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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문화재 114] 봉림사 진경대사 보월릉공탑
  • 박광준 기자
  • 등록 2024-04-10 20:3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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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준 기자] 서울특별시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고려전기 에 건립된 승려 진경대사 심희의 탑비로, 1963년 보물로 지정됐다. 전체 높이 337㎝, 비신 높이 171㎝, 너비 99㎝. 비는 924년(경명왕 8)에 건립됐다. 비가 있던 경상남도 창원의 봉림사는 폐사된 연대가 불확실한데, 비는 오래 전에 무너졌다. 



이수와 귀부(龜趺)는 상태가 좋은 편이나, 비신은 아랫부분 6자부터 절단, 분실되었으므로 보완해 세운 것이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옛 탁본에 의해 결실된 부분의 문자를 비음(碑陰: 비신의 뒷면)에 새기고, 마지막에 ‘□巳閏七月日重竪此刊(□사윤칠월일중수차간)’이라는 중수 사실을 기록했는데, ‘□巳’는 1797년(정조 21) 정사(丁巳)에 해당할 것으로 추정된다.


1919년 봉림사지 진경대사탑(보물, 1963년 지정)과 함께 경복궁으로 옮겨졌다.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 경내에 있다.



진경대사 심희(審希)는 신라 말 선문구산(禪門九山)의 하나였던 봉림사의 개조(開祖)로, 비문(碑文)에는 출가 후 명산을 두루 다니면서 사람들로부터 공경을 받고 국왕들을 귀의시킨 그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다. 923년 봉림사 선당(禪堂)에서 입적하자, 왕이 ‘진경’이란 시호(諡號)와 ‘보월능공(寶月凌空)’이라는 탑명(塔名)을 내렸다.



비문은 경명왕이 직접 지었고, 글씨는 심희의 문하승(門下僧)인 행기(幸期)가 썼다. 글씨는 자경(字徑) 2㎝의 해서(楷書)로 구양순체(歐陽詢體)를 따랐다. 이수(螭首: 뿔 없는 용의 모양을 아로새긴 형상) 가운데 ‘고진경대사비(故眞鏡大師碑)’라는 전액(篆額)은 최치원(崔致遠)의 사촌 동생인 최인연(崔仁渷, 일명 崔彦撝)이 썼다.


귀부는 머리가 유난히 크고 입에는 여의주(如意珠)를 물고 있으며, 머리 위에는 뿔이 있었던 듯한 작은 구멍이 있다. 등에는 귀갑(龜甲)무늬를 새겼고 둘레에 구름무늬를 둘렀다. 비좌(碑座) 4면에는 구름무늬를 새기고, 상단에는 복련(覆蓮)을 배치해 비신을 얹었다.



이수 가운데의 전액을 중심으로 반룡(蟠龍: 승천하지 않은 용) 두 마리가 보주(寶珠)를 다투듯 구름무늬에 싸여 있고, 모퉁이에 각각 한 마리의 용이 표현됐다. 이수 하단에는 2단의 층급을 두고 앙련(仰蓮)을 새겼고, 비신 옆면에는 운룡문(雲龍文)을 새겼다. 이들 조각은 천각(淺刻)의 경향이 있고, 형식화된 통일신라 후기의 조각 양식을 보여준다./사진-박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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