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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금의 여행이야기 29] 노성산 기슭의 ‘논산 명재고댁’
  • 윤여금 기자
  • 등록 2024-01-18 06:35:39
  • 수정 2024-01-26 05:3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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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금 기자] 논산 명재고댁은 조선시대의 학자인 명재 윤증 선생(1709)에게 지어진 곳이다. 조선중기 호서지방의 대표적인 양반가옥으로 전형적인 상류층의 살림집이다. 사랑채, 앞 축대, 우물, 연못, 나무에서는 정원 조경술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계절의 변화에 따른 일조량 및 바람의 속도 조절하기 위해 저장 공간인 광채와 비껴서 배치한 안채의 구조에서는 지혜를 엿볼 수 있다. 후원의 장독대와 소나무 숲은 실용성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조화를 보여주고 있다. 


                        ▲ 논산 명재고택 (論山 明齋古宅), 충남민속문화재 제190호, 1984년 지정), 

                        충남 논산시 노성면 노성산성길 50 (교촌리)에 소재하고 있다. 


윤증고댁의 그 세부기법은 19세기 중엽의 건축양식을 보이고 있고, 노성산성이 있는 노성산의 산자락에 노성향교와 나란히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노성향교는 이 고댁이 세워진 후부터 위치하고 있다.


조선 숙종 때의 학자인 윤증(1629∼1714)은 본관은 파평윤씨, 호는 명재, 윤증은 조선 인조때의 문신 윤황의 손으로 부친은 ‘윤선거’이고 모친은 공주이씨로서 숙종때 내린 ‘정려’이다. 윤증은 김집, 송시열에게서 수학하였고, 임금이 내리는 벼슬을 18번이나 사양했다하여 ‘백의정승’으로 불린다. 


고댁의 안채는 안주인이 생활하는 사적인 공간이기 때문에 외부로부터 보호 받고 살림하기 편하도록 ‘ㅡ’ 자형 대문에서 안채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게 내외벽을 두었고, 중문간채는 안채가 바로 보이지 않도록 1칸 돌아 들어가게 중문을 내었다. 중문을 들어서면 'ㄷ'자 모양의 안채가 자리잡고 있다. 중문간채와 함께 튼 사랑채까지 포함된 구조는 ‘ㅁ’ 자형의 모양을 이루고 있는 건물이다. 안채는 아녀자들의 공간으로 정갈하고 따뜻함을 선사한다. 


       ▲ 논산 명재고택 (論山 明齋古宅) 안채/사진=문화재청


안채는 중앙에 정면 5칸, 측면 2칸 대청이 있고 대청뒤 좌우에 1칸 규모의 고방이 있고 고방의 전면에 쌍여닫이 띠살문을 두었고 동쪽의 고방은 대청에서 나올 수 있도록 외여닫이 문이 설치되어 있다. 대청의 서측에는 대청쪽으로 3분합의 들어 열 개문으로 되어있는 안방이 있고, 서측에는 찬마루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2칸의 툇마루가 있고 그리고 동측에는 부엌까지 연장된 2칸의 툇마루가 있다. 안방북쪽으로는 4분합 문으로 연결된 웃방이 있다. 


고방을 서쪽으로 그리고 광은 툇마루에 닿아 있으며 안방과 서측 툇마루 사이에 4칸 넓이의 부엌이 넓게 설치되어 있다. 부엌 위에는 다락이, 건넌방은 안방의 반대편에 위치하고 있는데 2칸 통간의 형식이며, 북편에 웃방을 두고 있다. 안채 뒤에는 완만한 경사지를 이용해 독특하게 뒤뜰을 가꾸어 우리나라의 살림집의 아름다운 공간구조를 보인다. 


         ▲ 논산 명재고택 (論山 明齋古宅,) 사랑채


          ▲ 논산 명재고택 (論山 明齋古宅), 사랑채


         ▲ 논산 명재고택 (論山 明齋古宅), 사랑채


         ▲ 논산 명재고택 (論山 明齋古宅) 사랑채


            ▲ 논산 명재고택 (論山 明齋古宅) 사랑채


            ▲ 논산 명재고택 (論山 明齋古宅), 사랑채


사랑채는 높은 기단 위에 앞면 4칸.옆면 2칸 규모이고 사랑채의 큰 사랑방은 사랑채의 중간 어간에 2칸 통간식으로 있는데, 동쪽에 사랑대청을 두고, 남쪽에 2칸 툇마루, 북쪽에 작은 골방, 서쪽에 툇마루를 두고 있는 형식이다. 사랑대청의 남편은 안채의 폐쇄공간과 달리 옥외 공간과 연결되어 있다. 이 고댁은 구조적인 면에서 안채와 사랑채가 거의 같은 양식으로 되어 있기도하다.


        ▲ 논산 명재고택 (論山 明齋古宅), 사랑채


이 고댁 건축의 백미인 이은시사라는 누마루가 있고, 날렵한 첨 끝에 덧댄기와는 빗물이 들이쳐 목재가 빨리상하는 것을 방지한 것이다. 사랑채는 바깥주인이 전면의 농토와 정원을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자리한 공적이고 개방된 공간이다. 


