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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위로하고 평온 기원하는 무대 위 의식, 국립무용단 ‘제의’
  • 민병훈 기자
  • 등록 2020-05-23 09:17:20
  • 수정 2020-05-23 09: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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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훈 기자] 국립극장(극장장 김철호) 전속단체 국립무용단(예술감독 손인영)은 기원의 의미를 내재한 춤의 위력을 보여줄 ‘제의’(祭儀)를 다음 달 5일부터 7일까지 LG아트센터 무대에 올린다. 


2015년 국립극장 해오름에서 초연할 당시 “한국 전통춤에서 볼 수 없었던 웅장하고 섬세한 군무의 위용을 선보였다”는 평가를 받은 작품으로, 5년 만의 재공연이다. 


‘제의’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한 제례의식 속 춤을 주제로, 고대부터 현대까지 시대와 사상을 대표하는 의식무용을 담아낸다. 유교의 ‘일무’, 무속신앙의 ‘도살품이춤’, 불교의 ‘바라춤’ ‘나비춤’ ‘법고춤’ 등 의식무용을 비롯해, 원시적이면서도 현대적인 몸의 언어까지 다채로운 춤사위가 펼쳐진다. 


국립무용단의 47명 전 무용수가 출연해 역동적이고 감각적인 군무로 관객을 압도한다. 


공연은 총 8장으로 구성, 무용수들의 움직임과 대형 변화를 통해 다양한 의식무용을 펼쳐낸다. 



1장 ‘64(六十四)’로 시작한다. 동양사상의 무극(無極)을 연상케 하는 도입부는 남자 무용수가 누더기 의상을 길게 늘어뜨리면서 하늘을 향해 손을 뻗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제의’의 시작을 알리는 남자 독무의 느리고 신비한 움직임은 태초의 우주, 생명이 태동하는 모습을 그려낸다. 시계 태엽소리 같은 기계음이 반복되면서 그에 맞춰 복잡한 현세를 묘사하는 군무가 남자 솔로와 자연스럽게 교차하면서 무대 위 시간은 과거로 회귀한다. 


2장 ‘대제’(大祭)는 조선시대 유교사상을 기반으로 한 종묘제례악의 ‘일무’(佾舞) 중 대형의 짜임새가 일품인 ‘팔일무’(八佾舞)를 선보인다. 본래 팔일무는 가로.세로 8명씩 총 64명이 늘어서 추는 춤으로, ‘제의’에서는 64개 지점으로 쏟아지는 강렬한 빛과 30명의 무용수들이 64괘의 문양을 완성한다. 일사불란한 군무 속에서도 무용수 각각의 호흡은 살아있다.  


3장 ‘범행’(梵行)과 4장 ‘초제’(醮祭)에서는 삼국시대에서 고려시대의 의식무용이 이어진다. 3장 ‘범행’은 불교 의식무용인 ‘바라춤’ ‘나비춤’ ‘법고춤’을 바라나 고깔, 법고 같은 소도구 없이 오직 춤사위만으로 펼쳐낸다. 악을 물리치고 마음을 정화하는 ‘바라춤’, 마음의 평온을 소망하면서 주로 비구니들이 춰온 ‘나비춤’, 인간세상을 구제코자 하는 ‘법고춤’이 불교적 색채의 음악과 어우러진다. 


4장 ‘초제’는 토속.무속신앙에서 비롯한 ‘도살품이춤’으로 액(厄)과 살(煞)을 쫒는다. 긴 천을 늘어뜨린 무용수의 움직임에 따라 그려지는 아름다운 곡선과 아련한 몸짓에 담긴 간절함이 특징이다.  


5장 ‘제천’(祭天)은 부족사회에서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의식을 춤으로써 재현한다. 섬세한 감정이 담긴 남녀 이인무가 하늘을 숭배하고 부족의 안녕을 기원하는 춤으로 이어진다. 남녀 이인무에 조용진.이요음, 이석준·박수윤이 더블 캐스팅돼 냉정과 열정의 감정을 펼친다. 



