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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유형문화재 7] 단종의 비(妃) 정순왕후(定順王后) 송씨가 단종의 명복을 빌면서 살던 곳
  • 박광준 기자
  • 등록 2023-10-03 11:37:30
  • 수정 2023-10-12 14:4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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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호 정업원 터


[박광준 기자] 정업원 터(淨業院 터)는 조선 제6대 단종의 비(妃) 정순왕후(定順王后) 송씨가 단종의 명복을 빌면서 살던 곳으로, 서울특별시 종로구 숭인동에 있다. 1972년 5월 25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됐다.


단종의 왕비인 정순왕후 송씨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비이다. 조선 영조 47년(1771)에 세운 비로, 비문 일부와 비각 현판의 글은 왕이 손수 쓴 것이다.



송씨는 단종이 영월에서 죽음을 당하자, 정업원에 머물면서 평생 동안 그의 명복을 빌었다. 정업원은 여승방(女僧房)으로 원래 창덕궁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도성 안에 있는데, 성 밖에 있었다는 전설에 따라 이곳에 비를 세우고 비각도 짓게 됐다. 이는 정순왕후 송씨가 동대문 밖인 이곳에서 지냈던 사실과 정업원의 주지로 있었던 일이 얽혀서 잘못 전해온 것으로 보인다.



종전 문화재 지정명칭은 정업원구기(淨業院舊基)이었으나, 조선 세조에 의해 단종이 영월로 유배되자 그의 비(妃)인 정순왕후가 단종을 그리워하면서 생을 마쳤다고 전해지는 정업원(淨業院)의 터와 그 터 위에 영조가 친필로 정업원 터임을 확인하고 '정업원구기(淨業院舊基)'라고 친필로 써 세운 비를 2008년에 문화재로 확정하고, 지정명칭 변경기준에 따라 정업원 터로 한글화해 문화재 명칭이 변경됐다.


정업원은 조선시대 단종의 왕비인 정순왕후(定順王后) 송씨(宋氏)가 머물던 승방으로, 서울 도성의 좌청룡에 해당하는 낙산의 한 지봉인 동망봉(東望峰)에 위치한 청룡사(靑龍寺)의 전신이다.



조선 건국 후 이제현(李齊賢)의 딸이자 공민왕비인 혜비(惠妃)가 망국의 슬픔을 안고 이 절에 있었고, 1차 왕자의 난 뒤에 세자 방석의 누나인 경순공주가 머무르기도 했던 곳이다.


세조 때에는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등돼 영월로 유배를 떠날 때 이 절의 우화루(雨花樓)에서 애끊는 이별을 했다. 그 뒤 송씨는 여승이 되어 이곳에서 가까운 동망봉에 초가 암자를 마련하고 조석으로 영월쪽을 바라보고 단종을 추모하면서 여생을 보냈다.



그러나 실제로 정순왕후가 살아 있을 때 정업원은 창덕궁에서 멀지 않은 성안에 있었고, 후세에 와서 정업원이 성안이 아니라 동대문 밖에 있었다는 민간의 구전을 따라 영조가 현 위치에 비를 세웠다.


또한 정순왕후가 매일 오르던 산봉우리에는 ‘東望峯(동망봉)’이란 세 글자를 암각으로 새겨 당시의 사실을 기렸다. 그러나 근래에 채석장이 되어 흔적이 없어지고 비각과 비석만이 청룡사에서 관리하고 있다.


사진출처/문화재청 

비의 총 높이는 218㎝, 비신 높이 124㎝, 너비 57㎝, 두께 29㎝인데, 방형의 받침돌과 옥개형의 머릿돌 재료는 화강암이고, 몸돌은 오석(烏石)으로 되어 있다.


비문은 음양 모두 영조의 친필로 앞면에는 ‘淨業院舊基(정업원구기)’, 뒷면에는 ‘皇朝正德十六年 辛巳六月初四日後二百五十一年 辛卯九月初六日立 前後皆親書(황조정덕16년 신사6월초4일후251년 신묘9월초6일입 전후개친서)’라고 새겨져 있다.


또한 정면 1칸, 측면 1칸의 비각 정면에는 “前峯後巖於千萬年 歲辛卯九月六日欽涕書(전봉후암어천만년 세신묘구월육일흠체서)”라고 새긴 현판을 달았다. 비각은 무익공계 양식으로 팔작지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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