종 1) 사헌부 지평에 이어 군기시 판관이 됐다. 이어 평안도 도사가 됐다가 1471년(성종 2) 강원도 도사가 됐고, 그 뒤 평시서령, 충청도 도사, 공조정랑을 거쳐 초계군수, 종부시 첨정이 됐다. 1485년 헌능(獻陵) 전사관(典祀官)으로 있다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김귀는 '주역(周易)'에 능통했고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과 교유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김귀는 김해로 귀양와서 현재의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화양리 화목마을에 정착했다고 한다.


묘소는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금산리 소재 흑산(黑山), 곧 금산(琴山)에 있다./사진-윤정숙 기자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한국의 전통사찰더보기
 박정기의 공연산책더보기
 조선왕릉 이어보기더보기
 한국의 서원더보기
 전시더보기
 한국의 향교더보기
 궁궐이야기더보기
 문화재단소식더보기
리스트페이지_004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