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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유형문화재 8] 청룡사 유형문화재 모음
  • 박광준 기자
  • 등록 2023-10-03 13:41:40
  • 수정 2023-10-12 14:4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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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호 청룡사 지장시왕도-202호 청룡사 칠성도-203호 청룡사 현왕도-204호 청룡사 감로도-205호 청룡사 가사도-206호 청룡사 신중도-207호 청룡사 석 삼불상(서울 靑龍寺 石 三佛像)

[박광준 기자] 이번호에서는 청룡사의 서울시 유형문화재 201호 청룡사 지장시왕도 (靑龍寺 地藏十王圖), 202호 청룡사 칠성도 (靑龍寺 七星圖), 203호 청룡사 현왕도(서울 靑龍寺 現王圖), 204호 청룡사 감로도(서울 靑龍寺 甘露圖), 205호 청룡사 가사도(서울 靑龍寺 袈裟圖), 206호 청룡사 신중도(서울 靑龍寺 神衆圖), 끝으로 207호 청룡사 석 삼불상(서울 靑龍寺 石 三佛像)을 정리해본다. 


[박광준 기자] 이번호에서는 청룡사의 서울시 유형문화재 201호 청룡사 지장시왕도 (靑龍寺 地藏十王圖), 202호 청룡사 칠성도 (靑龍寺 七星圖), 203호 청룡사 현왕도(서울 靑龍寺 現王圖), 204호 청룡사 감로도(서울 靑龍寺 甘露圖), 205호 청룡사 가사도(서울 靑龍寺 袈裟圖), 206호 청룡사 신중도(서울 靑龍寺 神衆圖), 끝으로 207호 청룡사 석 삼불상(서울 靑龍寺 石 三佛像)을 정리해본다. 


# 청룡사 지장시왕도 (靑龍寺 地藏十王圖)'/서울시 유형문화재 201호


청룡사 지장시왕도 (靑龍寺 地藏十王圖)'/서울시 유형문화재 201호/사진-문화재청청룡사 지장시왕도는 1868년 정기비구니(正基比丘尼)의 발원으로 현왕도, 칠성도 등과 함께 조성돼 극락전에 봉안됐다고 전해지는 것으로, 금어 응륜(金魚 應嗧)에 의해 제작됐다 .이 작품은 화면의 중앙, 커다란 반원형의 광배 안에 지장보살과 무독귀왕, 도명존자 등 지장보살삼존을 배치하고 그 좌우로 시왕, 그리고 지장삼존의 아래쪽에 사자, 판관 등을 배치한 특이한 구도를 보여준다. 또한 1867년에 경선이 조성한 서울 보문사 지장시왕도와 동일한 초본을 이용해 제작한 것으로, 광배의 내부를 금색으로 칠한 점을 비롯해 인물의 상호에 보이는 적극적인 음영법 등 19세기 말~20세기 전반에 서울.경기 지역을 중심으로 유행하던 불화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다. 서울 지역 불화유파의 사승관계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작품이다.


# 청룡사 칠성도 (靑龍寺 七星圖)/서울시 유형문화재 202호


청룡사 칠성도 (靑龍寺 七星圖)/서울시 유형문화재 202호/사진-문화재청청룡사 칠성도는 1868년 명조(月照)를 증명(證明), 보관(普寬)을 송주로 해 응륜(應崙), 창엽(瑲燁), 승의(勝宜) 등이 그린 것으로, 치성광여래삼존(熾盛光如來三尊)을 중심으로 칠성여래(七星如來), 칠원성군(七元星君), 삼태육성(三台六星), 동녀(童女), 천녀(天女) 등을 묘사했다. 즉 치성광여래 아래에는 일광보살(日光菩薩)과 월광보살(月光菩薩) 및 칠원성군(七元星君)이 시립하고 있으며, 본존의 좌우로는 칠성여래가 치성광여래를 향해 합장하고 서있다. 그리고 그 위로는 좌우에 6위의 쌍계동자(雙髻童子)와 천녀 2인이 합장한 모습으로 묘사됐고, 화면의 최상단 좌우에는 원형 광배 안에 삼태육성이 각각 3위씩 그려져 있다.