6장 ‘제전’(祭典)은 무용수들의 응축된 에너지가 폭발하는 장이다. 원시적인 춤과 몸짓을 다양하게 재조합해 10여 분간 격정적인 동작들이 휘몰아친다. 윤성주 안무가는 6장 ‘제전’을 ‘특히 눈여겨봐야 할 장면’으로 손꼽는다. 절제되고 단순한 무대 위, 폭풍 같은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것은 오롯이 무용수들의 힘이다. 원시 제전의 꿈틀거리는 생명력이 시대를 뛰어넘어 손에 잡힐 듯 펼쳐져, 강렬한 기세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7장 ‘춘앵’(春鶯)에서는 조선시대 순조 시절 효명세자가 1828년 어머니 순원왕후의 40세 생일을 축하하면서 만든 ‘춘앵무’가 펼쳐진다. 따뜻한 봄날, 버드나무 위에서 지저귀는 꾀꼬리의 모습에서 착안한 춤으로 궁중에서 자주 연행됐다. ‘제의’에서는 ‘춘앵무’의 중심 동작을 가져오되, 임신부의 모습을 한 무용수가 등장해 춤을 춘다. 아이를 잉태한 여인의 춤은 모든 것이 소멸한 후 재탄생하는 순환을 의미한다. 인체가 지닌 아름다운 곡선에 담긴 춤으로 영원히 순환하는 생명의 안녕을 기원한다. 


끝으로 8장 ‘64괘’(六十四卦)는 현세와 태초의 순간이 다시 마주하면서, 견고한 순환의 고리를 완성한다. 탄생하고 소멸하면서 순환하는 우주의 원리를 64괘로 풀이한 동양사상을 담고 있다. 


이 공연은 1장부터 8장까지 유교의 일무, 불교의 작법, 토속.무속신앙의 도살품이춤, 제전의 원시적이면서도 현대적인 몸의 언어까지 서로 결이 다른 의식무용들이 기계적인 나열을 넘어선 하나의 유기적인 작품으로 촘촘하게 엮여있다. 


작품의 전개에 따라 퍼즐처럼 맞춰지는 서사, 구조적이면서도 입체적인 안무가 특징이다. 태초 생명의 기원을 상징하는 묵직한 독무, 냉정과 열정의 감정을 나누는 남녀 이인무, 47명의 무용수가 끊임없이 질주하면서 복잡한 현세를 표현하는 군무 등 정교하게 짜인 서사와 이를 표현하는 안무가 관객을 사로잡는다. 



안무는 2013~2015년 국립무용단 예술감독을 지냈던 안무가 윤성주가 맡았다. 전통과 현대의 경계에서 새로운 미적 가치를 찾아내는 데 정평이 난 윤 안무가는 국립무용단 예술감독 재직 시절 ‘묵향’(2013)의 안무를 맡아 국내외 무용계의 극찬을 이끌어내면서, 작품을 단체의 대표 레퍼토리로 안착시킨 바 있다. 


현대적이면서도 동시에 원시적인 ‘제의’의 음악은 장르를 넘나들며 독특한 음악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거문고 연주자 박우재가 맡았다. 전통 구음과 재즈 창법을 혼합하는 등 다양한 기법을 사용해 신선함과 신성함을 극대화한다. 


무대미술은 인간과 자연의 존재를 체계화한 동양사상 주역의 64괘를 현대적으로 시각화해 ‘제의’의 기운을 완성한다. 빛과 무용수의 정교한 짜임으로 만든 64괘 문양과 8미터 높이의 대형 벽체에 새겨진 주역의 기호가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번 공연은 국립극장이 아닌 LG아트센터에서 공연하는 만큼 무대와 조명을 수정.보완하고 캐스팅에 변화를 줬다. 무대를 장악하는 기품으로 솔리스트로서의 면모를 보여줄 박기환, 남녀 이인무에 더블 캐스팅된 조용진.이요음, 이석준.박수윤 등 젊은 무용수들이 에너지를 더한다. 


윤 안무가는 “2015년 초연 후 무대에 올린 적이 없어, 사실상 새 작품에 임하는 느낌”이라면서,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다양한 제천의식이 있어 의식무용의 종류도 다양한데, 이 의식무용을 집대성하되 단순 나열이 되지 않도록 ‘순환의 고리’를 만들어 시대별 의식무용을 담았다”고 작품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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