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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기의 공연산책 343] 박정기의 공연산책 삼육병원 설립자 류제한 박사 추모비 건립 제막식
  • 박정기 자문위원
  • 등록 2024-04-02 01:12:30
  • 수정 2024-04-14 17:2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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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위생병원(원장 최건필)은 미국 의사로서 한국에 의료선교사로 내한, 1929년부터 1967년까지 근 32년간 서울위생병원장과 이승만 대통령 주치의를 지냈던 故류제한 박사 및 부인 메이 여사의 추모비 건립 제막식을 최근 가졌다.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서 열린 이 행사에는 류 박사의 유가족들과 삼육대학교에서 선교사로 봉직했던 선교사들 및 친지, 전정권 재단이사장, 최건필 원장, 신상균 부원장 등이 참석했다.



이날 최건필 원장은 추모사에서 "유 박사는 젊은 나이에 살기 좋은 자기의 조국 미국을 떠나 한국에 와서 이 나라가 일제의 식민통치 하에 있을 때 한국민을 사랑으로 감싸주었으며 6·25 동란 시 부산 임시수도에서 피난민들을 위해 임시병원을 마련해 피난민들을 무료로 진료해주는 한편 맥아더 사령부의 협력으로 피난민들을 제주도로 대피시키는 등 우리민족을 위해 죽을 각오로 일한 참 의사였다"며 "유제한 박사의 발자취와 그 남기신 흔적은 너무나 크며 또한 그 빛과 향기는 이 땅의 어느 곳에서나 늘 비치고 있다"고 말했다.


류제한 박사Dr. George H, Rue (1890-1993)


나는 한국에 구경 삼아 나온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한국에 나의 뼈를 묻을 각오로 온 사람이었습니다.

이리가 한국 백성을 해치러 온다면 도망가는 목자로서가 아니라

그 양을 위해 희생을 각오하고 온 선교사였습니다.


나는 어느 누구도 소홀히 치료하지 않았습니다. 이승만 박사를 치료할 때나,

시골의 아낙네를 치료할 때나 똑같이 최선을 바쳤습니다.


1.4후퇴 때 나는 맨 마지막으로 한강철교을 넘었습니다.

나는 그날 밤 10시에 자동차로 한강을 건너 밤새 달려서 이튿날

늦게 부산에 도착했던 기억이 납니다.


나는 전쟁 고아들을 모아 시작한 고아원 삼육원과 그 곳을 통하여

대학까지 나온 40여명의 자녀들을 잊지 못합니다. 또 미국으로 입양수속을

통하여 내보낸 400여명의 자녀들을 잊지 못합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주치의이자 위생병원(현 삼육병원)의 초석을 놓은 것으로 유명한 류제한(Dr. George Henry Rue: 1889-1993) 박사는 초기 한국선교 당시 의료선교사로 크게 헌신했던 인물이다. 현재의 묘소는 지난 2004년 한국선교 100주년기념 유적사업의 일환으로 묘비를 세워 조성했다.


“나는 대통령을 진료할 때나 시골 아낙네를 진료할 때나 똑같은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진료했습니다” “나는 한국에 구경삼아 나온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한국에 나의 뼈를 묻을 각오로 온 사람이었습니다. 이리가 한국 백성을 해치러 온다면 도망가는 목자가 아니라 그 양을 위해 희생할 각오를 하고 온 선교사였습니다”라는 말에 그가 얼마나 숭고한 정신으로 한국인을 대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 옆에는 부인 메 에임스 류(Mae Ames Rue: 1900-1936) 여사의 묘가 있다. 그녀는 류제한 박사가 태평양연합대학(PUC)을 졸업하고, 로마린다대학에 입학한 이듬해인 1921년 6월 19일 결혼했다. 이후 남편이 한국의 의료선교사로 부름 받자 함께 우리나라에 왔습니다. 1929년 5월의 일이다.


하지만 순안병원뿐 아니라 소공동과 인사동, 현재의 휘경동 자리에 병원을 신축하는 등 의료사업이 한창 궤도에 오를 즈음, 신병을 얻고 말았다. 수술을 받았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그 후유증으로 서른여섯의 젊은 나이에 이역만리 타국에서 숨을 거뒀다. 신혼의 단꿈을 접고 한국에 온 지 7년 만이었다. 현재 우리나라에 묻힌 외국인선교사는 그녀가 유일하다.


그 옆에는 제넷 오벅 맥기(Jeanette Oberg Mcghee: 1918-1995) 여사의 추모비가 서 있다. 그는 한국 재림교회의 기반을 닦은 오벽(H.A. Oberg: 1909-1939) 목사의 딸이다. 1918년 순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오벽 목사는 1908년 11월 한국에 와 1939년 이 땅을 떠날 때까지 의명학교 교사, 삼육대학장, 시조사 편집국장, 조선합회장 등을 역임하며 초기 한국선교의 기틀을 놓았다.


이 비석은 2001년부터 4년 동안 북아태지회 선교부장으로 봉사했던 존 맥기 목사가 자신의 어머니인 제넷 오벅 맥기 여사를 추모하기 위해 세웠다. 존 맥기 목사는 오벽 목사의 외손자다. 한국선교 100주년 기념 해를 맞아 어머니의 분골을 한국으로 옮겨와 2004년 이곳에 안장했다.


한국선교가 어느덧 120년을 맞았다. 그래서인지 외국인선교사 묘역을 바라보는 마음이 더욱 엄숙해진다. 미지의 땅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기꺼이 ‘파란눈의 한국인’이 된 그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고마움도 있고, 미안함도 있고, 애틋한 감정도 묻어난다. 이들의 삶이 한국 교회에 남긴 의미를 되새긴다.


우산을 걷어 묘원을 나서는 길, 어디선가 이런 물음이 들려오는 듯했다.


‘너는 이들처럼 헌신하느냐?’


‘너는 이들처럼 너의 민족을 사랑하느냐?’


‘너는 이들처럼 할 수 있으냐? 아니, 하고 있느냐?


존경하는 류제한 박사를 추모하며 


* 주요경력


황해도 금천생, 서울고 서울대미대, 서울대학교 총동문회 이사, 극작가/연출가/평론가, 한국희곡뮤지컬창작워크숍 대표, 한국문인협회 희곡분과 위원, 전 서초연극협회 회장, 본지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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