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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탈출 6] 몸과 마음의 피로를 여행과 함께...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1-08-02 20:54:20
  • 수정 2024-03-23 00: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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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준 기자] 코로나19와 함께 폭염에 지친 몸과 마음의 피로를 여행과 함께 풀어보는 것은 어떨까? 이번에는 전국에 있는 명승들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참고로 '코로나19'로 인해 여행을 계획할 경우 반드시 사전에 확인이 필요하다.<편집자 주> 


# 삼척 죽서루와 오십천(三陟 竹西樓와 五十川)


죽서루/사진-강원도 삼척시 

'삼척 죽서루와 오십천'은 송강 정철(1536~1593)의 '관동별곡'에 소개된 관동팔경 가운데 하나로 삼척시를 가로질러 흐르는 오십천에서 가장 절경지로 알려진 곳으로 죽서루에서 내려다보는 오십천 경관과 강 건너에서 바라보는 죽서루와 절벽부의 경관이 매우 뛰어나다.


죽서루 누각은 창건자와 연대는 미상이나 '동안거사집'에 의하면, 1266년(고려 원종 7년)에 이승휴가 안집사 진자후와 같이 서루에 올라 시를 지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1266년 이전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는 정면 7칸, 북쪽 측면 2칸, 남쪽 측면 3칸의 특이한 형태의 누 건물이다. 현재 보물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오십천 위의 죽서루와 하단 절벽/사진-강원도 삼척시오십천은 삼척시 도계읍 백병산에서 발원해 삼척시를 가로질러 동해로 흘러가는 동해안에서 가장 긴 감입곡류하천으로 오십천 협곡의 암벽들은 중생대 백악기에 생성돼 오랜 기간 하천작용으로 퇴적 변형, 현재의 다양한 석회암지대 지형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오십천이란 이름은 발원지에서부터 동해에 이르기까지 50여번 돌아 흐른다고 해 붙은 것이라 전한다.


죽서루가 위치하는 곳은 오십천의 협곡이 끝나려 하는 부위로 오십천과 주변 협곡, 죽서루 절벽 배후의 카르스트 지형과 길게 늘어진 송림 등이 태백산지와 함께 어우러져 절경을 자아내고 있는 곳이다.


# 구룡령 옛길(九龍嶺 옛길)


구룡령옛길/사진-강원도 양양군 

'구룡령 옛길'은 양양과 홍천을 연결하는 옛길로 산세가 험한 진부령, 미시령, 한계령보다 산세가 평탄해 양양, 고성 지방 사람들이 한양을 갈 때 주로 이 길을 이용했다고 한다.


강원도의 영동과 영서를 잇는 중요한 상품 교역로였고, 양양, 고성 지방 선비들이 과거를 치르러 한양으로 갈 때 명칭에서 유래하듯 용의 영험함을 빗대어 과거 급제를 기원하면서 넘나들던 길이라 한다. 구룡령이라는 이름은 ‘아홉 마리 용이 고개를 넘어가다가 지쳐서 갈천리 마을 약수터에서 목을 축이고 고갯길을 넘어갔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라 전하고 있다.


구룡령옛길/사진-강원도 양양군 

옛길 입구에는 굽이져 흐르는 계곡이 있고, 길의 중간중간에 길의 위치를 표시하는 횟돌반쟁이, 묘반쟁이, 솔반쟁이 등이 자리해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보여 줄 뿐 아니라 옛길 걷기의 흥미를 더해주고 있다.


또한 구룡령 옛길에는 일제시대 일본인들에 의해 개발돼 일대 주민들이 강제 징집됐던 애환의 역사가 서린 철광소와 케이블카가 남아 있고, 옛길 길가에는 1989년 경복궁 복원 당시 사용돼 밑둥만 남아 있는 소나무 거목 흔적이 남아 있는 등 조선시대와 근현대사의 역사가 함께 잔존해 역사적 가치가 큰 소중한 명승지이다.


# 죽령 옛길(竹嶺 옛길)


죽령옛길/사진-경북 영주시 

'죽령 옛길'은 '삼국사기'에 ‘신라 아달라왕 5년(서기 158년) 3월에 비로소 죽령길이 열리다‘라고 기록돼 있고, '동국여지승람'에 ’아달라왕 5년에 죽죽이 죽령길을 개척하다 지쳐서 순사했고 고개마루에는 죽죽의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 있다‘고 전해지는 오랜 역사의 옛길이다.죽령 지역은 삼국시대 고구려와 신라의 국경 지역으로 오랜 기간 고구려와 신라의 영토 분쟁지역이었다. 


