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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상한 얼굴과치맛자락-바람에 휘날리는 옷고름...'소양강처녀' 만나다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1-09-15 23:32:41
  • 수정 2021-09-15 23:4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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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데크 위에 선 소양강 처녀상/사진-이승준 기자[이승준 기자] 1970년 10월 오아시스레코드에서 발매한 김태희(본명 박영옥)의 대표곡 '소양강 처녀'를 수록된 컴필레이션 음반으로,  김태희, 나훈아 등 여러 가수들의 노래 총 10곡을 수록했다. 


타이틀곡 '소양강 처녀'는 소양강댐 공사가 한참 진행 중이던 1969년 반야월이 작사했다. 당시 반야월은 해질녘 소양강의 아름다운 풍경에 떠나간 임을 그리는 소양강 처녀의 애절한 마음을 녹여 노랫말에 담았다. 이후 이호가 멜로디를 붙이고, 1970년 작곡가 박시춘의 조카인 신인 가수 김태희가 처음 불러 음반으로 발매했다. 


사실 '소양강 처녀'는 이 앨범보다 2개월 앞선 8월 오아시스레코드와 제휴 관계에 있었던 성음에서 먼저 발매했다. 초반에는 김태희의 사진으로 재킷을 장식했지만, 발매 후 노래의 반응이 심상치 않자 당대의 인기가수 나훈아와 함께한 사진으로 교체해 재반을 제작했다.


소양강 처녀/밤차로 떠난 사람 앨범 

2달 만에 다시 제작한 앨범에는 초반에는 없었던 '오아시스가 낳은 신인 가수 김태희 노래'라는 화려한 수식어를 추가해 앨범의 상업성을 높였다. 애절한 내용을 담았지만 빠른 템포의 멜로디를 지닌 이 노래는 발매되자마자 반응이 왔다. 


신인 가수 김태희는 MBC '백화스테이지' 등 지상파 TV에 매일같이 출연했다. 또한 당대 인기가수들만 출연했던 국책 영화 '팔도강산'시리즈에서 '소양강 처녀'를 불러, 이 곡은 국민 애창곡으로 떠올랐다. 이 앨범은 당시 10만 장이 넘는 엄청난 판매 기록을 세웠다.


소양강 처녀상/사진-이승준 기자

김태희는 '소양강 처녀'로 반짝 스타덤에 올랐지만 후속작을 이어가진 못했다. 왕년의 유행가로만 기억되던 '소양강 처녀'는 세월이 한참 지난 1991년 MBC의 한 선호도 조사에서 애주가의 애창곡 2위에 선정되면서 부활의 조짐을 보였다.


노래방 붐을 타고 '소양강 처녀'가 최고의 애창곡으로 부각되면서 평범한 주부로 살아가던 김태희는 오랜만에 지상파 TV에 컴백해 신보 CD까지 발매했다.


'소양강 처녀'는 나훈아, 하춘화, 조미미, 김부자, 현철, 문희옥, 최진희, 심수봉, 신신애 등 이루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했고, 이어 1992년에는 한서경이 랩 댄스 스타일로 리메이크해 젊은 세대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소양강 처녀’ 노래비/사진-이승준 기자

한편, 수상 데크 위에 선 소양강 처녀상은 높이 7m에 이르고, 2005년 춘천시민의날을 기념해 세웠다. ‘소양강 처녀’ 노랫말이 새겨진 받침돌 위에 소양강 처녀상이 있다. 곱상한 얼굴에 치맛자락과 갈대를 살포시 붙잡은 손, 바람에 휘날리는 옷고름이 눈에 띈다.


‘소양강 처녀’는 ‘울고 넘는 박달재’ ‘단장의 미아리고개’ 노랫말을 쓴 반야월의 작품으로, 이 노래 주인공은 춘천 출신 윤기순 씨로 알려져 있다. 소양강 뱃사공의 딸인 윤씨는 열여덟 살 되던 1968년 상경해 한국가요예술작가동지회에서 일했다. 어느 날 그녀는 음악가들을 춘천으로 초대했다. 이때 동행한 반야월이 소양강 풍경과 소녀의 모습을 담아 즉흥적으로 노랫말을 썼고, 이호가 곡을 붙여 ‘소양강 처녀’가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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