조선 후기의 칠성도에서 치성광여래는 대부분 우거를 타지 않고 수미단 위에 결가부좌한 모습으로 표현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칠성도는 19세기 후반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조성된 칠성도와 같이 백우거(白牛車)가 묘사되고 있어 19세기 말 서울.경기 지역 칠성도의 특징적인 도상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 청룡사 현왕도(現王圖)/서울시 유형문화재 203호


청룡사 현왕도(現王圖)/서울시 유형문화재 203호/사진-문화재청청룡사 현왕도(現王圖)는 1868년 지장시왕도, 칠성도와 함께 조성, 극락전에 봉안됐던 불화로서 현재는 청룡사 대웅전 향좌측 측벽에 봉안돼 있다. 칠성도를 그린 응륜(應崙)과 승의(勝宜)및 가사탱(袈裟幀)을 그린 명응윤감(明應允鑑)이 함께 조성했는데, 현왕(現王)과 권속들이 망자를 심판하는 광경을 간단하게 묘사했다.


이 작품은 비교적 작은 화면에 인물들을 크게 표현해 화면이 꽉 찬 느낌을 준다. 채색은 녹색과 적색이 주조를 이루고 있으나 그중에서도 적색을 위주로 사용하는 등 19세기 후반 불화의 채색을 잘 따르고 있으며, 책상의 윗면을 목리문(木理文)으로 처리한 기법이라든지 병풍 속의 수묵산수 등 일반회화적인 요소를 엿볼 수 있다. 유려한 필선에 세밀한 필치가 돋보이고, 현왕이 앉아있는 의자의 화려한 장식이 돋보인다.


현재 전국적으로 현왕도는 많이 남아있지만 서울 지역에서는 그 유례가 드물다. 또한 청룡사 현왕도는 책상의 윗면을 목리문(木理文)으로 처리한 기법이라든지 병풍 속의 수묵산수 등 일반회화적인 요소를 엿볼 수 있고, 유려한 필선에 세밀한 필치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주목된다.


# 청룡사 감로도/서울시 유형문화재 204호


청룡사 감로도/서울시 유형문화재 204호/사진-문화재청서울특별시 청룡사 감로도는 19세기 중엽 이후 서울.경기 지역에서 유행한 감로왕도의 전형적인 도상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당시의 재의식과 생활상을 충실히 묘사했다. 상단에는 7여래가 합장을 한 채 나란히 서 있고, 좌측에는 아미타삼존 일행이 구름을 타고 내영(來迎)하는 모습과 왕후장상, 선왕선후, 북채를 든 뇌신, 우측에는 지장삼존(지장보살.도명존자.무독귀왕)과 인로왕보살이 내영하는 모습이 묘사돼 있다.


이 감로도는 1898년 경선 응석(慶船 應釋)을 증명(證明)으로 해 화사 종운(宗運)이 그린 것으로 전해지는 수락산 감로도(1868년)를 비롯해 경국사 감로도(1887년), 불암사 감로도(1890년), 봉은사 감로도(1892년), 보광사 감로도(1898년) 등과 함께 19세기 후반 이후 서울.경기 지역에서 유행한 감로도의 도상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조성 당시 불교의 재의식 장면을 비롯해 서민들의 생활상 등이 잘 표현돼 있다. 


# 청룡사 가사도/서울시 유형문화재 205호


청룡사 가사도/서울시 유형문화재 205호/사진-문화재청청룡사 가사도는 1902년에 조성된 가사탱(袈裟幀)으로 수가사(繡袈裟) 형태를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화면은 붉은 바탕 위에 세로로 27칸의 복전문(福田文)을 그리고, 좌우 2칸을 제외한 25칸에는 각 칸마다 위부터 4줄까지는 불(佛), 보살상, 그 다음 2줄은 호화로운 책갑(冊匣)에 들어있는 각종 불경, 맨 아랫줄에는 비구상(比丘像)을 그려 넣어 불상 50구, 보살 50구, 비구상 25구 등 총 125구에 달하는 많은 존상을 묘사했다.


