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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층 할퀴고 긁어서 성스러운 빛을 그리다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2-01-10 21: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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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곽수영 개인전 '심상의 빛'...이달 16일까지 가나아트센터

[이승준 기자] 상처를 입을수록 완성되는 것이 있다. 대개 그런 것은 성스럽다.


곽수영 작가의 '성당 시리즈' 작품은 캔버스에 덧입힌 물감을 할퀴고 긁고 벗기면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선이 드러나고 형태가 노출되면 그림의 문 앞에 서 있던 관객은 나가지도 들어가지도 못한 채 꼼짝없이 갇혀버린다.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심상의 빛: The Light of Imagery'는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는 곽수영 작가의 개인전이다. 여러 층의 물감을 철필로 벗겨낸 그림을 모았다.


전시장 문을 열고 들어서면 순식간에 압도당하고 마는 관객 자신의 내면을 마주할 수 있다. 2020년작 '움직이지 않는 여행 20-XXV'는 붉은 주홍빛으로 꽉 채워진 성당 내부를 그린 회화다. 100호 크기의 그림 속 우측 하단 소실점이 뻗는 지점에는, 너무 밝아 형상마저 지워진 제단이 놓여 있다. 그곳으로 향하는 양측 아치형 문의 반복된 이미지는 어떤 초월을 경험하게 한다.


2020년작 `움직이지 않는 여행 20-XXV`(130.3×162㎝)./사진 제공 = 가나아트센터권위적이지 않은 평온한 위력의 작품이 여러 점 걸려 있다. 2019년작 '여행 19-Ⅸ' 작품은 전작의 붉은빛과 달리 푸른색 계열이다. 구도와 형태는 동일하지만 제단의 흰빛은 환몽의 시간으로 관객을 이끈다. 작품에 다가가 근거리에서 살피면 피부에 지속적으로 채찍질을 가한 종교적 고행(asceticism)의 흔적마저 어른거린다.


2021년작 '움직이지 않는 여행 21-X'도 시선을 끈다. 다른 작품과 달리 소실점은 캔버스 중앙으로 뻗는다. 좌우 2m에 달하는 너비까지도 계산된 듯 압도적이다. 시간을 지우고 중세 유럽의 한 성당에 들어선 듯한 느낌을 준다.


프랑스 평론가 피에르 데카르그는 "부스러기와 가루들, 미세한 물감덩이들, 그리고 실낱같은 선들이 서로 뒤엉켜 있을 뿐 그나마 그런 뒤엉킴조차 명확하게 드러나 있지 않다"면서, "그의 작품 형태들은 비물질적인 몽환의 상태에 놓여 있다"고 곽 작가 작품세계를 평가하면서 그의 선을 '명멸(明滅)하는 심상'으로 은유했다.


한편, 재불 한인 작가인 곽수영은 1954년 대구 출생으로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한 뒤 1980년대 중반 파리로 건너가 소르본8대학에서 조형미술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주로 프랑스에 거주하면서 주프랑스문화원 선정 '올해의 한국 작가'로 선정되는 등 한국 회화가 프랑스에 뿌리내리는 데 이바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곽 작가는 2018년 장흥 가나아틀리에 입주 작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전시는 이달 1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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