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준 기자] 남한산성 연무관은 수어청 중앙군들의 훈련을 관장하던 군사 지휘소로, 2021년 12월 27일 보물로 지정됐다.
남한산성 연무관은 수어청 중앙군들의 훈련을 관장하던 군사 지휘소로, 1624년(인조 2) 남한산성을 개축할 때 함께 건립됐다. 건립 당시 조선의 상황은 후금의 군사적 압박, 이괄의 난 등으로 국내외적으로 불안한 상태였다. 이에 조정은 왕실의 보전과 한성의 수비를 위한 보장처(保障處: 전쟁 시 임금과 조정이 대피하는 장소)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방어요새로 적합한 남한선성을 보장처로 삼았다.
1624년(인조 2) 남한산성을 정비하고, 조선 왕실의 보장처로 갖춰야 할 여러 행정, 군사 시설을 설치하면서 군사시설인 연무관도 함께 설치했다. 처음 건립 당시에는 연무관(演武館), 학무당(學武堂), 연무당(鍊武堂)으로 불리다가, 1663년 개수하면서 연병관(鍊兵館)으로 변경됐다. 1779년에는 수어영(守禦營)으로 확장되어 부르다 1795년부터는 본래의 명칭인 연무관(演武館)으로 바뀌었다.
연무관은 군사들의 훈련을 관장할 뿐만 아니라 무기 시연과 같은 군사 행사가 치루기도 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왕이 연무관에 들러 군사훈련을 보거나 시험을 보는 등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연무관의 규모는 전면 5칸, 측면 4칸으로 건물의 후면 1칸에는 전퇴(前退)를 두었다. 일정한 길이로 가공한 장대석을 쌓아 기단을 만들었고, 기단의 중앙에는 1개의 계단을 배치했다. 주춧돌은 기둥을 받치고 있는 주춧돌 32개와 기둥을 받치고 있지 않는 주춧돌은 3개로 총 35개이고, 전면과 측면에는 팔각뿔 모양의 주춧돌이 사용됐고, 뒷면과 건물의 내부에는 자연석 주춧돌이 사용되었다.
기둥은 모두 민흘림 원기둥이 사용됐고, 기둥에 구멍 등의 흔적이 있어 이전에는 벽체 설치되어 있어 내부가 나누어 졌음을 알 수 있다. 가구구조는 2고주 7량가의 전형적인 모습이고 공포는 주심도리 부분에 초익공을 둔 조선후기 익공계 양식이다. 천장은 연등천장으로 되어 있고,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겹처마로 구성했고, 처마 양 끝이 휘어 오르게 설계했다.
남한산성 연무관은 17세기 조선의 국내외적인 불안한 상황에서 이에대한 대응으로 세워진 군사시설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남한산성 내에서 수어장대와 함께 대표적인 군사 건축물로 역사적 가치가 있고, 조선 후기 5군영 중 수도방위체제를 담당했던 수어청의 유일한 건축물로서 희소 가치가 있다./사진-이승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