이러한 가사탱은 조선 말기 왕실에서 유행하던 장식화인 책거리병풍 형식을 따른 것으로 현재 유례가 매우 드물다. 붉은 가사의 각 조선(條線) 가장자리를 따라 마치 바느질을 한 것처럼 세밀하게 바느질 자국을 표현한 점 등 가사의 형태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점이 돋보인다.


1902년에 조성된 가사탱(袈裟幀)으로 원래는 양주 수락산 학림암(鶴林庵)에 봉안됐다가 청룡사로 이관, 봉안됐다. 고종황제와 순종황제 내외 및 영친왕과 엄비 등 황실의 안녕과 성수만세를 기원하면서 양주 수락산 학림암에 봉안됐다고한 것으로 보아 황실의 발원에 의해 조성된 불화로 추정되고, 한봉(漢峰) 응작(應作)를 비롯해 명응 윤감(明應 允鑑), 계사 봉법(啓思 奉法), 보산 복주(寳山 福住), 금운 정기 (錦雲 正基), 예운 상규(禮雲 尙奎), 재겸(在謙) 등으로 서울,경기 지역의 대표적인 화승들이 대거 참여했다. 조선왕실에서 유행하던 가사도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호암미술관 소장 가사도 및 선암사 가사도를 제외하고는 유례가 드물다.


# 청룡사 신중도/서울시 유형문화재 206호


청룡사 신중도/서울시 유형문화재 206호/사진-문화재청청룡사 신중도는 금어 금곡당 영환(金魚 金谷堂 永煥)을 비롯해 응륜(應崙), 응훈 (應訓)이 조성했고, 1902년에 청룡사 가사도를 그린 명응 윤감(明應 允鑑)이 시주로 참여하기도 했다. 상단에는 범천과 위태천, 하단에는 위태천을 중심으로 묘사하는 형식은 신중도 형식 중 가장 애용됐던 것으로 현존하는 신중도 가운데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청룡사 신중도에서 보듯이 뒤에 배경으로 병풍을 두르고 범천과 제석천이 직사각형에 가까운 신광을 두른 도상은 특히 19세기 후반 서울, 경기 지역의 신중도에 나타나는 특징 가운데 하나로, 봉은사 신중도(1844년), 사자암 신중도(1880년)에서도 볼 수 있다. 19세기 후반 서울지역 불화의 도상 및 양식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 청룡사 석 삼불상(서울 靑龍寺 石 三佛像)/서울시 유형문화재 207호


청룡사 석 삼불상(서울 靑龍寺 石 三佛像)/서울시 유형문화재 207호/사진-박광준 기자청룡사 불상은 현재 서울 청룡사 주지실에 보관 중인 석조삼존불로서, 최근 향좌측 불상 대좌 아래에서 발견된 조성발원기에 의해 1902년(광무 6)에 개금, 도분(塗粉)해 삼각산 청룡사 대웅전에 봉안한 것으로 밝혀졌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강원도 철원 심원사에서 모셔온 것이라 전하는데, 불상의 크기와 재질(불석), 양식 등으로 볼 때 천불상 중의 일부분으로 보이고, 수인과 착의법에서 약간의 차이를 제외하고는 크기와 형식, 양식 등이 동일하여 함께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적으로 신체에 비해 얼굴이 큰 편이지만 삼각형을 이루는 안정감 있는 자세와 조형성에서 조선 후기 불상의 특징을 보여준다. 향좌측상에서 발견된 발원기에 의하면 1902년에 새로 개금을 하고 도분(塗粉)했고 조선 말기 경기도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화승인 한봉 창엽(漢峰 瑲曄)이 금어로 참여한 것으로 볼 때 이 불상의 조성연대는 1902년 이전인 19세기 후반경으로 추정된다.


이 3구의 석불상은 천불상 중의 일부로 조선 말기 불상의 전형적인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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