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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낮은 곳으로 흐르는 '사랑의 위력'
  • 윤여금 기자
  • 등록 2024-04-01 19:4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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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두 노인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1828~1910)는 1828년 러시아에서 넷째 아들로 태어나 2세 때 어머니가 사망하여 ‘숙모’라 불리는 친척에게서 자랐는데 톨스토이의 성장과 작품세계에 큰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톨스토이는 세계적인 대문호이다. 단편작품 10편이 있는데 단편 '두 노인'을 통해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서로 사랑하고 타인에게 선을 베푸는 실천의 삶이 중요하다라는 사실을 깨우쳐알 수 있게 한다.

 

예루살렘으로 순례 여행을 떠나는 두 노인이 있었다. 하나는 예핌 테라시치 셰벨레프라는 부유한 농부였고, 또 다른 엘리샤 보드로프는  가난했다.

 

예핌은 성실한 사람으로 마을에 촌장직을 두 번 지냈다. 두 아들과 결혼한 손자까지 함께 살고 건강했으며 턱수염을 60이 넘어서 나이든 티를 내기 시작했다.

 

엘리샤는 전에는 목수 일을 했지만 나이 들어서는 집에서 양봉을 하며 지냈다. 아들 하나는 집을 떠나 일자리를 찾아다니는 중이었고 다른 아들은 집에 있었다. 가끔 술과 코 담배를 하고,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고 평온한 성품으로 가족, 이웃들과 화목하게 지냈으며 키가 작고 턱수염이 있으며 대머리였다. 

 

두 노인은 예루살렘으로 순례 여행을 가기로 계획을 세웠는데, 예핌은 시간을 내지 못했다. 

 

어느날 두 노인이 만나 엘리샤가 말했다. 우리는 언제쯤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되려나. 

예핌은 말했다. 집 짓는 일이 완성 되지 않아서 어떻게 일을 두고 간단 말인가. 빈손으로 여행을 떠날 수 없지. 한 사람 앞에 100루블은 있어야 할 테니까.  

 

엘리샤가 웃음을 터트렸다. 부자인 자네가 돈 타령을 하나. 

언제 출발할 건지 말하게. 영혼보다 중요 것은 없으니까. 

 

예핌은 말했다. 그래도 집안일을 소홀히 하는 건 옳지 않아 . 

영혼을 소홀히 여기는 건 더 나쁘지. 엘리샤는 친구를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다음날 엘리샤에게 자네 말 맞아 가세. 말했다.

 

예핌은 충분한 돈이 있었으므로 백루브를 챙겼다. 

 

엘리샤도 벌통 10개를 팔고 그 벌통에서 애벌레가 생기면 그것들까지 모두 넘겨 주기로 하고 70루브를 받았다. 그리고 나머지는 가족들이 가진 것을 긁어모아 100루브를 마련했다. 

 

예핌은 큰아들에게 집안일을 세세하게 일러 두었다. 

엘리샤는 이웃에게 판 벌통에서 나온 애벌레들을 따로 잘 모았다가 이웃에 전해 주라고 일렀고, 상황에 따라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게 될 것이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두 노인은 일주일에 떠날 채비를 마쳤다. 

 

식구들은 그들을 위해 케이크를 굽고 가방을 만들어 주었다. 새로 지은 신발을 신고 나무 껍질로 만든 신발은 여분으로 챙겼다. 식구들은 마을까지 나와 두 노인을 배웅했다. 그들은 이렇게 순례 여행을 떠났다. 

 

엘리샤는 기분 좋게 떠났고 마을을 벗어나자 집안일은 모두 잊었다. 어떻게 하면 함께 가는 친구를 기쁘게 해 줄 수 있고, 어떻게 하면 평화롭고 사랑이 충만한 마음으로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엘리샤는 즐거운 마음으로 여행을 이어갔다. 

 

예핌도 활기차게 걸었다. 

 

두 노인은 다섯 주일을 걸어서 소러시아에 도착했다. 소러시아에서는 밥값도 받지 않았으며 빵과 케이크를 보따리 안에 넣어 주기까지 했다. 두 노인는 경비를 안 드리고 500마일 정도를 여행했다. 

