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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릉 이어보기 2] 2대 정종과 정안왕후 김씨의 능 '厚陵'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2-07-06 05:51:35
  • 수정 2022-12-23 00: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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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준 기자] 후릉은 조선 2대 정종과 정안왕후 김씨의 능으로, 북한에 소재하고, 쌍릉이다. 쌍릉의 형식으로 능침 앞쪽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서쪽)이 정종, 오른쪽(동쪽)이 정안왕후의 능이다. 


능침은 병풍석과 난간석을 둘렀고, 왕과 왕비의 능 앞에 각각 혼유석 1좌씩 배치돼 있다. 문무석인은 각 2쌍씩, 석마, 석양, 석호는 각각 4쌍씩 배치됐다. 이는 태종의 헌릉과 같은 형식으로, 고려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현.정릉의 제도를 계승한 것이다. 진입 및 제향공간의 정자각은 터만 남아 있고, 표석은 비각 없이 세워져 있다. 그 밖에 홍살문, 수복방 등은 소실됐다.


1412년(태종 12)에 정종의 왕비 정안왕후 김씨가 왕대비의 신분으로 세상을 떠나자, 해풍군 백마산 동쪽언덕에 능을 조성했다. 이후 1419년(세종 1)에 정종이 노상왕의 신분으로 세상을 떠나자 이듬해인 1420년(세종 2)에 정안왕후의 능 옆에 능을 조성했다.


정종(재세 : 1357년 음력 7월 1일 ~ 1419년 음력 9월 26일, 재위 : 1398년 음력 9월 5일 ~ 1400년 음력 11월 13일)은 태조와 신의고황후 한씨의 둘째 아들로 1357년(고려 공민왕 6년)에 함흥 귀주동 사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태조를 도와 왜구를 정벌한 공으로 군부판서, 상호군 등을 역임했다. 1392년에 조선이 건국되자 왕의 아들로 영안군(永安君)에 책봉됐고 의흥친군위 절제사에 임명됐다. 1398년에 제1차 왕자의 난(무인정사)로 왕세자로 책봉된 후 태조의 양위를 받아 왕위에 올랐다.


왕위에 오른 후 수도를 개성으로 다시 천도했고, 왕족, 권신 등이 기르던 사병을 폐지해 삼군부에 편입시켰다. 또 집현전을 설치하고, 한양의 5부에 각각 학당을 설립했다. 이후 1400년에 제2차 왕자의 난(박포의 난)으로 동생 정안군(태종)을 왕세자로 책봉시킨 후 바로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이 됐다. 상왕이 된 후 인덕궁에서 생활했고, 1418년에 세종이 왕위에 오르자 노상왕이 됐다. 


그 후 1421년(세종 1)에 인덕궁 정침에서 63세로 세상을 떠났다. 세상을 떠난 후 묘호를 올리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묘호를 올리지 않았고 명나라에서 내린 공정왕(恭靖王)이라는 시호로 불리다가 1681년(숙종 7)에 묘호를 정종이라 올렸다.


정안왕후 김씨(재세 : 1355년 1월 9일 ~ 1412년 음력 6월 25일)는 본관이 경주인 월성부원군 김천서와 삼한국대부인 이씨의 딸로 태어났다. 1398년에 영안군(정종)이 왕세자로 책봉되자 왕세자빈(덕빈)에 책봉됐고, 정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비(덕비)로 책봉됐다. 정종 사이에서는 소생을 낳지 못했고, 1400년에 정종이 상왕으로 물러나자 순덕왕대비(順德王大妃)가 됐다. 그 후 1412년(태종 12)에 인덕궁에서 58세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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