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준 기자] 강원도 춘천 봉의산 북 사면 자락에 있는 소양정이다. 홍수와 전란 그리고 최근에는 6,25 동란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소실되는 곡절을 겪었다. 강원도 문화재 자료 1호로 지정돼있다.
춘천 봉의산 북 사면 자락에 있는 소양정에서 굽어본 의암호 전경이다. 의암호는 구한말 의병을 일으켰던 의암 유인석을 기리기 위해 지은 이름이다. 호수 가운데 물고기 조형물과 함께 소양강 처녀상이 있다.
춘천 봉의산 북 사면 자락 소양정 가까이 자리잡은 '춘기계심 순절지분(春妓桂心 殉節之墳)비이다. 춘천 부사 김처인의 소실이었지만 여러 곡절로 자결했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김처인 부사가 장례를 치뤄주었고 정조21년에 비가 세워졌다.
관찰사, 부사와 같은 고을 수령의 선정과 공덕을 기리는 비석군이다. 춘천 고을 곳곳에 흩어져 있던 것을 1983년 봉의산 자락 북 사면 자락 아래 한 데 모은 것이다. 관찰사(도지사)와 부사(시장)그리고 군수비등 모두 26기의 비석이 있다.
# 소양정에서 옛일을 회상하다[昭陽亭懷古]
정약용이 1820년 춘천 소양정에서 상고사에 관한 주장을 토로한 시로, '천우기행' 제3제이다.
번역
소양정에서 옛일을 회상하다
어부가 도원(桃源) 찾아 별천지로 들어가니
붉은 누각이 만정봉2) 앞에 솟아 있다.
궁준과 유무3) 점령한 일 자취도 없고
진한과 맥국4) 싸우던 일 가련할 뿐이네.
우수주 옛 밭에는 봄풀이 멀리까지 뻗고
인제에서 흘러오는 물에 낙화가 어여쁘다.
현판 시를 비단보로 싸든 소매로 털든5) 무슨 소용 있나
모래톱 버들에 석양 비칠 때 홀로 닻줄 푸노라.
【조위(曹魏) 정시 연간에 낙랑 태수 유무(劉茂)와 대방 태수 궁준(弓遵)이 바다를 건너 다스려, 북으로 고구려를 차지하고 남으로 진한을 공격하여 진한 여덟 나라를 취하였다. 이때 낙랑이 근거로 삼은 곳이 실은 춘천이다.】
원문
昭陽亭懷古(소양정회고)
漁子尋源入洞天, 朱樓飛出幔亭前。
(어자심원입동천, 주루비출만정전.)
弓劉割據渾無跡, 韓貊交爭竟可憐。
(궁유할거혼무적, 한맥교쟁경가련.)
牛首古田春草遠, 麟蹏流水落花妍。
(우수고전춘초원, 인제유수낙화연.)
紗籠袖拂嗟何補?汀柳斜陽獨解船。
(사롱수불차하보?정류사양독해선.)
【曹魏正始年中, 樂浪太守劉茂, 帶方太守弓遵, 越海來領, 北拒句麗, 南攻辰韓, 取辰韓八國, 此時樂浪所據, 實在春川。】
해설
정약용은 1820년(순조 20) 3월 24일부터 3월 29일까지 춘천 일대를 여행하고 돌아왔다. 이 시는 소양정에 이르러 상고사에 관한 자신의 주장을 나타낸 시로, 《천우기행(穿牛紀行)》 제3제이다. 정약용은 춘천의 봉의산을 중국 무이산에 있는 만정봉에 비유해서, 상고시대의 치열한 전장(戰場)이 이제는 무이산 신선들의 세계처럼 낭만적인 공간으로 바뀌었다고 노래하였다.
소양로 마애비군은 강원도 춘천시 소양로1가에 있다. 2017년 9월 1일 춘천시의 향토문화유산 제2017-2호로 지정됐다.
소양로 마애비군은 소양로1가 1-32번지 일원의 사면 암벽에 양각해 놓은 형태의 마애비 4기로, 마애비(磨崖碑)는 석벽에 글자나 그림을 새겨 넣은 비석을 말한다. 2기는 비문이 남아 있어 판독이 가능하나, 2기는 마모가 심해 주인공을 파악할 수 없다. 판독이 불가능한 마애비 2기는 옛 소양정 터 추정지역 바로 밑 암벽에 새겨져 있고, 가첨석이 있는 비석의 양식을 하고 있다. 판독이 가능한 마애비 2기는 앞의 마애비에서 소양1교 쪽으로 약 10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고, 관찰사 이시수와 부사 김낙수에 대한 영세불망비이다. 선정비가 마애비의 형태인 것은 강원도에서도 그 사례가 많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