 

도시 하나를 지나 흉년이 된 지역에 이르렀다. 농부들은 잠자리를 제공해 주었으나 음식까지 공짜로 주지는 않았다. 지난해에 수확이 거의 없었기에 빵을 구할 수 없는 날도 있었다. 원래 부자였던 사람들은 가진 것을 팔아서 먹고 살 수 있었으나, 가진게 없는 사람들은 동냥하든가 집에 앉아 굶고 있다고 했다. 겨울에는 겨와 명아주로 연명했다고 했다. 

 

두 노인은 작은 마을에서 밤을 지낸 다음 해 뜨기 전에 길을 나섰다. 노인은 다시 8팔마일쯤 가니 큰 마을이 나왔다. 

 

엘리샤는 지쳐서 잠시 쉬면서 목을 축이고 싶었지만 예핌은 멈추길 원치 않았다. 예핌은 목마르지 않았고 발걸음도 빨랐으므로 엘리샤는 그와 보조를 맞추기가 힘들었다. 

 

엘리샤가 자네 먼저 가게. 나는 오두막에 가서 물 한잔 얻어 마시고 곧 뒤따라가겠네. 말했다. 

 

그러자 예핌은 혼자서 길을 따라 계속 걸었고, 엘리샤는 오던 길을 되돌아 오두막으로 갔다. 

 

작은 오두막은 진흙 조각이 떨어져 나간 흔적이 여기저기 있었다. 엘리샤는 마당으로 들어섰다. 토담 옆에 수척한 사내가 누워 있었다. 엘리샤는 사내에게 물 한잔 마시게 해 달라고 청했다. 사내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문으로 향하려는데 오두막 안에서 어린아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엘리샤는 문을 두드렸지만 대답도 없었고 문 안에서 신음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엘리샤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의자에 한 노파가 앉아 있었다. 노파는 셔츠 하나만 입은 채 탁자 위에 머리를 대고 엎드려 있었다. 그녀 옆에는 창백하고 바짝 마른 사내아이가 배만 불록튀어나왔고 뭔가 달라고 울고 있었다. 

 

엘리샤는 안으로 들어갔다. 방안에 한 여자가 누워서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몸을 뒤척이기 시작했다. 악취가 그녀에게서 나며,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상태인데 돌봐 줄 사람이 없는 게 분명했다.

 

낯선 사람이 들어와 있는 것을 보고, 왜 오셨소? 

엘리샤는 물 한잔 마시러 들어왔다고 말했다. 

엘리샤가 노파에게 물었다. 저 여자분을 돌봐 줄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까? 

내 아들은 밖에서 죽어 가고, 우리는 이 안에서 죽어간다. 

 

어린아이는 노파가 말하기 시작하자. 울기 시작했다.

 

엘리샤가 노파에게 뭔가 물으려는 데 밖에 있던 사내가 더듬거리며 한마디 하고는 헐떡이며 숨을 고르고 하는 식으로 “질병과 기근이 우리의 삶을 휩쓸었다. 저 아이도 굶어 죽어가고 있다”고 말하고 울기 시작했다. 

 

엘리샤는 등에 메고 있던 배낭을 의자에 놓고 끈을 풀었다. 그리고 빵을 꺼내 칼로 잘라 사내에게 주었다. 사내는 빵을 받지 않고 울고 있는 사내 아이와 난로 뒤에 여자 아이를 가리키며 “저 애들에게 주십시오.” 

 

엘리샤는 사내아이를 향해 빵을 내밀었다. 아이는 빵 조각을 받아서 한 입 베어 먹었다.

여자 아이에게도 빵을 한쪽 주었다. 다음 노파에게 주자, 곧 먹기 시작했다. “물을 좀 가져올 수 있으면 좋으련만” 노파가 말했다. “저 애들 입이 말랐다. 내가 물을 뜨러 가다가 넘어졌다.” 

 

엘리샤는 양동이에 물을 떠다가 모두에게 마시게 했다. 노파는 물과 함께 빵을 먹었다. 

 

엘리샤는 마을에 있는 가게로 가서 수수와 소금, 기름을 사 왔다. 도끼를 찾아서 장작을 패고 불을 지폈다. 그런 다음 스프를 끓여 허기진 사람들을 먹게 했다.

