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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경덕왕 때 재상 김대성이 창건한 '석굴암'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1-07-20 01:43:48
  • 수정 2023-12-21 13: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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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도에서 바라본 본존불/사진-문화재청 

[이승준 기자] 석굴암 내부 전경석굴암은 서기 751년 신라 경덕왕 때 당시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창건하기 시작해 서기 774년인 신라 혜공왕 때 완공, 건립 당시의 명칭은 석불사로 칭했다.


석굴암의 석굴은 백색의 화강암재를 사용해 토함산 중턱에 인공으로 석굴을 축조하고 그 내부 공간에는 본존불인 석가여래불상을 중심으로 그 주벽에 보살상 및 제자상과 금강역사상, 천왕상 등 총 39체의 불상을 조각했다. 


석굴암의 석굴은 장방형의 전실과 원형의 주실이 통로로 연결돼 있는데 360여 개의 판석으로 원형 주실의 궁륭천장 등을 교묘하게 구축한 건축 기법은 세계에 유례가 없다. 석굴암의 입구 쪽에 위치하고 있는 평면방형의 전실에는 좌우로 4구씩 8부 신장을 두고 통로 좌우 입구에는 금강역사상을 조각했고, 좁은 통로에는 2구씩의 사천왕상을 조각했다.


전실에서 본 석굴암 내부 전경/사진-문화재청

주실 입구에는 좌우로 8각 석주를 세웠고 이곳을 지나면 평면원형의 주실로 본존은 중심에서 약간 뒤로 안치돼 있고 입구 좌우로부터 천부상 2구, 보살상 2구, 나한상 10구로 주벽을 채우고 본존 정후면에는 십일면관음보살상이 있다.


조각에 있어서 원숙한 조법과 사실적인 표현에서 완벽에 가까운 석가여래상, 10구의 얼굴과 전신이 화려하게 조각된 십일면관음보살상, 인왕상의 용맹, 사천왕상의 위엄, 주실 내의 보살들의 유연하고 우아한 모습, 나한상들의 개성 있는 표현 등은 동아시아 불교조각의 최고의 걸작품이다. 


특히, 주실 내에 봉안돼 있는 굽타양식의 본존불 석가여래불은 고요하고 결가부좌한 모습, 가늘게 뜬 눈, 온화한 눈썹, 미간에 서려있는 슬기로움, 금방이라도 말할 듯한 입과 코, 길게 늘어진 귀 등 그 모든 것이 내면에 깊은 숭고한 마음을 간직토록 조성된 것으로서 세계에서도 가장 이상적인 미를 대표하고 있다.


비도에서 바라본 본존불/사진-문화재청

본존불 석가여래불은 고요하고 결가부좌한 모습이 석굴은 신라시대의 전성기에 이룩된 최고 걸작으로 평가되고, 그 조영계획에 있어 건축, 수리, 기하학, 종교, 예술이 총체적으로 실현된 것이다.


석굴암 석굴은 국보 제24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석굴암은 1995년 12월 불국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공동 등재됐다.


경주 토함산 정상에 못 미친 깊숙한 곳에 동해를 향해 앉아 있는 석굴암은 완벽하고 빼어난 조각과 독창적 건축으로 전 세계에 이름이 높다.


본존불/사진-문화재청 

인공으로 석굴을 축조하고 그 내부공간에도 본존불을 중심으로 총 39체의 불상을 조각했다. 석굴암은 전실, 통로, 주실로 이뤄졌다.


방형 공간인 전실에는 팔부중상과 금강역사상이 있고, 사천왕상(四天王像)이 있는 좁은 통로를 지나면 궁륭(Dome)천정으로 짜인 원형공간의 주실이 나온다. 주실의 중앙에는 석가모니대불이 있고, 벽면에는 입구에서부터 범천상(梵天像)과 제석천상(帝釋天像), 보현(普賢)·문수(文殊)보살상, 그리고 십대제자상(十代弟子像)이 대칭을 이루도록 조각돼 있다.


석굴암 십일면관음보살상일찍이 당나라의 현장(A.D.602~664)이 17년간 중앙아시아와 인도의 성지를 순례한 후 지은 풍물지리지 성격의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에는 "석가모니가 정각을 이룬 바로 그 자리에 대각사(大覺寺)가 세워져 있고, 거기에 정각을 이룬 모습의 불상이 발을 괴어 오른발 위에 얹고, 왼손은 샅 위에 뉘었고 오른손을 늘어뜨리고 동쪽을 향해 앉아 있었다. 대좌의 높이는 당척 4척2촌이고 넓이는 1장2척5촌이고 상의 높이는 1장1척5촌, 양 무릎 폭이 8척 8촌, 어깨 폭이 6척 2촌이다." 라는 기록이 있다. 


