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서울시 구석 구석 304] 이한열 열사의 추모비가 있는 '이한열 동산'
  • 우성훈 기자
  • 등록 2024-03-22 19:50:06
  • 수정 2024-04-10 23:39:00

기사수정


[우성훈 기자] 이한열 동산은 한국사에 민주주의의 한 획을 그은 1987년 6월 민중 항쟁의 불씨가 된 이한열 열사의 추모비가 위치한 이한열 동산이다. 



이한열 열사는 1966년 8월 29일 전남 화순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입학 후 본격적으로 학생운동가의 길에 들어섰다. 1987년 6월 9일 '6.10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에 참석했던 이 열사는 결의대회를 마친 뒤 1000여 명의 학생들과 함께 연세대학교 정문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경찰은 시위 진압을 위해 학생들에게 최루탄을 쐈고, 이 과정에서 이 열사는 최루탄을 맞고 쓰러졌다. 고인은 함께 시위에 참여했던 학우의 부축을 받아 시위 현장을 빠져 나왔는데, 이 장면을 로이터 통신 기자가 촬영해 보도하면서 해당 사건은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됐다.



이후 이 열사가 최루탄을 맞았다는 소식에 시민들의 분노는 커졌고, 이는 6월 10일부터 29일까지 약 20일 동안 학생과 시민 등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민주화를 외치면서 거리로 몰려나오는 계기가 됐다. 이 시위가 지속적으로 이어지자 결국 전두환 군사정권은 6.29 선언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수용했다.

 


한편, 경찰이 쏜 최루탄에 머리를 맞아 의식을 잃은 이 열사는 27일간 의식을 차리지 못했고 결국 1987년 7월 5일 세상을 떠났다. 이후 고인은 망월동 5.18 묘지에 안치됐고, 사망 14년이 지난 2001년이 되어서야 권위주의 정권에 항거하다 숨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결정돼 정부에 의해 공식적으로 명예를 회복했다./사진-우성훈 기자, 자료사진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한국의 전통사찰더보기
 박정기의 공연산책더보기
 조선왕릉 이어보기더보기
 한국의 서원더보기
 전시더보기
 한국의 향교더보기
 궁궐이야기더보기
 문화재단소식더보기
리스트페이지_004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