 

사내와 노파도 수프를 먹었다. 어린아이들은 그릇 바닥까지 핥아 먹고 나서 잠이 들었다. 

 

사내는 엘리샤에게 어쩌다 이렇이 되었는지 이야기를 했다. “전에도 가난했다. 그런데 흉년이 들자 우리가 수확한 것으로는 가을까지 버티기도 힘들었다. 겨울이 시작될 쯤에는 먹을게 없었다. 이웃 사람들은 처음에는 도와주다가 나중엔 거절했다. 사방에서 돈을 빌리고 밀가루와 빵을 외상으로 가져다 먹었다. 먹기 살기 위해 일자리 찾는 사람들이 사방에 넘쳐났다. 하루 일하고 나면 이틀은 또다시 일거리를 찾아 헤매야 했다. 

 

봄이 올 무렵부터 사람들은 먹을 걸 나눠 주지 않았다. 풀을 뜯어다 먹기 시작했는데 아내가 병이 났다. 거동도 할 수 없고 회복할 방도를 찾을 수 없었다. 한 동안 나 혼자 어떻게든 해 보려고 애썼다.” 

 

노파는 엘리샤에게 말했다. “손녀딸도 몸이 약해져 소심해졌고 방에 앉아만 있었다. 이웃 사람이 와서 들여다보고, 우리가 병들고 굶고 있는 걸 보고 그냥 돌아갔다. 그녀도 남편이 집을 떠난 데다 어린 자식들 먹일 양식도 없어서 죽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사정을 들은 엘리샤는 친구를 뒤따라가는 것을 포기하기로 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 자기 집인 양 집안일부터 시작했다. 빵 반죽을 만들고 불을 지폈다. 소녀와 함께 윗집에 가서 필요한 물품도 빌려 왔다. 오두막에 있는 살림살이는 주방용품이고, 빵을 사기 위해 모두 팔아서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엘리샤는 필요한 집기들을 다시 구해다 놓고 사기도 했다. 

 

사흘째가 됐다. 사내아이는 기운을 차렸는지 엘리샤가 의자에 앉으면 무릎 위로 올라왔고, 여자아이도 안색이 밝아져서 엘리샤를 할아버지라고 부르며 도우려 했다. 

노파도 회복되어 이웃집에 마실도 다닐 수 있게 됐고, 주인 남자도 호전되어 벽을 짚고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아내도 4일째 되는 날에는 의식이 돌아와 먹을 것을 찾았다. 

 

이렇게 오래 머물 생각은 아니었다. 나는 이제 가던 길을 가야 할 것 같다.

 

나흘째 되는 날 엘리샤는 내일 저녁에 길을 떠나면 되겠지. 생각했다.

 

엘리샤는 마을에 가서 우유, 밀가루, 기름을 사다가 노파를 도와 음식을 만들었다. 

그날 농부의 아내는 처음 몸을 일으켜 조금 움직였다. 농부는 경작지, 목초지를 저당 잡은 마을의 부자 농부를 찾아갔다. 추석 때까지 목초지와 밭을 사용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사정하러 갔으나 부자 농부가 거절하면서 돈을 가져오라고 했다고 울고 있는 것이다. 

 

엘리샤는 이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 

3에이커나 되는 경작지가 부자 농부에게 저당 잡혀 있으니, 내가 가고 나면 이들은 처음 내가 왔을 때의 상태로 되돌아가고 말 거야.

 

엘리샤는 두 마음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다음 날 떠나기로 했다.

 

엘리샤는 마당으로 나가 기도를 드리고 누웠다. 

이미 시간과 돈을 많이 썼으므로 이제는 가야 할 것 같으면서도 막상 오두막 식구들을 생각하면 가여운 마음이 앞섰다. 

 

처음엔 그저 물을 떠다 주고 빵 한 쪽씩 먹게 해 주려던 것이였다. 

 

엘리샤는 여행을 떠나는 등짐을 진 채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대문을 나가려는데 손녀딸이 울면서 붙잡고, 사내 아이가 잡고 있었다. 농부와 그의 어머니는 창문으로 그를 내다보고 있었다.


