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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첨성대 (慶州 瞻星臺)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1-08-26 22:33:48
  • 수정 2023-12-21 13:4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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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첨성대/사진-문화재청 

[이승준 기자] 천체의 움직임을 관찰하던 신라시대의 천문관측대로, 받침대 역할을 하는 기단부(基壇部)위에 술병 모양의 원통부(圓筒部)를 올리고 맨 위에 정(井)자형의 정상부(頂上部)를 얹은 모습으로 높이는 약9m이다.


원통부는 부채꼴 모양의 돌로 27단을 쌓아 올렸고, 매끄럽게 잘 다듬어진 외부에 비해 내부는 돌의 뒷뿌리가 삐죽삐죽 나와 벽면이 고르지 않다. 남동쪽으로 난 창을 중심으로 아래쪽은 막돌로 채워져 있고 위쪽은 정상까지 뚫려서 속이 비어 있다. 


경주 첨성대(남쪽 개구부)/사진-문화재청 동쪽 절반이 판돌로 막혀있는 정상부는 정(井)자 모양으로 맞물린 길다란 석재의 끝이 바깥까지 뚫고 나와있다. 이런 모습은 19∼20단, 25∼26단에서도 발견되는데 내부에서 사다리를 걸치기에 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옛 기록에 의하면, “사람이 가운데로 해서 올라가게 되어있다”라고 했다. 바깥쪽에 사다리를 놓고 창을 통해 안으로 들어간 후 사다리를 이용해 꼭대기까지 올라가 하늘을 관찰했던 것으로 보인다. 


경주 첨성대 상부/사진-문화재청 

천문학은 하늘의 움직임에 따라 농사 시기를 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농업과 깊은 관계가 있고, 관측 결과에 따라 국가의 길흉을 점치던 점성술(占星術)이 고대국가에서 중요시됐던 점으로 미뤄 보면 정치와도 관련이 깊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일찍부터 국가의 큰 관심사가 되었으며, 이는 첨성대 건립의 좋은 배경이 됐을 것으로 여겨진다.


신라 선덕여왕(재위 632∼647) 때 건립된 것으로 추측되고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그 가치가 높다. 당시의 높은 과학 수준을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재라 할 수 있다.


경주 첨성대_하단부 (촬영년도 : 2015년)/사진-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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