본존불/사진-문화재청

석굴암의 본존불 크기와 이 기록이 일치하고 있는데, 현장이 보았던 대각사의 그 불상은 현존하지 않고 있어 석굴암에 역사적 무게를 더해주고 있다.


천체를 상징하는 둥근 공간에 이르면 한가운데에 높이 350cm의 당당하고 부드러운 모습을 지닌 석가모니 대불이 동해를 향해 앉아 있다.


얼굴과 어깨를 드러낸 옷의 주름에 생동감이 있어 불상 전체에 생명감이 넘친다. 깊은 명상에 잠긴 듯 가늘게 뜬 눈과, 엷은 미소를 띤 붉은 입술, 풍만한 얼굴은 근엄하면서도 자비로운 표정을 짓고 있다. 손 모양은 항마촉지인(降摩觸地印)으로 왼손은 선정인(禪定印)을 하고 오른손은 무릎에 걸친 채 검지로 땅을 가리키고 있다.


본존불과 궁륭천장/사진-문화재청 

석가모니가 큰 깨달음을 얻어 모든 악마의 방해와 유혹을 물리친 승리의 순간, 즉 깨달음을 얻은 모습을 나타낸 것이기 때문에 성도상(成道像)이라고 한다.


감실은 주실에서의 위치로 보아 지상계와 천상계의 중간을 뜻한다. 이는 교리적인 면에서 보면 보살이 각자(覺者)인 여래와 무명(無明)중생의 중자적인 존재라는 점과 잘 어울린다. 미륵보살상의 오른쪽 어깨, 손목, 오른쪽 무릎으로 이어지는 직삼각형이 안정감을 주는 반면 세운 무릎, 비스듬히 얹은 팔, 숙인 얼굴이 그리는 곡선은 변화와 운동감을 주고 있다.


전실 벽면에 있는 8구의 팔부중상은 무사의 성격을 띠고 불법(佛法)을 수호하는 여러 가지 모습의 신들이고, 치마를 입은 금강역사상 또한 불법을 수호하는 한 쌍의 수문장으로서 상체의 근육이 발달한 용맹스런 모습을 하고 있다. 금강으로 만든 방망이를 들고 있다 해 금강역사라 칭했다.


궁륭천장과 연화천개석/사진-문화재청 

석가모니 대불이 앉아 있는 곳인 둥근 주실 뒷벽 가운데 가장 깊은 곳에 숨어 있다 나타나는 십일면관음보살상 (十一面觀音菩薩像)의 아름다운 자태는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석가모니 대불머리둘레에 열구의 얼굴이 화려하고 섬세하게 조각돼 눈길을 끄는데, 약간의 미소를 머금은 표정, 화려하게 전면을 장식한 영락(瓔珞:구슬이나 귀금속을 꿰어 만든 장신구) 장식, 유려하게 흘러내린 천의(天衣), 손가락 발가락의 미묘한 움직임, 왼손은 한 송이 연꽃이 꽂혀있는 병을 들고 오른손은 내려서 영락을 잡고 정면관의 자세로 서 있는 모습에서 화려함과 원숙함을 느끼게 한다.


8세기 중엽 통일신라 문화의 황금기에 건립된 석굴암은 불교사상과 매우 발달한 수리적 원리를 바탕으로 한 고도의 건축 기술, 뛰어난 조형감각으로 완성됐다. 우리가 석굴암에서 느끼는 장엄미와 숭고미는 이러한 바탕과 그 속에 내재하는 조화율에 있다 하겠다.


석굴암은 석가모니가 정각 즉, 깨달음을 얻은 순간을 가시적인 건축과 조각으로 재현한 것이고, 조각에 있어서도 인위적인 기교나 부자연스러움 없이 생명력이 넘치면서 원숙한 조법과 탁월한 예술성이 돋보인다. 절대적인 경지인 정각을 통해 인간 석가모니는 형이상학적 존재인 석가여래가 되고, 속세는 법계라는 이상향이 된다.


본존불의 얼굴/사진-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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