엘리샤는 연민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엘리샤는 내일 농부의 경작지를 찾아 주고 말도 사 줘야겠어. 추석까지 먹을 밀가루도 사고 어린 아이들을 위해 젖도 사 줘야 해. 그렇지 않고는 내 안에 하나님을 잃어버릴 거야, 거기까지 생각하고, 엘리샤는 잠이 들었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부자 농부를 찾아가 경작지와 목초지를 되찾았고, 낫을 사서 오두막으로 돌아왔다. 농부를 풀 베러 보낸 엘리샤는 다시 마을로 가서 주막집 주인과 흥정을 해서 말과 수레를 산 다음 밀가루 한 포대를 사서 수레에 싣고 젖소를 보러 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동네 아낙네 둘이 나누는 대화를 듣게 되었다. 

자기를 칭찬하는 소리를 들은 엘리샤는 주막으로 돌아왔다. 

 

곧장 말 값을 치르고 말을 타고 오두막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식구들이 모두 잠자리에 들자.

 

엘리샤는 나와 길가에 누웠다. 그날은 집 보따리를 가지고 나왔다. 그리고 모두 잠이든 후에 예핌을 뒤따라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3마일쯤 가니 날이 밝기 시작했다. 

엘리샤는 나무 밑에 앉아 남은 돈을 세어 보았다. 17루블 20코페이커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이 돈으로는 무리다. 

 

예핌은 예루살렘까지 갈 수 있을 테니, 내 이름으로도 초를 켜 줄 거야. 난 아무래도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 같군. 

 

엘리샤는 자리에 일어나 발길을 돌렸다. 아무도 그를 알아보는 일이 없도록 멀리 돌아 집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집을 떠나오면서 길도 험하고 예핌을 따라잡느라 무척 힘들었는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피곤을 느끼지 못했다. 

 

엘리샤는 걸어서 집에 도착하니 가족들은 기쁜 얼굴로 엘리샤를 반기며 그간의 일들을 궁금해 했다. 왜 예루살렘까지 가지 않고 되돌아 왔는지 물었다.

 

내가 예루살렘에 가다가 돈을 잃어버렸고 걸음이 느려 뒤쳐지게 되었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날 용서하렴. 

 

엘리샤는 늙은 아내에게 남은 돈을 주고 식구들에게 집안일에 관해 물었다. 할 일은 모두 잘 끝났고, 모두 평안하고 화목하게 지내고 있었다. 

 

엘리샤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은 예핌의 가족도 예핌의 소식을 듣고 싶어 찾아왔다.

 

엘리샤는 그들에게도 똑같은 대답을 들려 주었다. 

 

예핌네 가족은 엘리샤처럼 사리분별이 확실한 사람이 마음 먹고 길을 떠났는데 목적지까지 가지 않고 되돌아 오다니. 게다가 돈을 모두 잃어버렸다니... 

그 일에 대해서는 잊어버렸다. 

 

엘리샤도 그간의 일은 잊고, 다시 집에서 하던 일을 이어갔다. 

겨울 준비를 마친 엘리샤는 아들은 일자리를 찾으러 보냈고 자기는 나무껍질로 신발을 만들고 벌집으로 쓸 통나무 속을 파내며 겨울을 보냈다.

 

엘리샤가 오두막에서 병든 사람들을 돌보느라고 붙잡혀 있던 그날, 예핌은 나를 기다렸다. 해가 저무는데 엘리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날 밤에도 엘리샤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 후로도 가는 길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머리가 벗겨진 노인을 보았느냐고 물었다. 

 

예핌은 의아해하면서도 일정대로 여정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에 성직자의 옷을 입은 순례자 한 사람을 만났다. 예루살렘에는 두 번째 가는 길이라고 했다. 두 사람은 우연히 같은 곳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쭉 함께 움직였다. 

