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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문화재 115] 전 원주 흥법사지 염거화상탑
  • 박광준 기자
  • 등록 2024-04-10 21: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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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준 기자] 전 원주 흥법사지 염거화상탑은 서울특별시 용산구 용산동6가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승탑으로, 1962년 12월 20일 국보로 지정됐다.


서울특별시 용산구 용산동6가 국립중앙박물관 야외 전시장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승려 염거(廉居)의 승탑(僧塔)이다. 승탑(부도)은 승려의 사리나 유골을 봉안하는 묘탑(廟塔)으로, 고승이 입적한 후 그의 죽음을 추모하고 존경심을 나타내기 위해 세웠다. 



본래 원주시 지정면 흥법사지에 있었던 승탑이라 전해지고 있으나, 이를 증명할 수 있는 근거가 명확하지 않아 탑 이름 앞에 ‘전(傳: 전할 전)'을 붙여 표기했다. 1914년 서울 탑골공원으로 이전됐고, 그 후 경복궁 내 옛 국립중앙박물관(현 국립고궁박물관)을 거쳐 2005년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졌다. 



승탑을 옮기는 과정에서 동제 염거화상 탑지가 탑 안에서 발견됐다. 이를 통해 이 탑이 염거화상의 사리를 보관한 승탑이고, 844년(신라 문성왕 6)에 건립됐음을 알 수 있게 됐다. 


염거(廉居)는 구산선문(九山禪門) 중 하나인 가지산문(迦智山門)을 개창한 도의(道義)의 제자이자, 가지산문의 제2대 선사(禪師)이다. 도의(道義)는 821년(신라 헌덕왕 13) 당나라에서 귀국한 후, 장흥 보림사(寶林寺)에서 남종선(南宗禪)을 전파하려 했으나, 당시 불교계는 교종 중심이어서 받아들여지지 않자 설악산에 은거했다. 


이때 염거가 도의에게서 남종선을 전수받고 가지산문의 제2대 교조가 됐다. 이후 염거는 가지산문의 제3대 선사인 체징(體澄)에게 법맥(法脈)을 전하고 844년에 입적했다.



화강암으로 제작된 팔각원당형 승탑으로, 높이는 1.7m이고, 기단부.탑신부.상륜부로 구성되어 있다. 


기단부는 하대석.중대석.상대석을 얹어 구성했다. 하대석의 각 면에 사자상을 양각했고, 중대석의 각 면에는 안상(眼象)을 조각하고 그 안에 향로, 꽃무늬 등을 새겨 장식했다. 상대석은 2단으로 이뤄져 있는데, 하단에는 앙련(仰蓮, 솟아오른 연꽃무늬)을 이중으로 새기고, 상단의 각 면에는 안상 안에 천부상(天部像)을 1구씩 양각했다. 


탑신부는 승려의 사리를 보관하는 곳으로, 탑신의 8개의 면 중 4개의 면에는 문(門) 문양을 조각했고, 다른 4면에는 사천왕상(四天王像)을 조각했다. 지붕돌(옥개석)은 기와를 얹은 듯한 팔모지붕의 형태로 제작됐고. 각 지붕면에는 처마와 기왓골은 물론 막새기와까지 새길 정도로 정교하게 표현했다. 지붕의 아랫부분에는 비천상(飛天像)을 새겨 장식했다.



일제강점기에 촬영된 사진에는 승탑의 상륜부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나, 이후 유실돼 오랫동안 부재상태로 전해져 왔다. 2018년 국립중앙박물관의 미정리 유물 자료 조사 과정에서 상륜부의 부재(部材)가 발견되어, 현재 복원되어 보존.전시되고 있다.


전 원주 흥법사지 염거화상탑은 가지산문의 제2대 선사인 염거화상의 승탑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를 갖는다. 승탑 내부에서 발견된 동제 염거화상 탑지를 통해 승탑의 주인과 건립 연대를 알 수 있고, 건립 연대를 확인할 수 있는 승탑 중에서 가장 오래된 승탑으로, 승탑 연구를 위한 중요한 사료로 평가된다. 탑의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기품이 있고, 단아해 제작됐고, 승탑의 기단부와 탑신부에 새겨진 문양들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어 예술적 가치가 있다./사진-박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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