누마루는 일반 방보다 높게 만들면서 내려다 보이는 전망이 잘 보일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 사랑채의 큰방과 작은방으로 연결되는 미닫이와 여닫이를 겸한 방문


         ▲ 사랑채의 큰방과 작은방으로 연결되는 미닫이와 여닫이를 겸한 방문


           ▲ 사랑채의 큰방과 작은방으로 연결되는 미닫이와 여닫이를 겸한 방문


사랑채의 큰방과 작은방으로 연결되는 미닫이와 여닫이를 겸한 방문은 다른 한옥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창성이 뛰어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고, 단아하면서도 편안한 느낌을 준다.


          ▲ 사랑채의 온돌방 아궁이


            ▲ 사랑채의 아이(손자)방의 창문


아이방의 창문은 아이의 손이 안 닿을 정도로 높게 만들어 안전하고 보호되도록 하는 형태의 구조이다.


           ▲ 문의 머름의 높이를 형성해놓았다.


우리나라 옛 집은 구들장 형태를 갖고 있어 난방상태의 따뜻한 온도가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상태이므로 문틈 사이의 공간를 ‘머름’형태로 해놓았다. 머름의 중요성은 따뜻한 열기를 밖으로 새어나가지 못하게 하는 역할의 높이가 형성되어 있다.   


           ▲ 사랑채의 신발돌


        ▲ 사랑채의 신발돌


마루에서 살펴보면 신발돌이 3개가 놓여있는데 큰 신발돌이 2개 놓여져있고 작은 신발돌이 1개 놓여져있다. 작은 돌은 마님이 사용하는 전용공간으로 이돌 위에 마님의 신발이 있으면 이분이 있다는 알림이며, 신발이 없으면 출타 중이다라는 내.외적으로 알릴 수 있는 효과가 있다.


         ▲  사랑채의 판문


민가에서의 판문은 ‘종이’로 되어있지 않으므로 눈보라와 비바람을 막아주는 역할은 한다. 


           ▲ 사랑채 앞의 석가산 


석가산은 사랑채 앞의 돌석축 위에 자연석으로 꾸며 놓은 산이다. 집 앞에 작지만 자연을 옮겨놓은 조형물로 작고 아담하지만 선비의 고고한 인격과 풍류를 느끼게하는 공간이다. 


        ▲ 사랑채 앞의 오래된 우물


옛부터 우물가에 향나무를 심어 물을 정화했다. 고댁의 장맛의 한 부분은 물맛때문이기도하다. 이 우물은 일반적인 평지가 아니라 우물가 주변을 사각형으로 파내고 높이와 폭도 여러명이 있어도 보이지않는 공간을 형성하며 향나무가 심어져 있다. 향나무는 일반적으로 위로 자라나는데, 좌우로 옆으로 자라나 용처럼 자라게 해놓았다. 이곳은 유교적 사상의 법도를 지키면서 노동력의 거리 즉 물을 이고 가는 이동거리를 줄인 것이다. 


        ▲ 논산 명재고댁의 넒은 마당


명재 고댁은 솟을대문도 높은 담장도 없다. 누구나 쉽게 넓은 마당을 가로질러 곧장 사랑채로 들어갈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집의 구조가 열린 형태이기 때문이다. 현재도 그 점은 변함이 없으며 한옥을 체험하고 싶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 논산 명재고댁의 연못


        ▲ 논산 명재고댁의 연못


집 앞에는 넓은 바깥마당이 있고 그 앞에 전형적인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났다’는 우주관을 갖는 이 곳의 연지는 인공연못으로 가운데에 원형의 섬을 만들어 정원을 꾸몄다.


         ▲ 논산 명재고댁의 배롱나무


연못에는 고댁만큼 오래된 멋진 배롱나무가 자리해 있다.  배롱나무는 스스로 껍질을 벗는 특징을 갖고 있다.


       ▲ 논산 명재고댁의 사당 


사당은 고댁의 동북쪽에 위치해 있다. 담장밖로는 400년은 족히 된 느티나무가 수호신처럼 집을 지키고 있다. 


         ▲  논산 명재고댁의 느티나무, 수령 400년( 2005년 보호수 지정)


        ▲ 논산 명재고댁의 장독대


300년 전해오는 교동간장, 된장의 깊은 맛을 품고 있는 장독에는 장이 들어 있다. 본래는 안채 안에 있었으나 지금은 많은 장독이 이곳에 자리해 있다. 


논산 명재고댁 관계자는 “이 고댁의 맛있는 장맛을 유지하는 것 중의 한가지는 묵은장을 다 먹고 새장을 담그는 것이 아니라 묵은장이 남은 상태에서 새장을 묵은장 위에 올려놓는 상태를 취하고 있다. 고로 옛것과 새것이 함께 숙성되는 그런 상태를 유지하면서 맛을 항상 동일하게 한다”고 전했다.


모든 건축부재의 마감이 치밀하면서 구조가 간결하고 보존상태도 양호한 조선의 양반주택으로 중요하다.


지정 당시 명칭은 '윤증선생고택(尹拯先生故宅)'이었으나, 조선 숙종 때의 이름난 유학자 명재 윤증(1629-1711)이 지었다고 전하는 가옥인 점을 반영하여 그의 호를 따라 ‘논산 명재 고택’으로 지정명칭을 변경(2007.1.29)하였다.


#참고문헌

박우식  외 '충청지방의 이조상류고댁' 백제연구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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