 

오대사에 도착하자, 사흘 동안 배를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수많은 순례자가 모두 같은 처지였다. 예핌은 엘리샤의 행방을 물었지만 그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예핌은 5르부를 내고 외국인 통행증을 받았으며 46불로 예루살렘까지 왕복 배삯을 치렀다. 가는 동안 배에서 먹을 빵과 청어도 샀다. 예핌과 그의 새 동반자도 탔다. 항해가 순조롭더니 저녁이 되면서 파도가 쳐서 갑판 위로 물이 들이쳤다. 사일째가 되자 비바람이 가라앉았다. 

 

예핌은 배에 남아 있다가 빵만 조금 샀다. 배는 24시간 정박했다가 다시 항해를 시작해서 알렉산드리아에 들렀다. 예루살렘까지는 육로로 40마일 가량 남아 있었다. 

 

사흘째 되는 날 정오 쯤 예루살렘에 도착했다. 러시아인의 여인숙에 들러 통행증을 받았다. 

 

예핌은 새 동반자와 함께 성지을 찾아갔다. 두 사람은 총대주교성당으로 갔다. 꽤 많은 순례자가 와 있었다. 성당 측에서는 순례자들에게 음식과 포도주를 나눠 주었다. 


다음 날 아침에는 이집트의 성녀 마리아가 고행하며 살았다는 기도처에 갔다.

그곳에서도 촛불을 밝히고 기도를 드린 후 아브라함의 수도원으로 가서 아브라함이 아들을 제물로 바치려 했던 장소를 보았다. 

 

다음은 그리스도께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났던 성지와 예수 그리스도의 형제인 야고보의 교회에 들렀다. 

 

사제복을 입은 순례자는 그의 곁을 떠나지 않고 붙어 다녔다. 성당에 도착하니 러시아인을 비롯해 여러 나라에서 온 순례자들이 모여 있었다. 

 

예핌은 성스러운 문으로 들어갔다. 수도사는 자세히 보여 주며 설명했다. 수도사가 예핌을 인도해 십자가가 서 있던 지점인 골고다까지 안내했다. 

 

그 다음엔 그리스도의 손과 발에 못을 박았던 장소와 채찍질을 당할 때의 기둥도 보았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발이 놓였던 구멍 뚫린 돌도 있었다. 

 

순례자의 무리가 서둘러 그리스도의 무덤이 있는 교회 안으로 들어갔다. 

예핌은 마음의 죄를 짓게 하는 그 순례자한테서 멀어지고 싶었으나 그는 떠나지 않았다.

그리스도의 무덤에서 바치는 미사에도 나란히 참석하게 됐다. 두 사람은 앞쪽으로 자리를 잡고 싶었으나 한 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예핌은 사람들의 머리 너머를 바라보다가 뭔가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맨 앞쪽 성스러운 등불 바로 아래 회색 외투를 입은 대머리가 틀림없는 엘리샤가 어떻게 나보다 먼저 와 있을 수 있겠어. 예핌은 그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엘리샤 보드로퍼였다. 턱수염이 희끗거리는 것도 눈썹, 눈, 코 틀림없는 엘리샤였다. 예핌은 친구를 다시 만난 것이 기쁘면서도 엘리샤가 어떻게 먼저 왔는지 궁금했다. 여기서 나갈 때 만나서 함께 돌아가야지. 예핌은 엘리샤를 놓지 않기 위해 시선을 고정했다. 

 

엘리샤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친구를 찾지 못한 채 숙소로 돌아왔다. 

 

그날 밤 사제복을 입은 순례자는 돌아오지 않았다. 빌려간 1루브를 갚지 않은 채 떠나 버린 것이다. 


예핌 혼자 남았다. 

 

다음 날 예핌은 배에서 만난 노인 한 사람과 다시 그리스도의 무덤을 찾았다. 이번에도 밀려나 뒤쪽에 서게 되었다. 예핌은 기둥 옆에서 기도드렸다. 앞을 보는데 왼쪽 그리스도의 관 가까이 달린 전등불 아래 엘리샤가 서 있었다. 재단 위에 사제처럼 양팔을 넓게 벌린 채 대머리를 반짝이면서... 이번에는 절대로 저 친구를 놓치지 않으리라. 사람들을 밀치고 앞에 당도에 있을 때 엘리샤는 없었다. 어느새 자리를 뜬 것이다. 


