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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릉 이어보기 4] 4대 세종(世宗)과 비 소헌왕후의 합장릉 '영릉'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2-07-08 15: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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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릉(英陵) 

영릉(英陵)/세종대왕과 소헌왕후의 합장릉 [이승준 기자] 영릉은 조선 제4대 임금 세종과 비 소헌왕후의 합장릉으로, 조선왕릉 중 최초로 한 봉우리에 다른 방을 갖춘 합장릉이다.


무덤배치는 국조오례의에 따라 만든 것으로 조선 전기 왕릉 배치의 기본이 됐다. 1469년(예종1) 여주로 천장하면서 세조의 유명(遺命)에 따라 병풍석을 두르지 않고 난간석만 설치했고, 봉분 안에는 석실이 아니라 회격(灰隔:관을 구덩이 속에 내려놓고, 그 사이를 석회로 메워서 다짐)하고, 혼유석 2좌를 마련해 합장릉임을 표시했다. 


영릉(英陵) 정자각 원경 

영릉(寧陵) 수복방 정면 또한 기존의 왕릉에는 난간석에 십이지신상을 조각해 방위를 표시했는데, 영릉은 이를 간소화해 십이지를 문자로 표현했다. 입지는 풍수사상에 따라 주산을 뒤로 하고 산의 중허리에 봉분을 조영했고, 좌우측에는 청룡, 백호를 이루고 남쪽으로는 멀리 안산인 북성산을 바라보고 있다.


영릉(寧陵) 수라간 정면

영릉(寧陵) 정자각 1446년(세종 28)에 세종의 비 소헌왕후가 승하하자 당시 광주(廣州, 현재의 서울시 서초구 내곡동) 헌릉의 서쪽에 쌍실의 능을 조영했다. 이 때 오른쪽 석실은 세종을 위해 미리 만들어 놓았다가 세종이 승하하자 합장했다. 


세조대에 영릉의 자리가 불길하다는 이유로 능을 옮기자는 주장이 있었으나 실현되지 못하다가 1469년(예종 1)에 이곳 여주로 옮겨 왔다. 여주로 천장하면서 원래의 영릉 터에 있었던 상석, 망주석, 장명등, 문석인, 무석인, 석수, 신도비 등은 그 자리에 묻혔다.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 영릉로 269-50


영릉(寧陵) 재실 

영릉(英陵) 비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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