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조선 왕릉 이어보기 9] 8대 예종과 두 번째 왕비 안순왕후 한씨의 ‘창릉’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2-07-12 14:28:32

기사수정


[이승준 기자] 창릉은 조선 8대 예종과 두 번째 왕비 안순왕후 한씨의 능이다. 창릉은 서오릉에서 왕릉으로 조성된 최초의 능으로, 같은 능역에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서로 다른 언덕에 능침을 조성한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의 형태이다. 정자각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 언덕(서쪽)이 예종, 오른쪽 언덕(동쪽)이 안순왕후의 능이다.(경기 고양시 덕양구 서오릉로 334-32)



진입 및 제향공간에는 홍살문, 판위, 향로와 어로, 정자각, 수복방, 수라간, 비각이 배치괘 있다. 창릉의 두 능침은 병풍석을 생략하고 난간석만 둘렀고, 석물의 상설은 왕과 왕비가 비슷하다. 예종의 능침의 장명등은 지붕돌이 없어진 상태이고, 혼유석을 받치는 고석의 무늬가 도깨비가 아닌 북고리로 조각돼 있는 것이 유일하다.



1469년(예종 1)에 예종이 세상을 떠나자 다음 해인 1470년(성종 1)에 의경세자의 의묘(懿墓, 경릉) 북쪽에 능을 조성했다. 그 후 1498년(연산군 4)에 안순왕후 한씨가 세상을 떠나자 이듬해인 1499년(연산군 5)에 창릉 동쪽 언덕에 능을 조성했다.



예종(재세 : 1450년 음력 1월 1일 ~ 1469년 음력 11월 28일, 재위 : 1468년 음력 9월 7일 ~ 1469년 음력 11월 28일)은 세조와 정희왕후 윤씨의 둘째 아들로 1450년(세종 32)에 수양대군 사저에서 태어났다. 



세조가 왕위에 오른 후 해양대군(海陽大君)에 봉해졌고, 형인 의경세자(추존 덕종)가 20세의 나이로 일찍 세상을 떠나자 1457년(세조 3)에 왕세자로 책봉됐다. 1468년(세조 14)에 세조의 선위를 받아 왕위에 올랐다. 즉위 초에 남이의 옥사를 진압했고, 1469년(예종 1)에는 세종의 영릉(英陵)을 여주로 천장했으나, 재위 1년 2개월 만에 경복궁 자미당에서 20세로 세상을 떠났다.



예종은 효성이 지극했던 아들이었다. 조선 후기의 학자 이긍익이 지은 야사모음집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는 예종이 부왕 세조가 세상을 떠난 것에 충격을 받아 건강을 해쳤다며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예종이 세자일 때 세조가 병환이 생기니 수라상을 보살피고 약을 먼저 맛보며 밤낮으로 곁을 지키며 한잠도 못 잔 지가 여러 달이 됐다. 세조가 돌아가매 슬픔이 지나쳐 한 모금의 물도 마시지 않았으므로 마침내 건강을 해치게 돼 같은 해 겨울에 세상을 떠났다. 



예종의 두 번째 왕비 안순왕후 한씨(재세 : ?년 음력 3월 12일 ~ 1498년 음력 12월 23일)는 본관이 청주인 청천부원군 한백륜과 서하부부인 임씨의 딸로 태어났다. 1463년(세조 9)에 왕세자의 후궁인 소훈(昭訓, 내명부 세자궁 종5품)에 간택됐고, 예종이 즉위하자 왕비로 책봉됐다. 



예종이 세상을 떠난 후 원자인 제안대군이 왕위를 이어받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의경세자의 둘째 아들인 자산군(성종)이 예종의 양자로 입적돼 왕위에 올랐다. 성종이 즉위한 후 인혜왕대비가 됐고, 연산군 즉위 후 대왕대비가 됐다. 그 후 1498년(연산군 4)에 창경궁에서 세상을 떠났다.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한국의 전통사찰더보기
 박정기의 공연산책더보기
 조선왕릉 이어보기더보기
 한국의 서원더보기
 전시더보기
 한국의 향교더보기
 궁궐이야기더보기
 문화재단소식더보기
리스트페이지_004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