세 번째 날도 모두가 볼 수 있는 성스러운 자리에 엘리샤가 서 있었다. 양팔을 활짝 벌리고 우러러 시선을 위로 향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문 앞에서 지키고 서 있었다. 사람들이 모두 나갔는데도 엘리샤는 보이지 않았다. 

 

예핌은 여섯 주일 동안 예루살렘에 머물면서 베들레헴 요단강 등을 보았다. 작은 병에 요단강 물과 흙을 담았다. 여덟 군데의 기도 요청 명단에 이름까지 올리고 나니 남은 돈은 집으로 돌아갈 여비뿐이다. 

 

예핌은 걸어가서 오대사로 가는 배를 탔다. 예핌은 왔던 길을 그대로 되짚어 돌아왔다. 

 

예핌은 지난 여름 엘리샤와 헤어졌던 지역에 도착했다. 

어느날 저녁에 엘리샤가 물을 얻어 마시기 위해 뒤 처져졌던 곳에 이르렀다. 

 

마을에 들어서려는데 흰 셔츠를 입은 어린 소녀가 오두막에서 뛰어나왔다. 그를 붙잡고 놓아 주지 않았다. 여자도 저녁 식사하시고 우리 집에서 하룻밤 지내고 가세요. 

 

예핌은 오두막으로 들어가며 생각했다. 엘리샤 소식을 물어볼 수 있을 것 같다. 엘리샤가 물을 얻어 마시러 들어간 게 바로 이 집이었던 것 같다. 

 

여자는 예핌의 가방을 받아서 들여놓고, 식탁에 앉게 하고 우유와 잼이든 케이크죽을 식탁 위에 차렸다. 

 

예핌은 그녀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며 순례자에게 친절을 베푸는 마음씨를 칭찬했다.

 

여자가 “저희가 순례자를 반기는 데는 이유가 있다.”  지난 여름 저희는 모두 병들고 무기력해서 누워만 있었다. 먹을게 없어서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삶이 무엇인지를 몸소 보여 준 순례자 한 노인이 저희를 도왔다. 

 

어느 날 물 한 잔 청하려고 들어왔다가 저희가 처해 있는 상황을 보고 가엾게 여겨 머물러서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챙겨 주고 저당 잡혔던 경작지도 찾아 주고, 수레, 말도 사 주며 저희가 다시 설 수 있게 해 주었다. 

 

노파도 들어오더니 말했다. 누워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노인이었는데, 그가 우리를 사랑해 주고 가엾게 여겨 주었고 이름을 밝히지 않고 떠났다. 지금도 그때 일이 눈에 선하다. 

 

여자아이도 말했다. 처음에는 가방을  의자에 올려 놓았죠. 그러고는 다 같이 그때 그가 어떤 행동을 했고 어떤 말을 했는지. 어디에 잤는지. 그리고 그들 각자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었는지 기억을 하기 시작했다. 

 

저녁 무렵에 농부가 말을 타고 돌아왔다. 그리고 엘리샤 그가 오두막 식구들과 어떻게 해 주었는지 이야기해 주었다. 그가 오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모두 죽었을 것이다. 친구와 인간을 원망하면서 절망 속에 죽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우리를 다시 일어서게 해 주었어요. 그를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인간이 선한 존재임을 믿게 되었다. 그는 우리를 사람답게 살게 해 주었어요. 

 

오두막 식구들은 예핌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나서 잠자리로 안내했다. 그리고 자기들도 잠자리에 들었다. 

 

예핌은 엘리샤를 거의 머릿속에서 떨쳐낼 수 없었다. 예루살렘에서 세 번이나 맨 앞자리에서 있던 그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래서 엘리샤는 나보다 앞서갈 수 있었던 거였다. 

 

예핌은 하나님께서 나의 순례를 받아 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엘리샤의 여정을 받아 주신 것은 분명해.


다음 날 아침 예핌은 오두막 식구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그들은 예핌이 가다가 먹을 수 있도록 먹을 것을 가방에 넣어 주고 일터로 나갔다. 

예핌도 오두막을 나서 귀향길에 올랐다.

 

예핌은 1년이 지난 어느날 저녁 집에 도착했다. 아들은 술 취해서 들어왔다. 