죽령 지역은 삼국시대 고구려와 신라의 국경 지역으로 오랜 기간 고구려와 신라의 영토 분쟁지역이었다. 


단양쪽 희방폭포/사진-경북 영주시 신라 진흥왕 12년(서기 551년)에 신라가 백제와 연합하여 죽령 이북 열 고을을 탈취한 기록과, 그 40년 뒤인 영양왕 1년(서기 590년)에 고구려 명장 온달(溫達)장군이 자청해 군사를 이끌고 나가면서 “죽령 이북의 잃은 땅을 회복하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겠다”고 다짐한 기록 등이 '삼국사기'에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그 당시 얼마나 중요한 요충지였음을 알 수 있다.


소백산국립공원 내에 위치하면서 영주와 단양을 연결하던 옛길로 옛길을 따라 흐르는 계곡과, 길게 늘어져 있는 수목 터널이 주변에 펼쳐지는 소백산 주요 능선 등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보여주고 있는 명승지이다.


# 문경 토끼비리(聞慶 토끼비리)


문경토끼비리/사진-경북 문경시 

'문경 토끼비리'는 석현성 진남문에서 오정산과 영강으로 이어지는 산 경사면에 개설된 천도(遷道 : 하천변의 절벽을 파내고 건설한 길)로 영남대로 옛길 중 가장 험난한 길로 알려져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고려태조 왕건이 남쪽으로 진군 시 이곳에 이르러 길이 없어졌는데 마침 토끼가 벼랑을 따라 달아나면서 길을 열어줘 ‘토천(兎遷)’이라 부른데서 유래한다고 전한다.


문경 토끼비리_토끼비리 길 끝에서 바라본 진남문/사진-경북 문경시  ‘비리’란 ‘벼루’의 사투리로 강이나 바닷가의 위험한 낭떠러지를 말한다. 이곳 토끼비리는 문경 가은에서 내려오는 영강이 문경새재에서 내려오는 조령천과 합류하는 곳에서부터 산간 협곡을 S자 모양으로 파고 흐르면서 동쪽 산지를 침식해 만든 벼랑에 형성된 길이다. 돌벼랑을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파서 만든 구불구불한 길이 6, 7리 나있다. 겨우 한사람이 지나갈 수 있을 만큼 좁고 험하다. 


토끼비리는 길에서 내려다보이는 영강과 절벽부, 맞은 편 마을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조망 경관을 형성하고 있고, 옛길의 중간중간에 주막거리와 성황당, 2그루의 당나무 등이 남아 있어 다양한 옛길 문화를 보여주고 있다.


# 문경새재(聞慶새재)


실제 옛 과거길/사진-경북  문경시 

'문경새재'는 조선 태종 14년(1414년) 개통된 관도 벼슬길로 영남과 기호지방을 잇는 영남대로 중 가장 유명하고 조선시대 옛길을 대표한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초점(草岾)’으로, '동국여지승람'에는 ‘조령(鳥嶺)’으로 기록된 길로 조선시대 영남도로에서 충청도(한강유역권)와 경상도(낙동강유역권)를 가르는 백두대간을 넘는 주도로의 역할을 했다. 


문경새재_산불됴심 표석 /사진-경북 문경시문경새재는 제1관문 주흘관, 제2관문 조곡관, 제3관문 조령관 등 3개의 관문과 원(院)터 등 주요 관방시설과 정자와 주막 터, 성황당과 각종 비석 등이 옛길을 따라 잘 남아 있고, 경상도 선비들의 과거길로서 수많은 설화가 내려오고 있는 등 역사적, 민속적 가치가 큰 옛길이다.


주흘산, 조령산의 다양하고 아름다운 식생 경관과 옛길 주변의 계곡과 폭포, 숲길 등 경관 가치가 뛰어나고, ‘옛길 걷기 체험“, ”과거길 재현“ 등 옛길과 관련한 다양한 체험 행사가 매년 개최되고 있어 현대인들이 조선시대 옛길 문화 및 선비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훌륭한 옛길 자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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