예핌은 그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집을 비운 동안 일 처리를 엉망으로 한 것이 드러났다. 예핌은 아들을 호되게 나무랐다. 

 

다음 날 아침 예핌은 아들 일로 촌장을 찾아갔다. 가는 길에 엘리샤의 집을 지나게 되었는데 엘리샤의 아내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예핌이 대답했다. 잘 다녀왔다. 중간에 엘리샤를 놓치기는 했지만 그도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고 들었다. 

 

엘리샤는 지금 집에 있습니까. 양봉장에 있어요. 

엘리샤는 회색 외투를 걸쳤을뿐 얼굴에 쓰는 그물망도 없이 서 있었다. 자작나무 아래서 위를 올려다 보면 두 팔을 벌린 채 대머리를 반짝이며 서 있는 그 모습은 예루살렘의 그리스도 무덤에서 보았던 그대로였다. 머리 위에 드리워진 나뭇가지 사이로 태양빛이 성지에서 불꽃처럼 빛나고 있었으며 머리 둘레에 둥글게 원을 그리며 날아다니는 벌들이 후광처럼 보였다. 

 

엘리샤는 환한 얼굴로 수염에 붙은 벌들을 떼어내며 그를 향해 다가왔다. 

 

친구 반가워. 예루살렘에는 무사히 도착했나. 

 

내 발은 틀림없이 그 땅을 밟았지. 자네에게 주려고 요단강에 물을 떠 왔다네. 우리 집에 와서 가져가게. 나의 순례를 주님께서 받아 주셨는지 모르겠어. 

 

엘리샤가 말했다. 그리스도께서 자네를 축복하실 거야. 

 

예핌은 내 발은 그 땅을 밟았지만 내 영혼은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영혼은... 

 

그건 주님께서 하실 일이야. 예핌이 말을 끝내기 전에 엘리샤가 응수했다. 

 

돌아오는 길에 자네가 물을 마시러 들어갔던 오두막에 들렀다. 

엘리샤가 깜짝 놀라며 서둘러 말을 막았다. 

집 안으로 들어가세 꿀맛이 어떤지 맛 좀 보게.

엘리샤는 화재를 돌려 집안일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예핌은 오두막 사람들에 관한 것은 엘리샤에게 말하지 않았다. 예루살렘에서 그를 보았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하나님께 드린 약속을 지키고 그분의 뜻을 실천하는 가장 좋은 길은 사는 동안 서로 사랑하고 타인에게 선을 베푸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는 알 수 있었다.

 

두 노인의 작가는 엘리샤를 통해 삶에 있어서 영혼의 가치를 말했다. 순례 여행 중에 엘리샤는 물 한잔을 청하려 오두막집에 들렀다가 모두 병들고 무기력해서 누워만 있고 먹을 게 없고 친구와 인간을 원망하면서 절망 속에 죽을 수밖에 없는 이러한 상황을 보고 그들을 가엾게 여겨 머물러서 먹을 것을 주고, 저당 잡혔던 경작지도 찾아 주고 다시 설 수 있게 해 주고 이름도 밝히지 않고 그들의 집을 떠났다. 엘리샤는 순례 여행지인 예루살렘으로 가는것을 포기한 채 귀향했다. 

 

그런데 엘리샤는 예핌보다 먼저 앞서 가서 목적지인 성지 예루살렘에서 두팔을 벌린 채 서 있지 않았는가. 그의 빛나는 모습을 예핌은 분명히 보았다.

 

인간은 행하는 것도 씨앗을 심는 것이라할 수 있는 것인데 사람은 행위로 심는 것이므로 그 행위를 심는 곳이 여기면 결과는 다른 곳에서도 나타날 수 있고 미래에 나타날 수 있다. 고로 사람은 무엇을 심고 가꾸었느냐. 육을 위한 씨앗을 심었느냐? 이웃과 타인을 위해서 영혼을 위해서 심었느냐? 인간은 심은 대로 거두는데  좋은 씨앗을 심는다는 것은 보통 쉬운 일이 아닐 게다. 선행적 희생의 삶으로 심었으면 좋은 열매를 맺어 거둬들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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